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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식 Mar 07. 2018

자살하러 가는 길에

사내는 자살하기로 결정했다.     


긴 시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오늘, 아내와 딸을 죽인 음주 운전자가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게 끝이었다. 

음주 운전자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이 그가 겪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의 엔딩이었고, 더 이상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이 사내에게 자살을 결심하게 했다.     


사내는 집 안 청소를 잘 안 했다.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없었다. 이 집은 온전히 아내의 것이었다. 집에서 죽을 순 없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아내의 말대로 턱밑까지 깔끔하게 수염을 밀었다. 수증기로 가득한 욕실 거울을 닦아 보는 눈이 건조했다. 아내와 딸이 죽은 뒤,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자신은 살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살 결정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내는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어릴 적 TV에서 봤던 태종대 자살바위가 생각나서였다. 자살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법도 생각하지 않았다. 막연히 기억 속에 있는 자살 명소를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문단속을 하고 나와서, 주차장은 그냥 지나쳤다. 서울역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어딘가에 차가 계속 주차되어있을 것이 신경 쓰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사내는 음주 운전자를 생각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눈물까지 흘리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사내는 그때,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떤 말로도 사내가 느끼는 심정을 그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차라리 욕이라도 했어야 했을까? 저주를 퍼부었어야 했을까? 그게 아니면,  

   

끼이이이-익!     


“으… 으…! 이, 이 씹할! 야, 이 새끼야! 뒤질라고 작정했냐!”     


사내의 코앞에서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춰 섰다. 생각에 잠겼던 사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빨간불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자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쌍욕을 퍼부어댔다. 짧은 스포츠머리, 거칠어 보이는 얼굴에 걸맞은 거친 입담이었다.     


“염병! 뒤질라면 곱게 뒤질 것이지! 눈깔 삐었냐 씹새야? 이 씹할 깜짝 놀랐네. 씹할! 뒤질라고. 저게 진짜!”

“…”     


사내는 사과를 하는 대신, 알 수 없는 분노에 울컥했다. 아내와 딸도 차에 치여 죽었다. 저 운전자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오히려 무단횡단을 한 자신의 잘못이겠지만, 아내와 딸은 차에 치여 죽었다. 그것이 사내를 이유 없이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씹새가? 왜 말이 없어! 어? 이 씹할! 깜짝 놀라 뒤지는 줄 알았다고. 이 씹새야! 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내는 사과 대신 이렇게 쏘아붙였다.     


“얼마 전, 내 아내와 딸이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뭐, 뭐?”     


운전자의 얼굴이 기묘하게 황당해졌다.   

   

“뭐라는 거야 이 돌아이 새끼가?”

“…”     


사내는 입을 다물어버렸고, 운전자는 인상을 쓰고, 욕을 하며 창문을 올렸다.  

   

“씹할 뭐 저런 미친 새끼가…”  

   

차는 사내의 옆을 신경질적으로 꺾어 지나갔고, 횡단보도에 남겨진 사내는 마저 도로를 건넜다.

사내는 다시 생각에 잠겨 인도 위를 걸어갔다.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을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잘못한 건 오히려 자신인데.

그때,     


끼이이이-익!!     


사내를 지나쳤던 그 차가 급하게 돌아서, 사내 쪽으로 돌아왔다. 사내 옆에서 창문이 내려가며 운전자의 난처한 얼굴이 드러났다. 우물쭈물 무언가 망설이는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미안합니다.”


미안하다? 사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가 사과를 하는 걸까? 잘못을 한 건 자신인데?

운전자는 사내의 얼굴을 살피며 뭐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다시 한 번,    

 

“…미안합니다.”


운전자는 가볍게 묵례하고 떠나갔다.   

  

“…”     


남겨진 사내는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

.

.     


기차역에 도착한 사내는 돈까스 도시락을 샀다. 조금,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식사를 챙겨 먹어도 되는 걸까? 뒤늦은 생각이었다. 사내는 배가 고팠고, 우연히 눈앞에 돈까스 도시락이 보였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출발까지 아직 10분 이상 시간이 남았지만, 사내는 가장 먼저 기차에 올랐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사내는 곧바로 돈까스 도시락을 개봉했다. 수저까지 모두 뜯었는데 한 가지, 돈까스 소스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서 소스를 달라고 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사내는 그러지 않았다. 소스 없는 돈까스를 먹는 것이 사내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내가 밍밍하게 돈까스를 씹는 사이,   

   

“저기요.”


한 여인이 스마트폰을 들고는 사내에게 말을 걸어왔다. 새하얀 세미 정장 차림의 여인은 경력이 꽤 되는 전문직 여성 같은 인상이었다.     


“혹시, 그 자리 맞나요?”   

  

스마트폰을 보며 묻는 여인의 질문에, 사내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표를 꺼내 들어 보이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예. 5호차 3A 맞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스마트폰과 사내의 표를 번갈아 보며 인상을 쓰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로 밖으로 나갔다. 사내는 주머니에 표를 집어넣고, 다시 식사하기 위해 자세를 뒤척였다. 그때,     


“아!”     


엉덩이 아래에서 무언가 툭 터지는 느낌과 함께 축축함이 전해졌다. 사내는 미간을 좁히며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했다.     


“아…”     


돈까스 소스가 터져 있었다. 처음부터 돈까스 소스가 없었던 게 아니라, 진공포장 되어 있던 소스를 실수로 흘렸던 것이었다. 

의자는 진한 돈까스 소스로 범벅 상태고, 바지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사내는 난감하고 짜증이 났다. 그때,  

   

“이보세요!”

    

아까 떠났던 여인이 다시 돌아왔다. 무언가 따지려는 듯한 기세가 느껴졌고, 실제 말투도 그러했다.    

 

“표 제대로 확인해 봤어요? 역무원에게 확인받았는데 제 표가 맞거든요?”     


사내는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들었는데, 재빠르게 표를 낚아챈 여인이 살피더니, 톤을 높여 쏘아붙였다.


“이것 봐요! 이 표는 101호 열차잖아요! 저거 안 보여요? 이 열차는 103호차라고요!”

“아…”     


다시 표를 받아서 확인한 사내는 일순간 난감해졌다. 여인의 말이 맞았다. 한데, 허둥지둥 사과하고 자리를 뜨기에는 이 의자에…     


“어, 이건 뭐야? 아씨! 뭐예요, 이거? 뭘 흘린 거야!”

“아…”     


여인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연신 ‘아씨, 아씨' 거리며 짜증을 토했다. 치켜뜬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예요, 진짜! 아씨! 이거 어쩔 거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예요? 아씨, 진짜 재수 없게! 뭐예요, 정말? 도대체가 무슨 정신으로…”

“…”     


여인은 마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듯이 사내에게 사납게 쏘아붙였다. 사내는 면목이 없어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고개만 숙였다. 어떻게 사죄하고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인은 짜증스레 머리를 한번 쓸어넘겼다.  

   

“아씨, 진짜! 어디까지 가요? 저는 대구 가는데, 그 표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여인은 만약 목적지가 같으면, 표를 맞바꿔 갈 셈인 듯했다.

그때까지 여인의 꾸중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사내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말해버렸다. 어쩌면, 여인이 쏘아붙이는 저 화를 당장 멈추고 싶다는 얄팍한 생각에서 나온 말일지도 몰랐다.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에 갑니다. 얼마 전에 아내와 딸이 차 사고로 죽어버려서… 저도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뭐예요?”     


여인의 얼굴이 어이없어졌다. 곧,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누가 뭐 물어봤어요?! 아씨! 헛소리 하지 말고, 이거 어쩔 거냐고요! 부산가요? 부산 맞아요?”

“예. 부산입니다.”

“아씨! 짜증나게, 진짜! 저리 비켜요!”     


여인은 사내를 치우고,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의자를 수습했다. 사내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여인이 화난 얼굴로 자신을 신경도 안 쓰는 듯 봐주지 않자, 쭈뼛쭈뼛 고개 숙여 사과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반대편 101호 열차로 향하는 사내의 걸음이 터벅터벅 힘이 없었다. 그때,     


“저기!”

“?”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하얀 원피스의 여인이 열차에서 내려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안해요.”


여인은 사내의 손에 휴지를 쥐어 주었다. 여인은 사내의 눈을 마주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우물쭈물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미안해요.”     


여인은 꾸벅 인사를 하고, 열차로 돌아갔다.     

 

“…”     


남겨진 사내는 휴지를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

.

.     


부산역에서 내린 사내는, 택시를 세워 올랐다. 한데, 사내가 목적지를 말하기도 전에 중년의 택시기사가 먼저 말을 해왔다.     


“카드기가 고장 나서 카드는 안 됩니다. 현금 있습니까?”

“예.”     


사내는 별 생각 없이 대답하고 문을 닫았는데, 강인한 인상의 택시기사는 신경 쓰이는 점이 있는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내가 카드 손님을 거부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카드기가 고장난 겁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내일 바로 수리 맡길 건데, 오늘까지만 못 쓰는 거라…”

“…”      


사내는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택시기사는 자존심 문제라는 듯했다.     


“거짓말이면, 내가 그냥 다른 손님 받고 말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 안 해! 진짜로 고장…”

“예, 알겠습니다.”

“현금은 있지요? 현금 없으면 안 됩니다, 진짜.”

“예. 현금 있습니다.”

“내가 진짜 카드기가 고장 나서 그러는 거지, 일부러 현금만 가려 받고 하는 그런 기사가 아니라!”     


택시기사가 몇 번이나 강조한 끝에 택시는 출발했고, 사내는 목적지인 태종대 자살바위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사내는 별로 말이 없었고, 택시 기사도 굳이 말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얼마 뒤 택시는 태종대에 멈춰 섰고, 택시기사는 돌아섰다.     


“만 삼천 원 나왔습니다.”     


사내는 주머니에 지갑을 뒤졌는데, 아뿔싸! 지갑이 없었다.      


“아!”     


당황스러워진 사내의 얼굴을 읽은 택시기사는 대뜸 목소리가 커졌다.   

  

“없습니까?”

“아… 그게? 지갑이 분명히…”     


택시기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해지며, 다음 순간 욕설이 튀어나왔다.     


“니미! 카드기가 고장 났다고, 현금 있냐고 내가 몇 번을 물었는데 씨발!”

“아, 아, 그게… 분명 지갑에 현금이 있었는데… 지갑이 언제…”

“씨발, 진짜! 아침에도 한 새끼가 택시비 떼먹더니, 저녁에도 한 새끼가 이러네! 와따, 니미 좆같아서!” 

    

택시기사의 거친 욕설에도, 사내는 면목이 없었다. 

    

“이 씨발 새끼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한테, 니미! 내가 아까 자살바위 가자고 할 때부터 내가 느낌이 드러웠어. 씹헐! 이 씹새, 너 뭐야? 어쩔 거야, 이 새끼야?”

“그, 그게…”     


그 순간, 사내는 또 왜인지 모르게도, 말을 꺼내고 말았다.     


“제가… 지금 자살하러 가는 길이라 정신이 없어서…”

“뭐?”     


택시기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사내는 자신도 왜인지 모르게 주절거렸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로 죽어 버려서… 저도 자살을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이 십새끼가! 구라까고 있네. 씨발! 돈 몇 푼에 마누라랑 딸 팔아먹냐?”

“…죄송합니다.”

“니미! 요금 이거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뭐? 자살한다고? 그래, 씨발! 진짜 자살할 거면 핸드폰도 필요 없겠네? 핸드폰 줘봐! 그거라도 처분하게!”

“예…”     


사내는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택시기사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꾸벅 사과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죄송합니다.”

“뭐 이런!”     


사내는 태종대 쪽을 바라보며, 무작정 걸었다. 어두운 밤에 핸드폰이 없으니 어디가 자살바위인지 찾아가기가 조금 막막했지만, 일단은 걸었다. 한데,   

   

빵빵!      

한참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던 택시에서, 기사가 급히 내려 달려왔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사내를 쳐다보며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미안합니다.”


그는 사내의 손에 핸드폰을 쥐여 주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씰룩이다가,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며, 사내의 눈을 마주 보며,    

 

“미안합니다…”

“…”     


택시기사는 뒤돌아 택시 안으로 돌아갔다.   

   

“…”     


사내는 출발하지 않는 택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

.

.     


사내는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자살하러 가는 길에 저지른 세 번의 잘못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듣게 된 세 번의 미안하단 말을 생각했다.

사내는 아내와 딸이 죽은 뒤, 언제부터인가 전혀 눈물이 나오질 않았었다. 오늘 이상하게도, 사내는 세 번 울 뻔었다. 왜 그랬는지는 사내도 몰랐다. 그것이 사내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내는 왜인지, 교도소의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어졌다.  

   

“…미안해.”     


결국, 사내는 바다를 등지고 돌아섰다.     

오랜 시간을 걸어 내려간 그곳에는 택시가 그대로 멈춰 서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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