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우 교수의 수업은 재미있다.
이곳 의과대학의 다른 교수들은 알려주지 않는, 본인 말에 의하면 쓸모없는 잡지식들을 많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특별하고 쓸모없는 수업이 특히 재미있다.
“자, 모두 이 사진을 보세요.”
김남우 교수가 보드에 큰 사진 한 장을 붙였다.
병실 침대에 잠든 한 소년과 근처의 두 여인이 그려진 사진.
한 여인은 손에 과도를 들고 소년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있었고, 한 여인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는 모양새였다.
김남우 교수는 모두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고 판단한 뒤, 물었다.
“여기 이 칼을 든 여인이 이해되는 사람?”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렇지. 이해가 될 리가 없지. 하면 이제, 이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참고로, 이야기는 모두 실화입니다.”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이제부터 김남우 교수의 재미있는 수업이 시작될 터였다.
“여기 이 두 여인, 송 여인과 임 여인에게는 각각 어린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안타깝지만, 송 여인의 아들은 현대 의학으로 치료될 수 없는 상태로,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임 여인의 아들 역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김남우 교수는 아이들이 집중하는지 얼굴을 한번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지 말을 이었다.
“송 여인의 아들에게서 심장을 이식받을 수만 있다면, 임 여인의 아들은 살 수 있다는 점이죠. 여기서 질문 하나!”
김남우 교수는 즐거울 때 짓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여러분이 두 아이의 담당의라면, 송 여인을 설득해, 아들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도록 하겠습니까? 임 여인의 아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요.”
“…”
난감한 질문에 섣불리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굳이 지목당하지 않는 이상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김남우 교수는 그저 빙긋 웃을 뿐, 굳이 대답을 듣고자 하진 않았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임 여인은 매일같이 송 여인의 병실을 찾아갔어요. 매일같이 병실 복도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죠. 으,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송 여인의 눈에는, 내 아들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까마귀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송 여인이 아무리 속된 말을 퍼부어도, 임 여인은 매일같이 찾아와 애원했어요. 어떤 날은 투병 중인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어요. 참 안타깝죠?”
말을 하며 정말로 안타까운 듯 울상을 짓는 김남우 교수의 표정이,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송 여인은 그 사진들을 내동댕이치며 물었어요.”
[입장 바꿔서 당신이 나라면 그럴 수 있겠어요!]
“임 여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죠. “
[예! 저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 제발…]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일이 생겨버려요. 정말로 그럴 일이 생겨버렸다는 거죠! 송 여인 아들의 치료법이 미국에서 개발된 거예요.”
“아!”
“어느 날 송 여인은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정말로 통쾌하다는 듯이, 복도에 서 있는 임 여인에게 달려가 말했어요.”
[우리 아들의 치료법이 미국에서 개발됐어요! 당신은 그럴 수 있다고 했죠? 당신 아들의 장기를 우리 아들에게 이식해줘요. 그러면 우리 아들은 살 수 있어요!]
“어땠을까요? 임 여인이 ‘예, 그럼요.' 하고 허락했을 리가 없겠죠? 임 여인은 절망했어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절망에 빠진 임 여인에게 송 여인이 말했어요.”
[흥! 당신도 못하는군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필요 없어요! 우리 아들은 미국에서 이식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으니까!]
[…]
“임 여인은 애가 탔어요. 임 여인의 아들은 오직 송 여인 아들의 심장만이 유일한 살길이었으니까요. 유일한 살길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거예요. 임 여인이 어땠겠어요? 그래서 결국, 임 여인은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엇일지 예상되나요?”
“설마…”
“네, 맞아요. 임 여인은 송 여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병실로 숨어들었어요.”
“아!”
“자!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이 사진을 한번 볼까요?”
학생들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한 여인이 과도를 들고 잠든 소년에게 달려들려는 참이고, 한 여인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고 있는 사진.
학생들은 저마다 저 병실 안의 긴박하고 안타까웠을 그 날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 표정들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듯이 김남우 교수는 웃음 지었다.
“몰래 병실로 숨어든 임 여인은 아이의 생명유지 장치를 정지시켜서 생명을 끊어놓았어요.”
“예?”
“뒤늦게 병실로 들어와 상황을 파악한 송 여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끝없을 분노로 가득 찬 송 여인의 눈에, 과일을 깎던 과도가 보였어요. 송 여인은 과도를 거꾸로 쥐고, 자신의 아들에게 향했어요. 죽은 내 아들의 심장을, 내 손으로 짓이겨놓기 위해!”
“!”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김남우 교수는 다시 물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물을게요. 여기 이 칼을 든 여인이, 이해되는 사람?”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그중 송 여인의 심정이 이해가 된 학생들이 하나둘, 손을 들었다.
김남우 교수의 고개가 돌아가며 시선이 움직였다. 멈춰진 시선의 끝이, 손을 든 학생들을 보는 건지,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을 보는 건지 모호했다. 그 상태로 교수는 말했다.
“학생들은 의사가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
.
.
강의실은 침묵들과 생각들에 잠겼다. 얼마 뒤, 한 학생이 이야기적 호기심을 참지 못해 물었다.
“이게 정말로 실화인가요? 송 여인은 정말로 아들의 심장을 짓이겼나요?”
김남우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 아이 모두 내 담당이었어요. 어떻게 됐는지는… 말해줄 수 없군요. 하지만 적어도 나는, 송 여인이 충분히 그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왜죠?”
“그때 미국에서 송 여인 아들의 치료법 같은 건, 애초에 개발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김동식 작가의 글이 수록된 도서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57799398?scode=032&OzSra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