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식 Feb 21. 2018

시공간을 넘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마음

“의지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거 알아?”     


사내의 말은 소년을 실망케 했다.

소년이 그를 어렵게 찾아온 건 살인을 부탁하고 싶어서였지, 이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데스노트 알지? 그런 것처럼 네 손을 더럽히지 않고 멀리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

“…”     


소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는 볼일이 없었다.     


“네가 정말로 간절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     


사내의 말은 소년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소년이 다시 자리에 앉자, 사내는 빙긋 웃으며 새하얀 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종은 사람의 살의를 형상화할 수 있어. 그것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대상의 머리를 터트리지. 어쩌면 너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으려나? 미제 사건들…”

“아!”

“물론 간단하지는 않아. 우선은 대상을 정말로 죽이고 싶다는 강력한 마음이 있어야 해! 만약 그런 의지도 없이 어설픈 살의로 이 종을 흔들었다간, 역으로 본인이 목숨을 잃게 돼. 어때? 너는 그런 의지를 확실히 갖고 있다고 자신해? 정말 진심으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사내의 질문에 소년의 눈이 뜨거워졌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새끼를 죽이고 싶어요!”

“…”     


사내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 어린아이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한단 말인가?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     


소년은 굳은 얼굴로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누나는 지적장애인이에요…”

“…”

“똑똑하진 못해도 착했어요. 자기도 배고픈데 하루 종일 안 먹고 아껴두었던 빵을 저한테 건네던 누나였어요. 누굴 만나도 헤실헤실 웃으며 좋아하던 착한 누나였어요.”

“음…”

“부모님 돌아가시고, 내가 우리 누나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 했어요. 그랬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소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 좋아하던 우리 누나한테, 누구한테나 착했던 우리 누나한테, 그 새끼가 접근했어요. 자기 집에 가서 친구 하자고… 그 개 같은 새끼가 우리 누날 강간했다고요!”

“으음…”

“우리 누나한테 그랬대요. 말하면 네 동생 죽여버릴 거라고! 집에 가서 아픈 티 내지 말라고!”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보 같은 우리 누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렇게 괴로운데도 나 죽을까 봐, 진짜로 내가 죽을까 봐! 매일같이 그 새끼한테 불려가서 당했어요. 그 사람 좋아하던 우리 누나가,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이랑 눈도 못 마주쳤어요!”

“…”

“우리 집은 부모님도 없고 만만하니까, 나중에는 그 새끼가 아예 우리 누나를 데려가서 성매매도 시켰어요!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장애인이라 반값만 받는 거라고! 먼저 임신시키기 게임이라고! 당첨되면 우리 누나 팔겠다고! 그 개 같은 새끼가 그랬다고요!”

“저, 저런 씹새끼가!”

“우리 누나가 싫다고 하면 때리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감금해놓고 하루 종일 때리고! 그렇게 사람 취급도 안 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우리 누나가 죽었어요! 그 새끼가 우리 누날 죽였다고요!”

“아…”

“그런데 그 새끼가 뭐라는 줄 알아요? 실수였대요! 우리 누나가 계단에서 미끄러졌대요! 자기가 우리 누나랑 사귀던 사이였대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소년의 얼굴이 마구 떨렸다.     


“그 새끼가 무죄래요… 무죄라잖아요… 우리 누나가 유혹했대요… 우리 누나가 돈 벌고 싶어서 그랬대요… 으윽…”

“…”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새끼, 내 손으로 죽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내가 너무 약해서! 내가 형편없이 약해서, 그 새끼를 한 대도 때려보지 못하고!”

“허…”     


그제야 사내의 눈에, 소년의 몸에 남아 있는 상처와 구타의 흔적이 보였다.    

 

“그 새끼가 자기한테 고마워하래요. 네 병신 누나는 평생 여자로 살아보지도 못할 거였는데 자기 덕분에 잘 놀다 갔다고! 자기보고 고맙다고 절을 할 거래요!”

“이, 이런!”     


그는 인정했다. 소년의 살인 의지는 확고했다.     


“그래, 내가 너라도 그 새끼는 꼭 죽이고 싶을 거다.”     


사내는 진지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간단하지가 않아… 아까 말했지? 역으로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이 종은 결국, 마음의 싸움이거든. 네가 그 새끼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 새끼가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싸움 말이야.”

“저는 정말 그 새끼를 죽이고 싶다고요!”     


소년이 눈에 불을 켜고 말하자, 사내는 소년을 진정시켰다.  

   

“네가 진심인 거 다 알아. 하지만 그 새끼가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너만큼 강력할 거야. 오히려 그런 새끼들일수록 더 악착같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게 개인전이 아니라는 거야.”

“무슨 말이에요?”    

 

사내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복잡하고 관계적이라… 그런 새끼의 목숨도 누군가에겐 소중하다는 거지. 가령 그 새끼의 부모님이나 친구들 같은… 그 새끼가 죽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많을수록 네가 불리해.”

“하지만!”

“너는 어때? 너처럼 그 새끼가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네 주변에 많니? 너는 네 편을 많이 가지고 있어?”   

  

소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없어요… 우리 할머니뿐이에요… 동네 사람들도, 어른들도, 경찰들도! 이 더러운 세상에 제 편은 없다고요!”

“아…”     


사내는 탄식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안 돼. 종을 흔들어봤자 너만 개죽음당할 뿐이야.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한다고, 그 새끼의 부모는 분명 그 새끼가 죽는 걸 원하지 않을 거라고. 그것만으로도 네가 질 거야.”  

   

소년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사내는 미안해졌다.     


“네 사정은 안타깝지만… 네 편이 너무 없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네 얘기를 듣고 그 새끼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안 될 거야. 미안하다. 괜한 기대를 하게 했구나.”

“…”     


소년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사내를 더 미안하게 했다.   

  

“엇!”     


소년의 손이 번개처럼 종을 낚아채 갔다.

놀란 사내가 말릴 새도 없이, 소년은 힘껏 종을 흔들었다.     

쩡!     


“아, 안 돼!”     


소년의 눈이 하얗게 뒤집어지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내는 급히 종을 빼앗아 들며 빌었다.     

제발! 그 새끼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없기를!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미움받는 새끼이기를!     

하지만, 사내는 탄식했다.    

 

“아.”    

 

종을 통해 전해지는 그 새끼의 편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새끼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사내는 쓰러진 소년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이 불쌍한 소년이 죽어야 하는가? 왜 그 쓰레기 같은 새끼가 아닌 이 불쌍한 남매가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하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쉰 사내는, 차마 소년의 머리가 터지는 걸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으… 아저씨?”

   

소년의 정신이 돌아왔다.   

  

“어, 어떻게?”

“그 새끼… 그 새끼 죽었어요?”     


놀란 얼굴의 사내가 곧, 눈을 부릅떴다.  

   

“그, 그래! 그 새끼가 죽었구나! 그 새끼가 죽었어!”

“아… 아아!”     


격정에 사로잡힌 소년이 눈물을 흘렸다.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누이의 이름을 불렀다.     


“…”     


사내는 복잡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소년의 마음에 상처가 아무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후에 소년은 물었다.     


“그런데 왜 제가 아닌 그 새끼가 죽게 된 거죠? 그 새끼의 편이 더 많았다고 했잖아요?”

“…”     


사내는 먼 곳을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마음이란 것은 참 복잡하단다. 만져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지만, 참 복잡한 것이란다…”

“예?”

“그 새끼를 살리고 싶어 한 사람은 다섯 명이었지. 하지만, 그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수백 명이 넘었어.”

“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요?”

     

사내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주 많았단다. 저런 새끼는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주 많았단다.”

“그들이 누군데요?”

“그들은 지금도 보고 있단다. 그래, 보고 있지.”    

 

사내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래의 링크로 이동하시면, 김동식 작가의 단편 소설이 담긴 도서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577994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