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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식 Feb 14. 2018

할머니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띵동.     


전광판의 대기 번호가 5654번으로 바뀌고, 할머니는 손에 든 번호표를 확인해본다. 아직 아니다. 너무 늦게 왔다.

상담 창구 너머, 하얀 제복 차림의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소리를 지르는 고객을 응대하기도 하고, 울어대는 고객을 응대하기도 하고, 떼를 쓰는 고객을 응대하기도 한다. 직원들은 바쁘고, 지쳐 보인다.     


띵동.     


번호가 바뀌는 소리에, 할머니는 자신의 차례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전광판에는 번호 대신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감]     


“아!”     


할머니는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안 되는데. 지금 꼭 가야 하는데.

직원들이 창구의 불을 끄며 정리를 시작했다. 고객들도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며 직원들을 쳐다보았다.     


할머니를 발견한 젊은 여직원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은 마감했고요. 내일 오셔야겠는데요.”

“아, 안 되는데… 오늘 꼭 가야 하는데! 아가씨, 어떻게 안 될까? 응?”     


여직원의 손을 덥석 잡고 올려다보는 할머니. 난처해진 여직원은 뒤돌아 마감 정리 중인 직원들을 보았다.

지친 얼굴의 직원들은 고개를 흔들고, 손을 내젓고, 시계를 가리켰다. 여직원은 다시 죄송하다는 얼굴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저기, 오늘은 안 되시고요. 내일…”

“아가씨, 제발 부탁해요! 꼭 오늘 가야 해요!”     


간절한 할머니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여직원은, 뒤돌아 직원들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어요. 이리로 오세요…”     


한 창구로 가 다시 불을 켜고 앉는 여직원.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창구 앞에 앉았다.

직원들은 단박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너무나 못마땅했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가 동시에 올라가야만 했던 것이다.     


자리에 앉은 여직원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곧장 할머니의 문의 사항을 넘겨짚었다.     


“혹시 젊음 관련 문의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럼요?”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에 여직원의 표정이 멍해졌다.     


“지옥으로 가고 싶어요…”

“네?”     


여직원의 머리 위에서 엔젤 링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

.

.     


천국 출입국 사무소의 여직원은,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름 김덕순. 63세 사망.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시고, 남의 가슴에 상처 주는 말도 한 적 없으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아니, 이거는 무조건 천국이신데? 그것도 요즘은 드문, 1등급으로 최우선 대상이신데?”     


여직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 도대체 왜 지옥을 가시려고요? 3일 동안 천국 구경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져 말했다.     


“죽고 나서야 알았어요.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고… 근데 내 딸이… 내 딸이 자살을 했어요.”

“네?”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면서요? 그게 벌써 몇십 년 전이에요. 내가 가야 돼요. 내가 얼른 가서, 내 딸 옆에 있어줘야 돼요. 지옥에 있는 불쌍한 내 딸 옆에 함께 있어줘야 돼요…”

“…”     


여직원은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신입이었던 여직원은,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참지 못한 남자 선배가 다가왔다. 약간은 짜증스러운 말투였고, 여직원은 당황했다.     


“아, 그게요… 이분이 지옥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뭐? 지옥을?”     


마찬가지로 황당한 얼굴의 선배. 여직원이 상황을 설명해주자, 얼굴이 굳어 옆에 놓인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집어 들었다.

그사이 여직원은 할머니를 설득했다.     


“할머니! 그래도 지옥에 가시는 건 안 돼요. 시스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고요.”

“저승사자가 그랬어요. 죽고 나서 3일 안에는 갈 수 있다고요. 오늘이 마지막 3일째예요. 난 꼭 가야 해요, 아가씨.”

“아, 그 미친 양반이!”     


여직원은 짜증 난 얼굴로 누군가를 원망했다.

그사이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읽던 선배는 옆에서 ‘쯧쯧’, ‘허허’, ‘아이고!’, ‘어휴…’ 등 온갖 추임새를 넣으며 안타까워했다.     


“거참! 할머니 인생이…”

“?”     


여직원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씁쓸한 얼굴의 선배가 말했다.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사촌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식모처럼 사시다가… 쯧. 어린 나이에 파렴치한 사촌에게 몹쓸 짓을 당하셨네.”

“아…”     


“18살에 집에서 도망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서 길에서 주무셨네. 며칠을 굶으면서 쓰레기통도 뒤지시고… 어휴! 그러다가 겨우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해 먹고 자고 했는데… 아이고, 도둑으로 몰려서 몰매 맞고 쫓겨나시고… 길을 전전하다가 이번에는 공장 일자리를 구해 일했는데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어서 쫓겨나시고…”

“세상에!”     


“그래도 어떻게 미용실에 보조로 취직해서 적은 돈이나마 꾸준히 저축했는데… 같은 방 쓰던 언니한테 전 재산 사기를 당하셨네, 또?”

“이런!”     


“죽을까 생각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도 하고, 이제 인생이 좀 피나 했더니! 쯧, 30살에 남편분이 먼저 돌아가셨네! 혼자서 어린 딸자식 키우려고 험한 일 궂은 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셨는데… 글쎄 그 딸도 18살에 자살을 해버렸으니! 죽지 못해 살다가,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혼자 외롭게 죽으셨구나… 아이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허덕이다 오셨어! 용하다, 용해! 그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착하게 살아서 1등급이 나오시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두 직원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부탁했다.     


“예. 제가 가난해서… 배운 것 없는 이 어미가 너무 가난해서, 우리 딸 하고 싶은 거 아무것도 못 하고 죽게 만들었어요. 뭐 하나 해준 게 없어요. 그러니까 가야 해요. 내가 내 불쌍한 딸 옆에 있어줘야 해요. 네? 도와주세요.”     

애원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둘은 난감해졌다.     


“에휴, 할머니! 살면서 그렇게 고생만 하셨으면, 죽어서는 편하게 사셔야죠. 지옥이 얼마나 힘든 곳인데요!”

“내 딸이 지금 지옥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편하게 살아요. 안 돼요, 안 돼. 내 딸 옆에 내가 있어줘야 해요.”     


도리질하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 두 직원은 안타까웠다. 할머니의 인생은 분명, 천국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할 인생이었다.     


“아, 이거 진짜 답답하네… 여기 좀 와봐!”     


선배는 손짓으로 다른 직원을 불렀다. 그러자 안경을 쓴 남자 직원이 짜증을 내며 다가왔다.     


“아, 정말! 뭐 하는 거야? 퇴근 안 할 거야? 뭔데 그래?”

“이거 어떡하지? 지옥으로 보내달라시는데?”

“뭐야? 지옥?”     


역시,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곧, 사정을 모두 전해 들은 안경도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할머니 인생이 참.”     


고민하다가, 안경이 말했다.     


“보내드리자.”

“뭐?”

“그렇게 따님 옆에 가고 싶으시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지옥에 보내드리자.”

“뭐야? 너 미쳤어? 거기가 어떤 곳인데 할머니를 보내!”     


둘의 의견이 대립하자, 중간에 낀 여직원은 난처해졌다. 여직원은 둘의 대화에 끼지 않고, 그냥 할머니 손을 잡고서 겸연쩍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할머니 인생 기록 못 봤어? 평생 불행했는데, 죽어서라도 천국에 가셔야지!”

“할머니 본인이 지옥에 가고 싶으시다잖아! 딸이 지옥에 있는데 천국에서 맘이 편하시겠어?”

“안 돼! 거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이 할머니는 더 이상 고통을 겪으시면 안 돼!”     


둘의 커진 목소리에, 뒤에서 퇴근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뭔데? 뭔데 그러는 거야?”

“거, 퇴근 좀 하자! 오늘 하루 종일 진상 고객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진짜!”

“너희 왜 그러는데? 하여간에, 거기 신입! 마감 후엔 절대 고객 받지 말랬지?”     


직원들이 짜증을 내며 다가오자, 선배와 안경이 설명했다.     


“아니, 들어봐! 얘가 하는 말이…”     


직원들은 사정을 듣고,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서로 돌려보며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지옥일지라도 불쌍한 내 딸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마음은 그들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야. 내가 보기에도… 그냥 지옥에 보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천국에 가셔야지!”     


다른 직원들도 두 패로 나뉘어 말다툼을 했다.     


“야야! 모르면 가만히 있어! 딸을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지옥에 딸을 두고 천국에 가면 매일을 눈물로 사셔야 할걸?”

“너 지옥이 어딘지 몰라? 유황불 근처도 안 가봤으면 말을 마, 인마! 그런 데다 어떻게 할머니를 보내?”

“그런 데에서 딸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불편하신 거지!”

“야, 이! 평생 지옥 같은 삶을 살았는데, 죽어서도 지옥에 떨어지라고? 그건 지옥에 있는 딸도 원치 않는 일이야!”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걸?”     


직원들은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며 열을 올렸고, 신입 여직원만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여러분이 이렇게 싸우시고…”     


직원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미안하긴요!”

“아이, 괜찮아요. 할머니! 저희 싸우는 거 아녜요! 괜찮아요.”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보다가, 돌아서서는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     


“그러니까 할머니는 천국에 가셔야 한다고! 이젠 제발 행복하셔야 해!”

“답답하네! 딸 옆에 가고 싶으시다잖아! 원하시는 걸 해드려야지!”

“지옥에선 서로 고통스러울 뿐이라니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천국파, 지옥파 모두 주장에 명분이 있었다.

그때, 천국파 쪽에서 누군가가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아! 할머니! 남편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돌아가신 남편분이요!”

“우리 남편?”     


할머니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는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집어 들고는, 얼른 한 사람의 인생 기록을 소환했다.     


“천국에 계시네! 이분, 지금 천국에 계세요, 할머니! 천국에 가면 남편분과 만날 수 있으세요!”

“아아…”     


할머니의 눈시울이 다시 뜨겁게 붉어졌다.     


“맞아요. 맞아요. 내가 우리 남편이랑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내가, 우리 딸 열심히 키웠다고. 당신 없이도 열심히 키웠으니까, 잘했다고 말해달라고. 고맙다고 말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말해달라고. 우리 남편한테 그 말 꼭 듣고 싶었어요. 내가 나중에 죽으면 그 말 꼭 듣고 싶었어요.”

“…”     


직원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머니는 꺽꺽거리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미안해요. 내가 잘못해서 우리 딸 죽었어요. 내가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어떡해요? 우린 남편 얼굴을 어떻게 봐요…”

“아, 아니에요! 그건 할머니 잘못이 아닌데, 아 진짜!”     


서럽게 우는 할머니의 모습에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괜한 말을 꺼낸 직원을 타박하기도 했다.

답답했다. 할머니를 지옥에 보내는 것도 죄송하고, 천국에 보내는 것도 죄송했다.     


“아, 그 딸은 왜 자살을 해가지고!”

“야야! 쉿!”     


직원들은 그 딸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지옥에 있을 딸을 생각하다 문득, 한 직원이 말했다.     


“일단 지옥에 연락해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할머니가 지옥에 내려갔을 때 딸이랑 함께 있을 수 있는지 말이야! 애초에 그게 안 되면, 이런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천국에 계시는 게 낫잖아.”

“음…”     


그의 말은 옳았고, 직원들은 지옥 행정부로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넣었다.     


[여보세요?]     


“지옥이죠? 천국인데요.”     


[잉?]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한 직원들은, 할머니의 인생 기록을 지옥으로 보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야! 오시라고 해! 우리가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잖아?]

[무슨 소리야? 인생 기록 안 봤어? 그분은 천국에 있어야지! 이런 지옥에 왜 와?]

[까짓 편의 좀 봐드리면 되잖아!]

[지옥에 편의가 어딨어, 이 병신이?]

[뭐, 인마?]     


똑같은 싸움이 벌어졌다.     


“…”     


직원들은 황당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지옥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소리쳐댔다.     


[절대 지옥에 보내지 마십쇼! 예? 천국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두시라고!]

[무슨 소리! 보내쇼! 보내면 내가 딸 옆에 보내드릴 테니까!]

[딸 옆이 유황불인데 뭘 보내,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엄마 마음이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엄마 마음을 알아, 이 새끼야?]     


“…”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여기서 보내겠다고 해도 거기서 반대할 상황까지 생각해야 했다. 정말 답답했다.     

도대체, 할머니를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가? 아니면 천국에 보내야 하는가?     

그때, 계속 할머니의 양손을 잡고 있던 처음의 신입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면 혹시… 환생하시면 어떨까요?”

“환생?”

“환생해서 다시 엄마와 딸로 사는 건 어떠세요, 할머니?”     


직원들의 눈이 끔뻑끔뻑했다. 환생이라고? 급히 할머니의 얼굴을 살피는 직원들.

할머니는 감격에 눈물이 차올라, 여직원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해요? 정말 가능해요? 다시 제가 우리 딸 엄마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직원들이 얼른 나섰다.     


“가능하죠! 얼마든지요! 환생 되지? 어? 1등급이시니까 환생 옵션 있잖아!”

“자, 잠깐만! 천국에서 환생은 죽은 날 바로 결정해야 하잖아! 할머니는 3일째인데, 안 되지 않아?”

“아냐! 아직 천국에 안 가셨으니까, 3일까지는 가능할걸? 전에 저승사자한테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한번 알아봐!”

“근데, 지옥에 있는 딸은 어쩌지? 지옥에서는 선택해서 환생하는 게 불가능하잖아?”

“부모가 쌓은 덕으로 어떻게 안 돼? 한번 알아봐! 빨리!”     


지옥 행정부에다가도 다시 연락을 넣는 등,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혹시, 그 따님분이 죗값을 치를 날이 얼마나 남았나요? 또 인간으로 선택 환생이 가능한가요?”     


[잠깐, 잠시만요! 야, 안 되지 않나? 멀었잖아!]

[자살인데 당연히 아직 멀었지!]

[같은 자살이라도 타인이 끼친 영향에 따라 좀 다르잖아! 한번 좀 뒤져봐!]     


천국, 지옥 할 것 없이 모든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그 모습이 미안한 듯, 연신 자기 탓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나 때문에… 괜히…”

“괜찮아요. 괜찮아요, 할머니.”     


여직원이 할머니의 두 손을 어루만지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된다! 돼! 1등급이시라서, 지금 당장 선택 환생이 가능해! 딸만 가능하면, 다시 같은 가족으로 환생하실 수 있어!”

“그래? 지옥은?”     


[잠시만요! 야! 돼, 안 돼?]

[어디 보자… 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고… 그러니까…]     


직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지옥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 꼭 첫째 딸일 필요는 없죠?]


“예?”     


[죗값을 치를 시간이 좀 모자라는데, 할머니께서 이번에 환생하시고, 한 40년 뒤에 가능하거든요? 그때 늦둥이를 보시는 거로 하면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 할머니, 늦둥이도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딸이랑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다시 평생을 고생해야 한다고 해도 좋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고맙다며 계속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옥 너머에도 고맙다며 인사했다.

직원들은 괜히 가슴이 뻐근해져,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곧, 여직원이 할머니의 인생 기록에 도장을 찍었다.     


“그럼 환생할게요, 할머니.”     


할머니의 몸이 빛에 휩싸였고,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난 뒤.     


“…”     


여직원 뒤에 선 직원들은 곧장 퇴근하지 않았다.


“야! 축복 걸어! 축복 걸어!”

“빨리 행복 옵션 다 넣어!”

“재물! 건강! 인연! 미모! 축복들 하나씩 다 걸라고! 빨리!”     


직원들은 분주하게, 할머니의 새로운 인생 기록에 저마다 축복을 걸어대기 시작했다. 당황한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이거 불법 아니에요?”

“알 게 뭐야? 어차피 근무시간 외의 일인데 누가 알겠어? 너도 빨리 하나 걸어, 인마!”     


여직원은 환하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 그럼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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