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식 Mar 21. 2018

심심풀이 김남우

[눈을 감고 ‘심심하다’ 라고 말해봐! 진짜 놀라운 일이 벌어질걸?] 


우연히 본 그 게시물은, 모니터 너머의 사람에게 멍청한 일을 시키는 낚시 게시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데, 그 일을 실행한 사람들의 놀라운 증명 댓글들이 수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을 끝내고 집에 와서 컴퓨터를 하던 김남우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 게시물의 내용을 따라 해보았다. 


 “심심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남우는 또 멍청하게 낚시를 당한 거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그 낚시성 게시물은 묻히는 기색 없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온 인터넷을 잠식해 들어갔고, 심지어는 TV의 긴급 뉴스로까지 나왔다. 


“뭐, 뭐야? 왜들 이러는 거야? 뭐가 있다는 건데?” 


김남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몰라 몇 번을 다시 시도해봤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난리인 걸까? 

김남우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낚시가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김남우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을 감고, 심심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시야를 공유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도, 다른 어떤 곳의 풍경을 마치 눈을 뜬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지금 김남우가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말이다. 


처음, 상황을 파악한 김남우는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사람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똑같이 보고 있다니! 그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즐기고 있다니! 


“내가 보는 걸, 세상 사람 모두가 볼 수 있다고? 뭐야? 그럼 이 집도, 내 모습도…” 


김남우는 무심코 고개를 내려, 벗은 몸을 내려다봤다가, 


“으헉!” 


급히 고개를 들었다. 여름이라, 자취방에선 팬티까지 다 벗고 지냈던 터였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방금 그 장면을 봤다고 생각하면… 


“아오, 씨발!” 


김남우는 눈을 감고, 온몸으로 발악했다. 왜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대상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욕을 퍼붓고 난 뒤, 김남우의 머릿속이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다시 눈을 뜬 김남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돌아가는 상황을 살폈다. 


[방금 그거 본 사람? 너무 빨리 지나가서! ㅋㅋㅋㅋ] 

[털 참 풍성하네ㅋㅋㅋㅋ 무슨 숲인 줄ㅋㅋㅋㅋ] 


“이런 씨!” 


김남우는 미칠 것 같았다. 이미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 사태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김남우의 눈으로 본, 그 작은 방의 풍경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떠들어댔다. 


집이 쓰레기장이다, 설거지를 해라, 종아리 털이 더러워 보인다, 가난해서 컵라면만 먹는가 보다, 여자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침대보 좀 정리해라,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딱 공대 복학생 수준이다… 


김남우는 지금껏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한데 이런 믿지 못할 상황에 놓이고 나니,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오! 지금 이 사이트 보고 있다! 분명 여기 회원 중 하나야!] 

[지금 여기 글들 보고 있는 거지? 이 글 봤으면 댓글 좀 달아줘!ㅋㅋㅋ] 


김남우는 이 사태를 장난처럼 즐기는 이들에게 이를 갈며 쌍욕을 했지만, 댓글을 남길 순 없었다. 

댓글을 남겼다가, 내가 누군지 신상을 캔다면? 거울을 봤다가,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밖에 나갔다가, 여기가 어느 동네의 어디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김남우는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직은 사람들이나, 김남우란 존재를 정확히 알고서 떠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옥탑방 남자라고 부르며 자기들 멋대로 떠들고 있지만, 그 이름이 김남우로 바뀌는 순간,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짐 캐리 꼴이 날 것 같아 겁이 났다. 


내 인생을, 세상 모두가 공유하고 본다니? 밥을 먹는 것도, 똥을 누는 것도, 무엇을 하며 노는지도, 어디에 가는지도, 어쩌면 섹스를 하는 모습까지도! 


김남우는 미쳐버릴 것 같아 눈을 감아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생 눈을 감고 지낼 게 아니라면,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 인생은 어떨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듯 살아야 하는 그 인생은 도대체, 어떨까? 


[렛 잇 비 렛 잇 비~ 렛 잇 비~]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김남우는 번쩍 눈을 뜨고, 핸드폰을 집었다. 여자 친구 홍혜화였다. 

오늘은 홍혜화와 일주년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을 희미하게 뜨고 옥탑방을 빠져나온 김남우는, 버스 정류장까지 최대한 주변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고서야 완전히 눈을 감아버린 김남우. 

그나마 소리까지 공유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느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여자 친구를 만나면?

 

“빌어먹을…”

 

절로 쌍욕이 터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김남우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여자 친구를 보게 될 것이다. 

얼마나 떠들어댈까? 얼마나 평가해댈까? 얼마나 우리 데이트를 흥미롭게 훔쳐볼까? 김남우는 가슴이 갑갑했다. 


김남우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실눈으로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에라이 씨!” 


그냥 포기하듯 홧김에 눈을 떠버렸다. 어차피, 감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빠!” 

“어, 어…” 


김남우를 알아본 홍혜화가 달려왔고, 김남우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홍혜화는 곧장 김남우의 팔짱을 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어, 어어…” 


우물쭈물, 김남우는 망설였다. 일단 모든 걸 고백해야 할 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걸으며 홍혜화는 계속 재잘거렸다. 


“아참! 오빠, 그거 해봤어? 심심하다고 말하자마자, 그 사람 시야가 눈앞에 딱 펼쳐지는데… 진짜 신기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대?” 

“그…” 


김남우는 흥분해서 떠드는 홍혜화를 보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응?” 


홍혜화의 핸드폰이 울렸다. 순간 김남우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는 홍혜화. 


“응?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뭐? 뭐라는 거야?” 


김남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곧, 홍혜화는 침묵하고, 김남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혜화야. 사실…” 



쾅쾅쾅! 


“김남우 씨! 안에 계신 것 압니다! 인터뷰 좀 해주십시오! 김남우 씨! 안에 계신 것 다 보았습니다!”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간, 김남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김남우의 일상을 훔쳐볼 수 있었고, 이 신비하고 신기한 일은 세상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쾅쾅쾅! 


울리는 문밖의 소리에도 김남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스케치북에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제발 보지 마세요.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저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제발 보지 마세요…] 


김남우의 눈을 통해 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서였다. 

김남우는 입술을 깨물며 지난 한 달을 회상했다. 


[오빠… 미안해… 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자신이 없어. 미안해. 정말…] 


여자 친구가 떠났다. 


[야이, 씨! 남우야. 너 좀 딴 데 보고 있으면 안 되냐? 신경 쓰여서 술도 제대로 못 마시겠네!] 


친구들이 불편해졌다. 


[김남우 씨! 방송국입니다! 저희 방송에서 김남우 스페셜 쇼를 구성해보려고 합니다!] 

[김남우 씨! 김남우 씨의 이 이상 현상을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CT를 한 번 찍어보시면!] 

[꺅! 사인 좀 해주세요 오빠! 잠깐만요, 내 얼굴 보고 있어봐요! 자기야, 지금 눈 감고 봐봐! 내 얼굴 보여? 어때?] 


사람들이 김남우를 신기한 동물처럼 취급했다. 

가장 김남우를 괴롭게 했던 건, 김남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평가해대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라면 끓일 줄 모르네! 스프 먼저 넣어야지!] 

[김남우 말이야. 전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리어카 끌고 올라가시는데, 그거 보고도 그냥 지나가더라? 좀 도와주지 말이야!] 

[신호등 불 세 칸 남았을 때는 그냥 기다려야지! 뭐가 급하다고 저렇게 뛰어가냐? 위험하게.] 

[김남우는 가슴 큰 여자 좋아하는 듯ㅋㅋㅋ 인터넷 하다가 가슴 큰 여자 사진만 나오면 오래 쳐다봄ㅋㅋㅋ] 

[저 티셔츠에 무슨, 저 바지를 입냐? 옷 입을 줄 모르네, 진짜. 신발도 흰색 단화 하나 좀 사지. 그렇게 돈이 없나?] 

[김남우가 야동 급하게 다 지울 때, 그거 제목들 기억나는 사람? 취향이ㅋㅋㅋ] 

[김남우…] 


모든 생활에 일일이 간섭하려 들고, 평가하려 드는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김남우를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김남우는 스케치북에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보지 말라고, 제발 내 인생에서 신경을 꺼달라고 쓰고 쓰고 썼다. 

쓰다가 쓰다가 쓰다가,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문밖의 시끄러움에, 쓰다가 쓰다가 쓰다가,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쓰다가 쓰다가 쓰다가, 부질없다는 듯이 울컥! 펜을 던져버리는 김남우. 


“아, 씨발!” 


주변이 떠나가라 ‘씨발’을 크게 반복했다. 목이 터져나갈 듯 반복했다. 벌써 김남우가 이 기이한 상황에 빠진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변화가 생겼다. 


[어? 소리도 들리지 않냐?] 

[정말이다! 보는 것 말고, 이젠 소리도 들린다!] 

[야, 지금 김남우 엄청 욕하고 있어.] 

[김남우, 참 불쌍합니다. 사람이 프라이버시란 게 있는데, 진짜 그만 훔쳐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는 착한 척 안 본다고 해놓고, 사람들 다 심심할 때마다 몰래 볼 듯ㅋㅋㅋ 이젠 소리까지 들리는데, 더 리얼해졌네ㅋㅋㅋ] 


“…”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났다. 


[어우 씨ㅋㅋㅋ 지금 김남우 똥 싸네, 똥 싸! 희미한 소리랑, 이 냄새 보면 100퍼센트다ㅋㅋㅋ] 


이제는 김남우의 후각마저도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었다. 

그동안 김남우는 대부분 눈을 감은 채로 지냈다. 귀에는 귀마개를 꽂았다. 저 빌어먹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너무나 싫었다. 조금의 이야깃거리도 던져주고 싶지 않았다. 어쩔 땐, 일부러 재미없으라고 어려운 의학 서적을 몇 시간 동안 읽은 적도 있었다. 

그럴수록 김남우의 삶은, 단조로워졌다. 외출도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고, 즐거운 일들을 최대한 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김남우에게 접속했다. 심심할 때마다 김남우에게 접속했고, 김남우의 일상을 이야깃거리로 써먹었다. 

김남우와 부모님과의 눈물의 시간도, 사람들에겐 이야깃거리였다. 

자존심을 버려가며 홍혜화에게 다시 매달리던 김남우의 모습도, 사람들에겐 이야깃거리였다. 

용기를 내어 찾아간 병원에서의 모든 검사 과정과 이후의 무력감까지도, 사람들에겐 이야깃거리였다. 

김남우가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애원하는 모습조차도, 사람들에겐 이야깃거리였다. 


김남우는 매일매일을 미쳐버릴 듯 발작했다. 머리를 쥐어뜯고, 울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다시 사람들에게 빌고, 다시 또 욕하고. 

사람들은 저러다 김남우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김남우는 무표정해졌다. 더는 사람들에게 애원하지 않았다. 


더는 눈을 감고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귀에서 귀마개를 뽑았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녔다. 거울도 상관하지 않았다. 소변을 볼 때도 의식하지 않고 쳐다봤다. 가끔은, 컴퓨터로 야동도 봤다. 

사람들은 말했다. 


[김남우가 모든 걸 극복했다!] 

[대단하다, 김남우… 나 같으면 미쳐버렸을 텐데.] 


그렇게 또다시 사람들은 김남우의 변화를 멋대로 평가했다. 

그러고는 심심할 때마다 심심하다는 말과 함께 김남우의 일상을 공유했다. 

계속 무표정히 살아가던 김남우가, 시간이 더 흘러 미각이 공유되던 날에, 한 번 환하게 웃었다. 


[치킨 먹고 싶은 사람, 지금 김남우한테 접속해라! 치킨 먹는다!] 

[오, 이거 대박인데ㅋㅋ 맛은 느끼고, 살은 김남우가 찌고ㅋㅋㅋ] 


사람들은 마치 두 가지 인생을 즐기듯이, 심심할 때마다 김남우에게 접속했다. 

김남우는 자신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기꺼이 제공했다. 보고, 듣고, 맡고, 먹고. 

거기서 김남우가 기꺼이 기다리던, 그 한 달이 또 지났다. 


[오오오! 대박! 김남우랑 촉각이 공유된다!] 

[우아! 진짜다! 완전히 다 느껴져! 우아아아아!] 


사람들은 마치 재밌게 즐기던 게임이 크게 업데이트된 것처럼 기뻐했다. 김남우도 기뻐했다. 정말 환하게 웃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하하하하하하.” 


크게 웃은 김남우는 옥탑방 문을 열고 나섰다. 곧장, 빠르게 발을 놀려, 


다다다닥! 


전력으로 달려서 높이 도약. 


옥상 밖으로 몸을 던졌다. 


[!] 


사람들은 보았다. 빠르게 회전하는 세상을. 

사람들은 들었다. 귀를 찢을 듯한 바람 소리를. 

사람들은 맡았다. 어딘지, 화약 같은 냄새를. 

사람들은 느꼈다. 머리가 터져나가는, 아픔을. 

전 세계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구역질이 터져 나왔다. 죄책감을 닮은 마음도 조금은, 나왔다. 


“…” 


김남우의 두 눈이 드디어, 혼자만의 땅을 보게 되었다. 김남우는 웃었다. 이 땅바닥은 나만 볼 수 있어! 

만족스럽게 김남우의 두 눈이 감겼다. 



[오! 이번에는 여잔데! 우아~ 여자 방!] 


사람들은 심심하다. 왜들 그렇게, 심심하다.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이 글이 수록된 도서를 구입할 수 있는 서점으로 이동합니다.

http://www.yes24.com/24/goods/57799411?scode=032&OzSrank=1


이전 08화 고양이들의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