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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Oct 24. 2019

카사밀라로 보는 가우디의 신념

그러나 과연 고집인가 신념인가


가우디의 카사밀라 / 건축의 탄생에서



1909년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큰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모로코 리프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스페인에 저항했었다. 스페인 정부는 상황을 수습하려고 카탈루냐 노동자들을 모로코에 군대로 파견하려 했다. 사실 카탈루냐 노동자의 삶 역시 보수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만큼 열악했다. 그런데다가 군인으로 파병돼 전쟁을 하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그들은 결국 터지고 말았고, 카탈루냐 노동자는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불태웠다. 이는 정부와 결탁한 부패 종교를 향한 노동자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그 결과로 약 150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이 기간을 비극의 주(la semana tragica, 7월 26일~8월 2일)라고 부른다. 당시 지어지고 있었던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파괴되지 않았는데, 항상 낮은 자세로 임했던 가우디를 시민들은 존경하고 신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의 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가우디는 성모마리아 상과 성 미카엘 그리고 성 가브리엘 대천사 상을 건물 옥상에 기필코 올려야겠다는 굳은 고집으로 건물주와 크게 싸우게 됐다. 가우디의 계획은 큰 조각상을 옥상에 올리고 현재 지어져 있는 건축물을 조각상의 받침대로 쓸 계획이었다.

카사밀라를 짓기 위해 다투는 가우디와 로사리오(건물주) / 건축의 탄생에서


이 설계로 서로 계약을 했지만, 온 성당이 불타고 있는 시국에 어떤 건물주가 그런 큰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조각상은 고도제한으로 올리지 못했다. 거기다가 공사금액으로 시비가 붙어 소송으로 갔다. 결국 법원은 가우디의 손을 들어주었고, 공사금액은 모두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모두 기부했으니, 가우디가 종교에 얼마나 헌신했는지 짐작이 간다. 가우디의 고집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을 지으려면 설계도를 시청에 제출해서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가우디는 설계도 대신 석고 모형을 그대로 들고 가 허가를 받으려 했고, 건축의 일부가 건축선 밖으로 나가 있는데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이 사실을 기둥에 쓰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것 역시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은 가우디 건축은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며 가우디 손을 다시 들어주었다. 온 도시가 불에 타던 상황에서 가우디의 고집으로 위기를 맞이했던 이 건축물이 바로 카사 밀라(Casa Mila)이다.


카사 밀라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o) 다음으로 지어진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작품이다. 카사 바트요가 바다라면, 카사 밀라는 산으로, 가우디가 가장 좋아하던 곳인 몬세라트 암벽을 모티브로 설계했다.

건물주에게 카사밀라를 설명하는 가우디 / 건축의 탄생에서
몬세라트 암벽산

당시 일반적으로 내력벽으로 건물을 지탱해 세웠던 방식과 달리 기둥으로 건축을 지탱해 자유롭게 평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점은 굉장히 진보적이었다. 거기다가 두 개의 커다란 중정(파티오)을 만들어 내부에 빛을 들여 곳곳에 빛을 받아 밝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쌓아 올린 돌은 재단해서 만들어 쌓았는데, 어느 하나도 같게 생긴 돌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커다란 하나의 바위처럼 보여, 지어지고 나서 채석장(라 페드레라, la pedrera)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왼쪽부터 카사밀라의 옥상, 중정, 철제난간

가우디는 대학교에서 교수 말을 듣지 않아 졸업을 하지 못 할 뻔했고, 건물을 짓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다시 지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완벽할 때까지 다시 만들었다. 자신이 지은 모든 건축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위한 실험에 불과했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신을 위한 것이었다. 가우디의 이 괴짜 같은 고집은 평생 그의 건축과 종교를 향한 굳건한 신념이 됐다.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무엇을 할지 그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가우디는 카사 밀라의 조각상을 폭도들이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한 치 앞 일도 알지 못하면서 무언가 굳게 믿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신념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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