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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 언니 Oct 19. 2024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자우림 (Jaurim) - 샤이닝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자면서도 꾸고, 깨어서도 꾼다. 내가 꾸는 꿈은 주로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다. 밤에는 시베리아 벌판에 사는 부족원이 되기도 하고 분홍색 고래를 밭에 심기도 한다. 낮에는 현실을 벗어나 멋진 작가가 되는 꿈을 꾼다. 꿨었다.


블록버스터 뺨치는 총천연색 꿈들은 어릴 적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친구들에게 구연동화처럼 꿈속 모험담을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길 기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여러 밤들을 지나오며 좋은 꿈을 기대하는 날이 점차 줄어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즐거운 꿈보다 꿈꾸지 않는 밤을 바랐다. 꿈을 꾸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몽마는 나를 비웃듯 찾아왔다. 운이 좋지 못한 날에는 꿈에서도 일을 했다. 눈 떠 있는 시간과 감은 시간 24시간을 일한 기분으로 이어서 다음날 출근을 했다. 꿈에서 했던 업무가 기억에 남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무얼 그리 열심히 한 건지 해가 뜨면 모든 내용은 날아가고 고단함만 눈꺼풀에 그득 쌓였다. 


밤에 꾸는 꿈이 나를 괴롭혀왔다면, 낮에 깨어서 꾸는 꿈은 오랜 시간 나에게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지금을 열심히 살고 언젠가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조그만 희망을 만들어 상상 속에서 애지중지 키웠다. 


꿈이 실현되는 장밋빛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막연하고 당연하게 먼 미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삶이 게임이라면 어느 정도 경험치를 올려야 다음 레벨로 진입할 수 있는지, 그 레벨업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현질을 하든 밤을 새든 내가 가망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을 텐데. 세상은 요지경이다 보니 내가 꿈의 계단 어디쯤 와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올바른 계단 위에 있는 것인지, 남의 계단을 오만하게 착각하고 올라서있는 건 아닌지 알 방도 역시 없다.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니 당연히 고지는 멀었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프로파간다에 나를 욱여넣고 끼워 맞췄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언젠가 잘 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무엇을 알았겠냐만은, 꿈을 향한 내 마음에 중간 점검 시즌이 있는 줄도 꿈에도 상상한 적 없었다. 분명 나는 꿈을 좇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꿈에 쫓기고 있었다. 꿈이 수많은 질문을 하면서 쫓아왔다. “왜 아직까지도 이루지 못했어?” “적어도 이 정도까지는 왔어야 하지 않아?” “지금은 왜 쉬고 있어?” “이제 아무렇게나 살기로 작정한 거야?” 


서른이 넘도록 만족스러운 일을 해내지 못한 나를, 성미 급한 또다른 내가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 줄 예상했어야 했다. 낮에 꾸는 꿈도 그렇게 빛을 잃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자우림(Jaurim) - 샤이닝)


김윤아 씨를 매우 좋아해서 콘서트에 여러 번 갔다. 그녀는 김윤아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자우림으로서는 계속 청춘을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르는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음엔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하는 자조적인 의문이 뒤따른다. 그렇게 시작하는 이 노래는 나를 여러 번 울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목청껏 부르며 소리 내 울던 날도 있었다. 누가 나 좀 편안하게 해 달라며,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가슴을 치면서. 이 가사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점은 노래가 해답을 주지 않고 끝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노래의 주인공이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아 혼자서 날개를 달고 이상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버렸다면 나는 배신감까지 견뎌내야 했겠지. 그것은 기만이다. 하지만 김윤아 씨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그저 계속 하릴없이 ‘바람 부는 세상 속에 홀로 서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은 으레 자신의 입장에서 감정에 이입하기 마련이니까 바람 부는 세상 속에서 고통을 토로하는 노래의 주인공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는 질문은 내가 희망했던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진 것이었다.


서른 즈음에 사실 나는 조금은 자리 잡은 작사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내가 꿈을 위해 뒤에 두고 온 실물과 가치들이 나를 더욱 작아지게 했다. 


어린 나이의 뼈를 갈아 명문대에 간신히 입학하고 떠밀리듯 대기업에 입사했던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맞아 꿈을 찾아 헤맸다. 머리를 싸매고 나를 탐구했어야하는 십대를 교과서와 문제집만 파다가 놓친 결말이리라. 우여곡절과 시도, 다년간의 고민을 거쳐 나는 작사가의 길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몇 해 전 용감한 선택을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음악과 관련된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몇 개월은 꿈을 선택했다, 멋진 결정을 내렸다는 스스로에게 취해서 보냈다. 작사가로서의 시작도 나쁘지 않았다. 적지만 오퍼가 있었고, 서툴지만 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봤다. 그리고 아직 시작이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은연중에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이 어리고 순진한 나야. 지지부진한 나의 미래를 알았을 리가 없다. 먼치킨 웹소설 주인공도 아니면서 그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큼 노력했다. 매일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볼멘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그 놈의 갓생!


친구들은 내가 등진 세계에서 멋지게 살아내고 있었다. 더 높은 연봉을 받고, 결혼을 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무언가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설명하는 말이 구구절절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모두 자신을 “XX회사 대리 OOO” “예술가 OOO” 등 간결하게 설명하고 마는 것 같은데, 나만 아등바등 증명하듯 나를 서술해나가야 했다. 음악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작사를 하고 싶으며, 이쪽 전공이 아니라 사실은 모험을 하는 중이라는 둥 나의 상태를 묘사했다. 말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이 짧아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무도 개의치 않았는데도. 


몸이 안 좋아지고, 정신이 피폐해지고, 내가 나인 게 싫어졌을 때. 갑자기 찾아온 병마는 분명 겹겹이 쌓인 원인에 대한 결과였을 것이었다. 병원의 원장 선생님도 약물 치료와 함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나 가볼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약을 먹고 까무룩 잠들었다가 노인이 된 양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 눈을 뜨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좀먹은 수많은 곰팡이 중에 하나는 꿈일 것이라고. 나의 현실과 어느새 멀리 떨어져 버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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