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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 언니 Nov 09. 2024

가시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같은 인생을 탓하고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인터넷에서 본 ‘가능성 중독’이라는 말이 당시의 나를 설명해 주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에 심취한 상태. 작사가나 작가도 될 수 있고, 성공한 스타트업 임원이 될 수도,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가능성만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십 대에 가진 마음이면 좋았을 것을. 언뜻 비친 신기루를 도파민 삼아, 삼십 대의 직장인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불확실한 미래들에 매달렸다. 현재보다 미래에 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사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비정상적으로 폭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나방의 도파민 피버 타임이 끝나자, 결국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 있나- 하는 허탈함과 함께 하얗게 세어버린 몸뚱어리만 남았다. 


아무 에너지도 남지 않은 밤이면 누워서 스스로가 아이폰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충전될 수 없는 빨간색 표시의 배터리를 가진. 아이폰 배터리는 소모품으로, 조립되는 순간부터 화학적인 ‘노화’가 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겉으로는 100%를 다 채워서 충전되는 것처럼 보여도, 배터리를 쓰면 쓸수록 최대 성능 치는 낮아진다. 그 때문에 아이폰 유저들 사이에서는 배터리를 절약하며 잘 쓰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그중 하나 대표적인 방법은 2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잘 유지해 주는 것이다. 배터리가 부족해져서 20%의 빨간색 경고 표시가 뜨기 전에 여유롭게 전력을 계속 공급해 주는 것. 나는 그 규칙을 꽤 잘 지키는 편이었는데, 정작 내 몸에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매번 바닥까지 긁어서 에너지를 썼고, 불을 켜둔 채 앉아서 방전되듯 잠들었다. 두세 시간의 짧은 충전이 끝나면 다시 추슬러서 얕게 충전된 에너지를 갖고 하루를 살아야 했다.


에너지가 전체적으로 부족한 삶은 어떨까. 극도로 예민해진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20%밖에 충전되지 못한 채로 휴대폰을 들고 하루를 버텨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정말 필요할 때를 위해 배터리를 아껴 쓰거나, 언제 많이 필요할지를 가늠해 봐야 할 것이다. 중간에 갑자기 0%가 되어 꺼져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를 위해 나는 내 하루를 계량하고 예측해야 했다. 회사에 가는 데까지 이만큼의 힘을 쓰고,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그때까지 힘을 조금 비축해 두고, 마감인 글을 쓸 힘을 남겨서 집에 오고, 일상생활을 위한 약간의 여분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게 늘 빨간 배터리로 살아가는 나의 생존 방법이었다.


필요한 에너지가 쓸 수 있는 에너지보다 적을 때면 깨어있으면서 어떻게든 에너지를 모아보려고 애썼다.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거나, 점심시간에 잠시나마 산책을 해본다든가,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찾아서 보는 소소한 일들을 보조배터리 삼아 0.1%씩 수명을 연장했다. 이 작은 노력들은 약을 먹기 전에 그리고 약을 먹으면서도 좋지 않을 때, 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방법이자 그 기간동안 해낸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보조배터리가 될 만한 코딱지만한 행복의 일들을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두기도 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내가 충전되는지. 


그러나 어디 인생이 늘 마음처럼 되던가. 0.1%씩 고이 모은 에너지는 순식간에 10%, 20%씩 소진되곤 했다. 인생은 날씨 같은 것이어서, 잘 헤쳐나가다가도 무심한 상사의 말 한마디에 태풍이 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가시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같은 인생을 탓하고"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날씨는 변덕스럽다. 과학 기술이 이만치 발전했음에도 날씨를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나보다. 그게 되면 기상청이 이렇게 욕을 먹겠냐고. 흐름을 짐작해 볼 수야 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준비 하나 못한 채 비를 맞고, 재해를 견뎌내야 하고, 맑은 날에 희미하게게 기뻐하게 된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또 있었다는 걸 이 노래를 듣고 알았다. 싱어송라이터 허회경씨는 한숨을 쉬듯 허탈한 음성으로 전한다.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어쩔 수 없이 소나기가 내리는 인생을 탓해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비에 젖은 고양이마냥 떨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담담하게 탄식하듯 말하는 그녀는 별 수 있냐는 듯 비 맞은 나의 마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는 스윽 난로를 켜준다. 아주 평범한 괴로움을 노래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은 넘을지도 모르겠다는 안도감도 선사한다. 


그렇게 조용히 도인처럼 이 비가 그칠 때까지 큰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쉬어가면 될 것을, 나는 늘 그러지 못했다. 시간도 많고 여유도 충분한 상태에서 만난 비는 편안히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너지 배터리 1%에 만난 비는 아무리 보슬비여도 나에게는 폭풍과 같았다. 그 단 한 방울의 비에도 나는 흠뻑 젖고 마는 사람이니까. 


젖어버려 침잠하는 날에는 ‘가시 같은 말’을 쏟아내야 꼭 직성이 풀렸다. 그런 말을 쏟아낼 때면 나 자신도 가시에 찔린다. 독한 표정의 뾰족한 말을 뱉는 나를 나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호우주의보가 내리면, 나는 어렵사리 입구멍을 틀어쥐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랐다. 나도 예쁜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더 가시가 깊고 뾰족해졌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밀쳐지기라도 하면 째려보게 되기도 하고, 택시 기사가 옆 운전사에게 성을 내면 되려 욕지기를 뱉으며 화를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가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찔러댔다. 못되고 못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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