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오프(Night Off) - 잠
잠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와도 힘들고 안 와도 힘든 것일까.
분명 대학생 때까지 나에게 잠은 떨쳐내야 할 숙적 같은 것이었다. 나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나는 신생아 시절에도 밥도 안 먹고 잠을 자는 통에 엄마가 병원을 데리고 가야 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늦잠 자고 유치원에 지각하는 어린이가 되었고, 일요일 아침 만화동산을 보게 하려고 아빠가 흔들어 깨워야 했을 지경이었다. 중고등학생이 된다고 해서 그 습성이 달라질 리 만무했다. 헬조선에서 태어나 입시에 총력을 다하는 모범생으로 사춘기를 보낸 나로서는 큰 핸디캡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끝내고 와서 나머지 숙제나 공부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어렵사리 들어간 고등학교는 집에서 차로 4-50분 걸리는 거리였다. 새벽같이 셔틀버스를 타러 나가서 집에 들어오면 드라마가 끝날 무렵인 10시 40분쯤. 그때부터 나는 꾸벅꾸벅 잠과 사투를 벌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라는 어른들의 말도 소용없었다. 나는 일찍 자고 싶은 게 아니라 많이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어마무시하게 들었다는 음료를 마셔대도 잠은 잘만 왔다. 그토록 잠이 즐겁고 꿀 같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너는 잠 좀 자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분명 다들 잠 좀 줄이라고 했는데. 그 지침에 따라 착실하게 살고 있었을 뿐인 내가 언제부터 ‘잠을 자야만 하는 사람’ 분기점을 넘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은 죽을 만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워라밸이 매우 좋은 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나면 하루가 종 치고 막을 내릴 시간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주경야독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나는 어딘가 불안했다. 나는 계속 발전하고 있어야 했다. 워킹아워와 이동시간, 기본적 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오려내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나의 정신적 휴식과 자기 계발에 투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치이고 시간이 부족할수록 더 정신을 위한 투자에 몰입하고 싶어졌다. 회사에서 나를 괴롭히고 내 시간을 빼앗아가면, 나는 빼앗기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신 그만큼의 시간을 잠에게서 훔쳐왔다. 그래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일한 나의 자유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 자투리 시간이라도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잠을 참는 것쯤은 십 수년간 내가 해온 일이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주로 글을 썼다. 공모 마감이 많은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그 일을 꽤나 사랑했으므로 나는 잠을 줄여 글을 쓰는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마감이 있는 날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서너 시까지 힘겹게 마감을 맞추고 잠시 잠들었다가 출근을 했다. 갑자기 너무나 졸리면 열한 시부터 열두 시, 또는 한시까지 알람을 맞추고 쪽잠을 잤다. 알람을 몇 번 끄고 일어나면 잠든 시간만큼 더 작업을 했다. 그런 날에는 대여섯 시까지 마무리 작업을 하거나 밤을 꼴딱 새기도 했다. 물론 깨어있다고 해서 글이 마냥 잘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밤마다 나는 침대 헤드에 허리를 받치고 앉아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끌어안고 씨름했다. 허리를 적당히 구부리고 다리를 쭉 펴서 매트리스에 맡기면 나의 고정 작업 자세가 된다. 자기 파괴적, 아니 척추 파괴적 자세였음을 인정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나는 ‘잠들지 말아야지 아직 아니야’ 따위의 생각을 되뇌면서 잠이 든다. 불을 환하게 켠 채로, 눕지 않고 앉은 채. 잘못된 것도 알고 그러지 않으려고도 해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엔딩은 항상 그렇게 동일했다. 침대에 대충 웅크려 앉아서 불을 켜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드는 것.
의사 선생님은 진료에서 몇 가지 확인을 하시더니, 이 들쭉날쭉한 수면 습관부터 혼내기 시작했다. 나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썩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 걸.
억울했다.
잠은 죽어서 자라며 은연중에 갓생을 강요하는 사회에 나를 던져놓고, 두 발 뻗고 코 골면서 숙면을 취하라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평소라면 나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나태한 낮잠을 꿈꾸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나, 계속해서 안 좋아지는 몸에 부응하듯 내려진 ‘중증’ 진단이 스스로에게 나름의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결국 처방약들을 먹고 나는 이상하고 매혹적인 잠을 자기 시작했다.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약을 먹으면 십 분에서 삼십 분 내로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을 먹고 복약을 해야 했는데, 곧바로 눈이 감기니 저녁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속는 셈 치고 몽롱한 세상에 살았다. 일찍 잠드는 탓인지 새벽 두세 시쯤 깨는 일이 생기자 ‘수면을 지속하는 약’을 추가로 처방받기도 했다. 반쯤 잠든 상태로 살았던 날들은 지금도 꿈처럼 기억된다. 그때 나는 잠에 중독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고부터는 전날 밤보다 한 시간이라도 못 자거나 잠깐이라도 중간에 깨면 불안해졌다. 약을 먹기 전보다 훨씬 많이 자고 있는데도.
꿈을 많이 꾸고 일어나는 시간이 자꾸 앞당겨졌을 때는 왜 이러지, 싶어서 병원에 전화를 하고 약의 종류를 바꿨다.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잠깐 잠들면 안 될까' (나이트오프(Night Off) - 잠)
나에게 잠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잠이 그저 잠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잠에 들면 나의 삶이 볼품없는 채로 종료되는 것 같았고, 오지 않았으면 했던 다음 날을 맞이해야만 했다. 일출을 끌어내리는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 나에게 잠은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생,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나이트오프의 ‘잠’은 이능룡의 나른한 기타와 이이언의 의욕 없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가사 속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의 끝’에서 잡고 있던 ‘한 줌의 희망’마저 내려놓는다. 담담하게 부르던 목소리는 후렴구에 가서 조금 울먹이는 애원조로 변하는데 그 부분이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잠깐 잠들면 안 될까’이다.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날도 저물고 아무도 없는데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지 한 번 더 묻는다.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다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이제 그만 쉬고 싶은 마음을. 전부 알 것 같으면서도, 그가 노래를 거듭하며 ‘잠들면 안 되’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아직은 안 돼요”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지금 잠들면 다 끝이란 말이에요. 저는 다 끝내고 싶지만 실은 아무것도 끝내고 싶지 않아요.
내 삶도, 꿈도, 미래도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막았던 잠이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더 검고 깊은 잠을 원하도록 나를 끌고 내려가고 있었다. 나이트오프의 ‘잠’에 등장하는 이처럼. 그는 나와 같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와 달랐다. 끝내 깊은 잠의 허락을 구하던 그와 다르게 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했던 그 열심으로 이번에는 잠을 자서,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그렇게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몽롱하게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