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가 있는 법
올해는 정원에 있는 철쭉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한껏 싱그럽게 꽃잎을 빳빳이 치켜들고 도도했어야 하는데, 무언가 축 늘어진 느낌.
아빠가 뜸했다.
사랑이 뜸했다.
아빠는 식물을 사랑한다.
사랑으로 자란 것들은 자태가 다르지. 어딘가 우아한 게.
“아빠, 이거 연보라색 꽃 이거 잡초야?”
“잡초야.”
“뽑아?”
“예쁘면 둬. 야생화나 잡초나. 그것도 자리 잡아놓고 이쁘게 모아놔 봐라. 어디 그게 잡촌가.”
오늘 정원을 비춘 햇볕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진짜, 얼마만이야. 이런 시간이.
정원에서 아빠랑 가만히 앉아 대화를 나눈 게.
올해 흐드러지게 꽃이 피지 못한 건, 물이 부족해서였다.
날이 가물기도 했고, 꽃이 필 무렵 물을 흠뻑 주지 않아서.
사는 게 바빴다. 조금 핑계다. 집 안에 오면 내 목구멍에 물 넘기기 바빴으니까.
할아버지가 가꾸던 정원은 아빠의 정원이 되었고, 아빠의 정원의 반의 반은 이제 내 정원이다.
향나무 잔가지를 치고, 장미의 죽은 가지를 자르며
오래 묵혀두었던 내 삶의 무언가도 같이 잘랐다.
숨통이 트인다.
향나무도, 나도.
정원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
식물 돌보는 일은
내면을 돌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