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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Kim May 05. 2022

[일상 단상] 꽃이 필 때 물을 흠뻑

다 때가 있는 법

올해는 정원에 있는 철쭉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한껏 싱그럽게 꽃잎을 빳빳이 치켜들고 도도했어야 하는데, 무언가 축 늘어진 느낌.


아빠가 뜸했다.

사랑이 뜸했다.

아빠는 식물을 사랑한다.

사랑으로 자란 것들은 자태가 다르지. 어딘가 우아한 게.


“아빠, 이거 연보라색 꽃 이거 잡초야?”

“잡초야.”

“뽑아?”

“예쁘면 둬. 야생화나 잡초나. 그것도 자리 잡아놓고 이쁘게 모아놔 봐라. 어디 그게 잡촌가.”

오늘 정원을 비춘 햇볕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진짜, 얼마만이야. 이런 시간이.

정원에서 아빠랑 가만히 앉아 대화를 나눈 .


올해 흐드러지게 꽃이 피지 못한 건, 물이 부족해서였다.

날이 가물기도 했고, 꽃이 필 무렵 물을 흠뻑 주지 않아서.

 

사는 게 바빴다. 조금 핑계다. 집 안에 오면 내 목구멍에 물 넘기기 바빴으니까.

할아버지가 가꾸던 정원은 아빠의 정원이 되었고, 아빠의 정원의 반의 반은 이제 내 정원이다.


향나무 잔가지를 치고, 장미의 죽은 가지를 자르며

오래 묵혀두었던 내 삶의 무언가도 같이 잘랐다.

숨통이 트인다.

향나무도, 나도.


정원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

식물 돌보는 일은

내면을 돌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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