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는 없었다. 의자에 앉았는데 떨리기 시작했다. 다리에서 손으로, 가슴에서 눈으로 심하게 떨려온다. 순식간에 이 현상을 기억해냈다. 떨림이 멎으면 곧 아플 것이다. 끼니를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버틸 수 있을지 두렵다.
희미해진 기억 속의 중간고사 하루 전, 책상에 앉았는데 몸이 떨려왔다. 피부를 뚫고 들어간 벌레가 핏줄로 이동하는 것처럼 섬찟하다. 꿈틀거림에 소름 끼친다. 굳게 먹은 의지가 아득하다. 두려움 먼저 그리고 아픔의 순서로 덮쳐온다. 무시하고 책을 펼쳤다. 번개 맞은 아이처럼 흔들거린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재난에 맞선 짐승의 본능처럼 움직였다.
채 10분이 되지 않아 열이 올랐다. 버려진 온천의 쇠 냄새가 난다. 이제 시작이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 버틴다. 단단하지 못했음을 자책한다. 슬프지는 않다. 어지럽고 젖고 막힌다. 고열에 숨이 마른다. 잠들지 못하는 꿈을 꾼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젖고 말라 지친 몸을 쳐다본다. 이유 없이 기분이 상쾌하다. 담금질된 면역을 받은 것 같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것이다. 공부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음을 체크했다. 중간고사는 거뜬할 것이다. 슬프지 않은데 울었다. 슬픔 없는 눈물이 이해된다.
아프지 않을 면역 증서, 평생을 보증한 문서가 사라졌다. 50년은 멀쩡할 줄 알았다. 그날 이후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홀로 견뎌 받은 선물 같았다. 대가의 유효기간을 믿지 않았다. 몸이 떨리자마자 누웠다. 가진 이불을 모두 꺼내 덮어썼다. 곧 시작될 것을 예감한다.
커튼 없는 방, 하루를 누워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왜 지금일까? 나에게 수없는 작별을 한다. 일어나, 젖었다 마른 몸을 본다. 아팠으나 버텨냈다. 상황을 체크했다. 중간고사 없는 나이가 되었다. 상쾌하나 거뜬할 수 없다. 증서는 없다. 선물도 없다. 대가도 없다. 슬프지는 않다. 슬픔 없는 눈물을 인정하지 않는다.
"늘 누군가 나를 발견할까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어디서 본 문장이 떠올라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