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린 Aug 13. 2021

네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뒤돌아봐

-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입추가 오면 고추가 익는다. 봄에 심었던 고추 모종이 고추나무가 되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한여름 뙤약볕 쬐며 초록은 점점 벌게졌다. 남편은 이른 새벽부터 고추를 따러 나갔다. 나는 쌀을 씻는다. 쌀을 잘 불려야 밥알이 통통하고 기름지다. 미역을 물에 담그고, 삶은 소고기를 결 따라 찢는다. 첫째가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얼추 아침 준비를 마치고, 두 아이를 깨운다. “학교 가야지.” 잠든 볼에 입을 맞추고, 팔다리를 살포시 주무른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옷을 입힌다. “나 이 옷 싫어. 더 짧은 거….” 첫째가 앉더니 다시 눕는다. “티셔츠는 이거 말고 하얀 거….” 둘째는 화장실까지 다녀와 식탁에 앉았는데 첫째는 아직도 이불 속이다. 뻐꾸기시계가 여덟 번 울린다. ‘30분 안에 나갈 수 있을까.’ 마음이 촉박하다. 첫째가 그제야 일어나 밥을 미역국에 말아 단 번에 해치운다. 다행이다.


  도시락 주문이 까다롭다. “멸치볶음 말고 미역국 싸줘.”, “탕수육 소소는 따로 넣어줘.”, “파인애플도 가져갈래.” 정신없이 도시락을 싸며 첫째에게 말했다. “엄마 도시락 싸는 동안 양치질하고 머리 풀고 있어.” 그 사이 둘째는 화장실에서 나와 마스크까지 하고 있다. “나 먼저 갈게.” “응, 엄마랑 누나도 금방 나갈게.”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도솔 미레미레 미도’, ‘산중호걸이라 하는’ 피아노 소리였다. 첫째 이름을 부르자, 노래가 멈췄다. 거실로 가니 아이가 소파에 앉아 있다. “시간 없다고, 서두르라고 몇 번 말했어? 지금 피아노 치는 게 말이 돼?” 아이 머리를 묶는 손길이 거칠다. 아이는 울상으로, 책을 챙긴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내 목소리가 커졌다. “학교 차 온다고!” 아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럼, 차 타고 가면 되잖아.”


  남편이 있었다면 차에 시동을 켰을 것이다. 집에서 학교 차가 오는 곳까지 220m,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추워서 걷지 않는다. 미세먼지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오지 않으며, 시간까지 넉넉한 날은 거의 없다. 내가 소리쳤다. “조금만 서두르면 되잖아. 이 짧은 거리를 매일 차 타고 다니는 거 엄마는 싫어.” 환경오염까지 운운하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리는 손끝만 간신히 걸치고 걸었다. 아이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학교 가기 전에는 모두 아이 뜻에 맞춰주자.’ 결심한 나였다. 아침에 늑장 부리는 일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반복된 일이다. 야단을 치면 시간만 지체됐다. 저 멀리 학교 차가 보였다. 흐르는 눈물 위에 마스크를 씌웠다.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겉모습밖에 볼 수가 없어. 거의 모든 일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데 말이야."

 -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상상의 힘, 2020)



  낟알 맺힌 벼, 쭉 뻗은 옥수수를 무심히 지나쳤다. 논둑에 홀로 핀 달맞이꽃이 애잔했다. “아침부터 수고 많았네.”라는 남편의 인사에 웃었지만, 돌아오는 내내 뒤가 묵직했다. ‘마음이 왜 이러지?’ 시간이 있었다면 아이를 더 몰아붙였겠지. 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넌 엄마가 우스워? 바쁘다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까 그 와중에 피아노를 치지. 너 어제 아침에는 소파에 누워있었지? 숙제하라고 하면, 씻으라고 하면 갑자기 산중호걸을 치잖아. 엄마는 그 멜로디만 들으면 너무 짜증 나.’ 분노라고 하기에 몸 한 구석이 서늘했다. 분하기보다 부끄러웠다.



"쟤들은 어쩜 저렇게 둘이 완벽하게 어울려 보일까? 소년이 물었습니다.

"저 아래에서 허둥거리는 발짓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지." 말이 말했어요.

"가장 심각한 착각은." 두더지가 말했습니다.

"삶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 위의 책.



  집은 패전 후 집터처럼 난잡했다. 둘째가 남긴 미역국의 소고기를 씹으며, 바닥에 떨어진 반찬을 주웠다. 너저분한 이불과 옷가지를 거두고, 청소기를 돌렸다. 집이 헝클어지면, 마음도 어지럽다. 거실이 장난감으로 발 디딜 틈 없을 때, 책상이 온갖 쓰레기로 가득할 때, 나는 속이 뜨거워진다. 나는 ‘완벽’을 꿈꾼다. 요리를 할 때, 만두가 터지고 부침개가 타면 느닷없이 화가 났다. 완벽은 비단 물건이나 음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에는 완벽한 엄마가 산다.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너그럽다.  문제는 쏟아내지 못한 노염이 아니라, 터져버린 아이의 눈물이었다. 내가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 아침부터 애를 울려. 마스크 쓰고 학교 가는 애가 불쌍하지도 않아? 저렇게 학교 가면 하루 종일 기분이 어떻겠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태양이, 구름이, 바람이 나를 힐난했다.



  나는 나에게 친절하지 않다. 이상주의자의 삶은 늘 이상에 못 미친다. 나는 완전한 엄마, 아내를 갈망한다. 상상 속 착한 엄마와 현실 속 나쁜 엄마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어떤 내가 ‘나’인지 몰라서 허둥댔다. 가슴이 답했다. ‘내가 죽일 년이지.’ 할머니의 말이었다. 할머니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다짜고짜 죽겠다고 했다. “쥐약 먹고 콱 죽어 버릴 거야.”라며 악다구니를 썼다. 아버지도 가끔씩 “나 오늘 죽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이 선포하는 죽음을 내 가슴에 고이 새긴 것이. 방법은 자책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말했다. “내가 열망하는 ‘이상’이라는 게 대체 뭘까. 예전엔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다 허상 같아요. 늘 기대에 못 미치니까 죄책감에 빠져들고…. 우는 애를 보내 놓고, 내가 용서가 안 됐어요.” 남편이 답했다. “영어 시험 볼 때 지문을 완벽하게 해석하지 않잖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풀 문제는 많으니까 핵심어를 파악하고 답을 찾는 게 우선이야. 우리 인생도 그렇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완전한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 해. 정말 중요한 것만 붙잡으면 돼. 그래도 나중에 보면 대부분 정답이지.” 나는 내게서 받지 못한 친절을 남편에게 바랐다. 내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귀엽다며 넘겨주길 원했다. 가끔 그가 내 요구에 미치지 못하면 부르르 떨었다. 그 또한 내 이데아 속 남편이었다.



  할 것이 많다. 해야 할 설거지, 빨아야 할 옷, 치워야 할 방. 집안일은 지구를 닮았다. 지구는 아무도 모르게 자전한다. 덕분에 해가 뜨고 지지만, 아무도 지구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손에 쥔 것이 많다. 읽어야 할 책, 써야 할 글, 들어야 하는 강의가 쌓여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읽다 말고, 쓰다 말고, 듣다 만다. 나에게 말한다. ‘성공 별 거 아니야. 사랑하는 거래.’ 조금 안심이 된다. 열심히 뛰는데 늘 제자리이다. 언제쯤 러닝머신을 벗어나 진짜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해서 마음만 조급하다. 나에게 말한다. ‘네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뒤돌아봐.’ 돌아보니, 그리운, 그늘진 발자국들이 찬란하다. 이만큼 오느라 수고했다. 친절하게 나를 안아준다.


그날 아침, 아이와 나. 그림일기.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는 요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