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음
[깜언 베트남 1]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더위와 장마가 반복되던 8월 어느 날, 비 예보가 있어 고추를 따러 하우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비가 내려 괜찮았는데, 절반을 넘어설 무렵 해가 구름 사이로 까꿍 했다. ‘이놈의 기상청 놈들….’ 순식간에 하우스 온도는 40도를 넘었고, 아버지는 끝낼 생각을 안 했다. 땀이 비처럼 흘렀지만, 지칠 수 없었다. 이건 노동이 아니라 며칠 후 베트남 다낭 라운딩 대비 훈련이니까!
올 초에 김차장이 내년 1월 한국 복귀 소식을 전했다. 반가운 일이지만, 다낭에서 골프를 더 치고 싶은데 어쩌지? 그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먼저 샀다. 한창 바쁠 때라 김사장은 ‘합류가 어렵다.’고 했지만, 어느새 그는 내 옆자리 표를 사두었다. 이렇게 남자 셋의 다낭 라운딩은 1년 만에 다시 성사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8월 31일, 집을 나섰는데 김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 “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어.” 응, 그건 네 사정! 지하주차장에서 보는데 나랑 뭔 상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했다. “캐리어랑 캐디백은 내가 들고 내려가면 되는데….” “되는데?” “음식물 쓰레기가 있어.” 음, ‘음쓰’가 계단에 쏟아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올라갈게!”
숨 한 번 쉬고, 한층 걸어올라 곧 18층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김사장이 환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디스 이즈 파머스 클래스!”(문법 파괴(grammar free) 영어의 시작!) 괜히 김사장이 뒤에서 덮칠까 봐 캐리어를 들고 바람처럼 내려왔다. 한참 뒤에 내려온 그가 하는 말, “몸 다 풀렸다. 아주 잘 맞겠어!” 그래, 덕분에 하체 강화 훈련을 제대로 했다, 이 자식아!
인천공항에 가는 와중에도 김사장은 거래업체와 끊임없이 통화했다. 파란 하늘에 친절한 그의 목소리가 더해져 기분이 좋았다. 공항에 거의 도착할 무렵, 김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출국장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야, 주차장으로 가야지!” “아, 맞다!” “지난번에 왔었잖아!” “난 네가 있어 참 좋다.” 출국 수속 할 때도 “네가 있어 참 좋다.” 그의 허당미에 그냥 웃음만 나왔다.
18층을 오르내린 피로를 (둘이 합쳐) 18잔의 맥주로 풀고 다낭으로 날았다. 30분 출발이 지연돼 마음이 급했다. 김차장 기다릴 텐데….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김사장이 말했다. “나 화장실.” 아, 이 새끼. 미리 좀 싸지. 그렇게 쳐 자더니. 화장실에 들르니 줄이 더 길어졌다. 그때 김차장이 보였고, 덕분에 편하게 나갈 수 있었다. “고마워 김차장!” 그러자 그는 그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