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깜언 베트남 4]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일찍 일어났네?!(웃음)”
일찍? 지금 8시 45분인데? 일어난 지 3시간은 잘 참았고, 약속시간 15분을 참지 못해 김차장 방문을 두드렸다. 술 먹은 다음 날 아침 몇 시간 동안 뜨끈한 걸 뱃속에 넣지 못한 적 언제던가. 속 쓰림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는데, 그의 웃음을 보고 허무하게 풀렸다. 20년 전부터 보아온 세상 순한 웃음이다. “쌀국수에 맥주 먹을까?” “응, 그리고 나 돈 좀 줘.” “으하하하!”
남자 셋이 쌀국수에 맥주, 커피까지 마시는데 든 돈은 4십만 동,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만 원이 안 됐다. 거기에 사람들의 친절한 인사까지, 부자가 된 기분이다. 채울 거 다 채웠으니 ‘혹서기 전지훈련’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운동하러 가야지! 1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가는데, 슬슬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어제 ‘느낌이 아주 좋았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의 첫 라운드는 라구나 랑코(Laguna Lang Co Golf Club). 1년 전 호이아나 CC에서 나의 머리에서 스낵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골프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봉착했을 때 한줄기 희망을 보여준 곳이다. 덕분에 나는 1년을 버틸 수 있었고, 그런 곳에 다시 왔으니 오늘, 드라마를 한 편 찍어야지! 우리 셋과 함께 촬영할 배우는 김차장의 지인 T선배.
드라이빙 레인지에 들어설 때부터 말이 없어졌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들판,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 작렬하는 햇살. 가만히 눈을 감았다. “후!” 지난 1년 동안 내 몸을 거쳐 간 수많은 동작들이 떠올랐다. “슝, 탁!” 나쁘지 않았다. 아이언의 방향도 거리도 괜찮았다. 드라이버는 어떨까? “슈웅, 타악!” 오, 이거 괜찮은 걸? 이러다 잘하면 정말 드라마?!
지난번에 왔을 때, 두 번의 라운드를 함께 하고, 바로 이곳에서 김차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원래 남 골프 치는데, 말 안 하는 편인데 (…)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들었다 내려쳐, 단순하게!” 그런 그가 이번엔, “잘 맞네, 힘도 실리는 거 같고.”라며 힘을 실어줬다. 내가 맨 앞에서 쳐서 몰랐는데, 간간이 내가 치는 걸 봤나 보다. 아, 이게 뭐라고, 먹먹해지지?!
좋은 기운이 달아날까 길게 답하지도 못했다. 김사장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차장이 온라인 회의를 잠깐 하고 온다며 가기 전 우산을 내 캐디백에 넣었다. “나 우산 있어!” “알아, 이따 내가 화가 나서 우산 부러뜨리면 달라고.(웃음)” 헉, 너 같은 순둥이가? 골프, 이게 뭐라고, 사람의 말문을 막으며, 우산을 반 토막 내게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