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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Sep 20. 2023

보기 플레이어

[깜언 베트남 5]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가즈아!


‘삼시 세 끼 드링킹’이란 내적 목표를 지키기 위해,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니 김차장이 돌아왔다. 13시 40분, 라구나 랑코 티오프 시간. 김사장 자네가 운전을 하게, 스코어는 내가 적겠네. 야무진 약속을 하고 1번 홀로 가려는데, 김차장과 T선배는 카트를 타고 쏜살같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야, 일단 따라가!” 난데없는 추격전 끝에 도착한 곳은 파 4의 12번 홀이었다.


‘경치 참 좋다.’라고 생각하는데, 희한하게 손에 들려 있는 드라이버는 벌벌 떨고 있다. 다들 시원한 드라이버 샷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하는데, 나는 좀 달랐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깨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첫 홀은 ‘양파’로 끝났다. 드라이버는 물론 아이언, 웨지, 퍼터, 뭐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나와 반대로 김사장은 깔끔한 보기로 마무리.


아마도 그럴 거야. 1번 홀부터 할 줄 알고 그동안 수없이 힘찬 출발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다른 곳으로 가니 다른 결과가 나온 걸 거야. 아침에 아내가 ‘저녁에 제육볶음 먹자.’라고 해서,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면서도 ‘소주도 한 잔 해야지.’라고 힘을 냈는데, 돌아왔을 때 ‘맛있는 된장찌개 준비했어요!’라고 웃으며 말할 때 느껴지는 낭패감과 비슷할 거야.


파3 13번 홀은 어찌어찌하여 더블 보기로 막았다. ‘양파에 비하면 괄목할 발전’이라고 홀로 쓰담쓰담하고 있는데, 김사장은 이번에도 보기! 이야, 멋진데, 김사장! 과연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레슨을 받으며, 정기적으로 필드를 나가니까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구나! 아, 고민된다. 나도 레슨을 받아야 하나? 좀 더디더라도 온전히 혼자 힘으로 오르고 싶었는데….


김사장이 말했다. “지금 우리 수준이 딱 거기인 것 같아. 베스트로 쳤을 때 보기 플레이. 운이 좋으면 파가 나오기도 하고, 버디가 나오면 완전 땡큐지.” 차분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뭔가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뭐지? 일단, ‘우리’라고 묶어줘서 땡큐다! 그렇다면 나도 베스트 플레이를 하여 보기에 닿아야 하는데, 아, 파 5는 그린이 너무 멀다. 트리플 보기도 감지덕지다.


내가 트리플 보기를 하는 동안 김사장은 보기를 추가하여 세 홀 연속 보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스코어를 보자면, T선배와 함께 공동 1위! 김차장이 김사장의 어깨를 툭 치며 “이야, 보기 플레이어!”라고 말했고, 김사장은 해맑게 웃었다. 나한테 뭐라고 응원을 건넬 줄 알았는데, 옆에서 보기 힘든 플레이를 하는 압도적 꼴등에게는 말도 사치인 듯 김차장은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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