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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Sep 12. 2023

Be light, Delight!

[깜언 베트남 2]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한잔 할래?”


다낭 공항에서 차에 올랐을 때 김차장이 물었다. 어쩜 이놈은 사람 마음을 이리 잘 헤아릴까. 내일 골프는 내일 일이고, 일단 혈중알코올농도를 높여주는 게 여행자의 기본 아니겠는가. 그는 최근 지인 M이 연 와인바 ‘Under the SEA’로 우리를 안내했다. 11시가 다 된 시간이지만, 다낭의 밤은 활기차기만 하다. 젊은(아니 어린) 친구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크기의 달팽이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M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저기 주먹만 한 달팽이가 있어요.” 그러자 그는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로 답했다. “잡아서 요리해 드릴까요?” 그럴 운명이 아닌데, 이방인 때문에 멀쩡한 달팽이를 접시행 시킬 순 없지. 옆에 작지 않은 새끼 달팽이도 있는데 말이다.


“짠!” 와인바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1년 만의 상봉을 축하했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안부와 근황 토크를 거쳐 지난 1년간의 골프 연습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전 김사장이 스코어 카드를 올리며, ‘아주 만족스러운 라운드’라는 후기를 남겼다. 맞아, 돈 들여, 시간 들여, 마음 들여 치는 골프인데, 만족하면서 해야지.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는 게 문제야.


김차장은 ‘여유’를 말했다. 여유 있게 한 타 한 타에 집중하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는 게 문제야. 그래서 요즘엔 스코어보다 호흡과 리듬에 집중하고 있다고…. 둘에 비해 한참 경험이 부족한 나도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머리를 짜내 ‘가벼움’을 꺼내놓았다. 괜히 힘만 잔뜩 넣어 휘두르면 망해도 더 크게 망하는 것. 어차피 망할 거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자!


김 차장과 김사장이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쳐주었다. 진짜 좋은 샷을 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 이래서 토크쇼 할 때도 객석의 반응이 중요한 거구나. 시원한 맥주와 친구들의 응원에 기분이 좋아진 안기자(나)는 입이 터져버렸다. “사실 말이야. 이틀 전에 집에 설치한 밤나무 골프장에 그물이 찢어져 버렸어. 며칠 전에 연습장 갔다 왔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단 말이지.”


가슴이 웅장해질 찰나 김사장이 말했다. “저 새끼 또 저런다.” 김차장은 박장대소! 내가 설레발을 치다 망하는 게 우리의 패턴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그러고 있다. 문득 1년 전, 100타를 깨겠다고 들어갔다 호이아나 CC에서 멘털이 깨진 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불안감이 알코올에 휘발된 탓인지, 그냥 잘 될 것 같다. 번지점프인지, 고공행진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금세 날이 바뀌고 계단을 오르는데 아까 봤던 달팽이가 보이지 않았다. 꾸준히 오르다 보니 저 계단을 다 올랐구나. 나도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언젠가 더 높은 곳에 닿을 거야. 큰 달팽이는 김차장, 작은놈은 김사장, 안기자. 큰 놈은 더 커지고, 작은놈도 곧 커지기를! 지치지 않고 치기 위해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Be light, D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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