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언 베트남 15]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어쩌면, 혹시나, 깨백을, 하려나…?’
안기자 드라이버의 이름은 미상(美想), ‘아름다운 상상’이란 뜻이다. 지금껏 늘 악몽이었는데, 이번에는 미상 씨 덕분에 희망이란 걸 갖게 되었다. 보통 초반에 망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좋아지니,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제처럼 파에다 운 좋게 버디가 나오면 ‘라베(Lifetime Best Score)’를 얻을 수도 있겠다. 꿈같은 상상을 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은 파 3 14번 홀.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그 넓은 그린을 두고 티샷이 벙커에 빠졌다. 골프 초보자에게는 ‘드라이버-아이언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아이언이 조금씩 삐걱되기 시작했다. 벙커나 페어웨이나, 워낙 실력이 별로라, 별 차이 없이 쳤는데, 벙커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깨백’이란 말이 벌써 작별인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5번 홀 드라이버는 잘 맞았다. 네 명 모두 티샷이 쭉쭉 날아가자 김차장이 말했다. “걷자. 멀리 쳐놓고 넷이 나란히 잔디 밟으며 걸어가는 게 꿀맛이지.” 맞다, 꿀맛. 나는 잠시 후 벌어질 일을 알지도 못한 채 해맑게 걸었다. 높은 언덕이 그린을 가리고 있어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세게 쳤더니 그린을 훌쩍 넘어 러프에 빠졌다. 벙커와 러프, 핸디의 역습이 시작됐다.
‘러프라고 별 거겠어? 그냥 모래에 풀 있는 거지!’ 그동안 내가 농사를 지으며 깎은 풀이 얼마인가. 호이아나 CC 전체 면적보다도 넓은 것이다. 또 심심하면 클럽 갖고 나가 싹둑 베고는 했다. ‘러프에서 그린이 멀지 않으니 너무 세게 치면 안 될 것이야.’ 그러고 쳤는데, OMG, 풀이 헤드를 꽉 물고 있어 딱 30CM 나갔다. 나보다 더 놀란 캐디, 눈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
아까 그 소리, 핸디캡이 바위를 뚫고 나오는 소리였구나! 반대로 김사장은 자기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반에 좋지 않아 어두웠던 표정도 밝아지고 있다. ‘안기자-김사장 총량의 법칙’ 대로 그가 잘 되자 나는 더 수렁으로 빠졌다. 드라이버는 정확히 러프로 날아갔고, 넓은 바다가 펼쳐져 호연지기를 키울만한 풍경에서 공 찾기에 바빴다. 일행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가장 아쉬운 건 전반 마지막 파 5 18홀. 드라이버가 ‘오잘공’이라고 할 만큼 정말 잘 맞았다. 그런데 세컨드 샷이 그 넓은 페어웨이를 외면하고 물이 빠져버렸다. ‘퐁’ 소리와 함께 깨백에 대한 기대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핸디의 역습을 얼굴로 받은 나는 늙어있었다. 그때 캐디가 물가에서 공 두 개를 주워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파이팅!” 그래, 파이팅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