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트남 하이웨이 레이디오

[깜언 베트남 15]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우리는 신났다. 흥 폭발 김차장은 하이웨이 레이디오 DJ를 자처했다. 첫 곡은 김사장님이 신청한 곡입니다. “우리가 길 끝으로 가잖아? 보이즈투멘의 ‘End of the road’ 어때? 좋잖아, 캬~” 다음 곡은 안기자님이 신청한 곡입니다. “휘트니 휴스턴 누님이 빠질 수 없지. ‘Run to you’. 한 번 울어보자!” 남자 셋은 순식간에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DJ DOC의 ‘런투유’까지는 어떻게 봐주겠는데, 갑자기 이박사의 ‘몽키 매직’이 나왔다. DJ 김차장의 폭주! 김사장은 아랑곳 않고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노래방 18번 목록을 보고 있다. 이건 무슨 뭐, 탑골가요 리스트니? 우리의 선택은, 우리 출국했으니, 천재 뮤지션 하림의 ‘출국’. 다음 곡은 자연스럽게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나 이 가사 왜 외우고 있니?


창에 머리를 대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그 사람, 그 사람을 생각하기 위해 듣는 이 노래. 이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구절, ‘이대로 흘러가. 네가 알던 나는, 이젠 나도 몰라. 라라라라라라’ 이 ‘라~’는 무슨 의미일까. 맥락상 잊었다 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잊힐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 라라라라라라.


헤어지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김차장 지인의 결혼식에 그녀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김차장에게 손편지를 전달했고, 김차장은 그녀에게 전달했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변함이 없었고, 난 조급했고, 그게 끝이었다. 다음 김사장의 신청곡은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결혼 한 그녀를 우연히 만난 ‘나’, ‘너의 이름을 부를 땐, 넌 놀란 모습으로 음음음.’


살다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말로 담을 수 없는 감정, 복잡한 생각. 그래서 라라라, 음음음. 세상에 얼마나 많은 말이 있는데, 표현하지 못할 게 있나 싶은데, 도무지 그런 게 있더라. 그럴 땐 애써 말을 찾기보다 그냥 웃거나, 침묵하거나, 라라라 하거나. 김차장이 물었다. “친구한테 말해서 I한테 연락해 볼까?” 나는 바다를 보며 노래했다. “라라라라라라”


20200111_101620.jpg Vietnam Highway Radio Station. 길 위를 달리며 음악을 들으면 흥, 감성이 폭발하기 딱 좋다. 우리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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