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아이

[깜언 베트남 14]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아침 7시 반, 하노이 타워에 도착. 버스가 우리를 기다렸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버스를 탈까, 따로 갈까. “가서 다른 데 더 보고 올 수 있으니 우리 차 타고 가자.” 김차장 덕분에 우리만의 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투어 비용에 왕복 버스비도 포함돼 있지만, 이곳에서 남자 셋의 시간은 그보다 귀할 터. 40년 만의 해외여행, 결혼하고 첫 여행, 처음 방문한 친구들.


아이유 노래를 들으며 하노이 밖으로 나가는 길, 아저씨들 감성지수 대폭발! 한껏 감상에 빠진 나는 창밖 풍경에서 한국의 10년, 20년 전 모습을 보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참을 수 없어 소리쳤다. “어디 휴게소 없나? 맥주 한 잔 해야겠다!” 기다린 듯 휴게소가 나오고 맥주와 이름 모를 과일 과자를 샀다. 핫도그 광고를 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님과 기분 좋은 한 컷!


오락가락하는 비, 모닝 비어는 사람을 더 촉촉하게 했다. 그때 논 바로 옆에 자리한 무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농부는 살려고 일하러 나와 죽음의 공간을 지긋이 바라보겠지. 부모의 무덤에 걸터앉아 ‘사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며 푸념도 하겠지. 자식 손 꼭 쥐고 나와 수십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나누겠지. 이곳은, 삶과 죽음의 거리가 참 가깝다.


30년 전 우리 동네가 떠올랐다. 사촌 누나가 밤길에 플래시로 길가 무덤을 비춰 엉엉 운 적이 있다. 마을마다 상여를 보관하는 움막이 있었고, 겨울에 무덤은 좋은 눈썰매장이 되었다.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죽을 때 기분이 어떨까?’ 서툰 상상을 했다. 죽음 말고도 세상에 낯선 게 많던 아이, 인생의 여행자 아닐까.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어 걷고, 노래하고, 지치면 쉬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은 시절,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란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남들만큼(보다)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기 시작하면서, 여행자의 지위는 상실됐다. 그 대가는 지독히 바쁜 일상,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 길 위에서 죽은 듯 잊고 있던 아이를 만났다. 촌스럽지만, 미움을 모르는, 눈 맑은 아이야. 참, 반갑다.


20200111_100758.jpg 논에 붙어 있는 베트남 무덤들. 삶의 현장에서 죽음, 사라진 것들을 다시 떠올리겠지. 아마 힘이 될 거야.


keyword
이전 15화하노이 강의 물 한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