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예전에 네가 스태틱이 편하다고 했을 때 무슨 말인지 궁금했어. 난 스태틱이 단 한 번도 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
H는 스태틱(static apnea,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움직이지 않는 프리다이빙 종목)을 하며 자주 블랙아웃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숨을 참다 의식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내 정신으로 내 몸을 이겨보고 싶었어. 내가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나를 잘 몰랐던 거야. 숨을 참다가 수도 없이 의식을 잃고 나서야 ‘아, 내가 나를 혹사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어. 예전부터 늘 그렇게 살았는데, 또 그러고 있더라고. 그러다 어느날 다짐했지. 다시는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겠다고.”
'마냥 부드러운 사람인줄만 알았더니 강단이 있었네....'
H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도 몰두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것이 건강과 안위에 위협이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포기하는 편이다. 그런데 H는 나보다 더 깊고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들을 다 겪었어야 했나 봐. 이제는 잘 알아. 꼭 그래야만 할 것은 없어. 해야만 하는 것도, 증명해야 하는 것도. 그냥 나 그대로 살면 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노멀 한 삶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의 내 삶은 이미 성공적이야. 누가 뭐라 하든 난 내 방식대로 성공했다고 느껴. 음... 인터내셔널 한 나무늘보의 삶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덧붙였다.
“적어도 남들 다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따뜻한 이국의 거리에서 아무 목적 없이 천천히 걷다가, 멋진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잖아.”
‘나무늘보의 삶이라... 어떤 삶일까?’
나는 꽤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일에 몰두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종종 ‘로봇’, ‘호랑이’, ‘독수리’라고 불렀다.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스케줄에 따라 할당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목표가 생기면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고,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달린 결과는 불면증이었다. 잠들 수 없는 밤들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보낸 신호는 분명했다.
‘쉬어야 해.’
처음에는 신체적인 이상으로만 느껴졌다. 숨쉬기가 어렵거나, 가슴이 답답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적절한 시간만 주어지면 내 의지를 발동해서 시간을 들여 행동하고 끝내 모든 것을 성취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그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이 이제 더는 뭔가를 할 여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존의 운동들―달리기, 헬스, 웨이트―은 몸을 더 흥분시키는 느낌이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더 안절부절못했다. 오히려 잠들기가 더 어려웠다. 매일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야 마음이 놓였던 나는 새로운 종목을 찾기 시작했고, 그 무렵 친구가 권유한 ‘프리다이빙’이 귀에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물을 좋아했다. 목욕탕 냉탕에서 바가지 두 개를 이어 붙여 부력 도구를 만든 기억도 있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물속에서 놀곤 했다. 물은 내게 늘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물속에 잠겨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부드럽게 감싸는 감촉이 온몸을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하자,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아이다(AIDA)라는 국제 프리다이빙 단체의 자격을 차근차근 취득해 나갔다. 물속에 있는 것이 편하니 다이빙 자체가 쉬웠다. 편안한 마음으로 숨을 참고, 강사들이 알려준 몇 가지 기술만 잘 적용하면 깊이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프리다이빙 대회 한 번 나가봐!”
그 말이 시작이었다. 마음의 응석을 받아주기 위해, 이완하고 쉬기 위해 시작했던 프리다이빙에서 본래의 나처럼 숫자와 기록에 집착하는 프리다이빙을 하게 된 것이다. 더 오래 숨 참기, 더 깊은 수심... 또다시 성과 중심의 삶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프리다이빙은 그럴수록 역효과가 나는 종목이다. 불안하거나 초조하면 숨을 오래 참을 수 없다. 오직 마음이 편안할 때, 릴랙스 상태일 때 비로소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 나는 점점 깊은 목표 수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얼리턴을 해서 수면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숨을 더 오래 참아야 하지? 내가 하고 싶었던 프리다이빙은 이게 아니었는데...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까?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걸까? 왜 이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더 이상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남과도, 나 자신과도. 특히 물과도. 나는 그저 물 위에 둥둥 떠서 조용히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H는 자신을 이겨보고자 프리다이빙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는 아무것도 이기지 않기 위해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경쟁과는 거리가 먼, 나만의 쉼의 시간으로서의 프리다이빙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H가 소리친다.
“그래서 말인데, 수영장 가서 둥둥 떠 있기나 하자. 얼른 수영복 입어!”
‘맞다. 둥둥 떠 있기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지.’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잊지 말자. 물에선 그냥 떠 있기만 하는 거야. 또 나를 몰아붙이지 마. 명심해, 나.’
앞으로 내가 닮아갈 미래의 동물을 고르라면, 아마 나무늘보가 베짱이가 아닐까 생각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