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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물 위에 떠서(1/2)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by 도인

“체크아웃 전에 수영하러 가자. 아까 너 물 위에 떠 있는 이야기 했잖아. 그 얘기 듣고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어 졌어.”

H가 서둘러 짐을 싸고는 수영장으로 향할 채비를 한다. 킥스타트 후 글라이딩, 그리고 암스트록 한두 번이면 금세 수영장 반대편 끝에 닿는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한다.
평소엔 풀장 한쪽에 앉아 전자책을 읽거나 맛집을 검색하며 나무늘보처럼 시간을 보내던 H가 오늘은 유난히 바쁘다.

H와는 달리, 나는 아침부터 에너지 레벨이 낮다. 좋아하는 물에 들어가서도 움직이기보단 그저 떠 있기만 하기로 했다. 고개를 물속으로 푹 담근 채, 숨을 참고 둥둥 떠 있는다. 몸이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나는 아무 힘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존재한다. 마치 이 세계에 나만 있는 것처럼 평화롭다.

프리다이버인 나는 한때 '스태틱(static apnea)'이라는 종목을 열심히 연습했다. 스태틱은 물 위에 떠서 움직임 없이 숨을 오래 참는 경기다. 이 종목의 핵심은 물속에서 단 한 번의 호흡 없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가다. 생각과 감각,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심장의 박동에만 집중하는 시간. 신기하게도, 숨을 쉬라는 몸의 신호가 오기 전까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기 그지없다.

엄마의 뱃속에서 유영하던 그 시절이 이랬을까?
그렇게 떠 있는 동안 서서히 몸 끝에서부터 조여 오는 느낌이 몰려온다. 호흡 충동. 나는 수영장 바닥을 딛고 일어나 숨을 쉰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그 지점을 넘어서야 한다. 스태틱을 훈련할 땐 고통의 끝자락까지 나를 밀어붙여야 한다. 몸은 “어서 숨 쉬라”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라”라고 아우성친다. 횡격막이 꿀렁이고 폐를 위로 밀어 올린다. 고통스럽다. 당장 숨을 쉬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지금 산소가 부족한 게 아니야.
이건 그저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가 불편함을 일으키는 것뿐이야.”
숨 쉬고 싶은 충동을 최대한 미룬다.

“일어나세요! 5분 29초, 30초, 31초... 어서요!”

스태틱 경기 중. 코치가 옆에서 다급하게 말한다.
나는 아직 괜찮다고 느꼈다. 오늘은 목표한 6분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나라고 할까. 마음 한편엔 아쉬움이 들었지만, 코치의 지시에 따라 수면 위로 얼굴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랫동안 숨을 참은 탓에 바로 회복 호흡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저산소증(Hypoxia)의 증상이었다. 나는 다시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스태틱 경기에서는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오면 숨 참기를 멈춘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코와 입이 다시 물에 잠기면 실격(레드카드)이다.
공식 기록을 인정받기 위해선 얼굴을 뺀 후, 10초 이내에 수경과 노즈클립을 벗고, 심판을 바라보며 OK 사인과 함께 ‘아임 오케이(I’m okay)’를 말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저산소 상태에선 이 프로토콜을 완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코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수영장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프로토콜에 맞게 장비를 벗고 심판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물에 조금 잠긴 얼굴, 떨리는 목소리. 심판들은 비디오 판독을 했다. 그리고 다행히 화이트 카드. 실격을 면했다.

"오늘 뭐 했어?"
"음... 숨을 5분 30초 동안 참았어..."
"... 아이고, 너는 대체 왜 그러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늘 혼자 해외에 있는 나를 걱정하시는 엄마. ‘스태틱 경기에서 5분 넘게 숨을 참았다’고 말해도 그 의미를 과연 이해하실까? 나조차도 때때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경기 결과를 받은 후엔 항상 그렇다. 허무함. 수고로웠던 시간의 끝에서 찾아오는 무의미함. 마치 시시포스처럼, 돌을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린 후 다시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 또다시 시작하는 삶. 이번엔 ‘숨참기’라는 돌을 정상까지 밀어 올렸고, 그리고는 다시 헛헛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물에 코를 박고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는 걸까? 왜 스스로를 이토록 괴롭히는 걸까?
얕은 수심에서 형형색색의 산호를 바라보며 물고기들과 유영하면 될 텐데. 왜 나는 고통의 끝까지 숨을 참으며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가려는 걸까? 왜 부드럽고 따뜻한 물에 그대로 몸을 맡기지 못할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늘도 나는 물 위에서 조용히 떠 있으며, 그 질문들의 파동 속에 머문다.
아무 힘도 주지 않고,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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