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들 Feb 25. 2024

눈썰매장

고마운 친구와 함께

 아이 겨울 방학이었다. 토요일이었다. 한가한 날이었다. 이번 주 평일은 분주했었다. 주말은 여유 부리고 싶었다. 잘 안 됐다.


 아이가 눈썰매장에 가자고 했다. 며칠 전부터 말했다. 아이에게 쉼은 눈썰매였다. 오늘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주말이었다. 겨울치고 따뜻했다. 추운 날보다 훨씬 낫다. 이런 날이 언제 또 올 지 모른다. 주말 휴식은 다음으로 미뤘다.


 눈썰매 하니 어릴 때가 떠올랐다. 내게 눈썰매장은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놀이공원과 같았다. 상상만 해도 가슴 뛰었다. 동시에 높은 언덕 내려 올 걱정도 들었다.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내 기억에 다섯 손가락도 안 됐다. 못 잊을 진귀한 기억이었다.


 찾아보니 한강 공원에 눈썰매장이 있었다. 눈썰매 말고도 다양한 놀이가 있었다. 빙어 낚시가 있었다. 놀이 기구도 있었다. 재밌어 보였다. 가보고 싶었다. 어릴 적 두근거림이 살아났다.


 이런 좋은 곳은 꼭 우리 동네에 없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걸린다고 나왔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버스를 두 번 타야 했다. 아니면 버스 타고 가다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첫 번째 방법으로 결정했다. 버스는 앉아 갈 수 있어서였다. 아이는 서서 가면 금방 피로했다. 정차할 때마다 몇 정거장 남았는지 셌다. 더 더디게 느껴졌다. 먼 길 앉아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첫 번째 버스까지는 괜찮았다. 앉아서 편하게 갔다. 두 번째부터 문제였다. 환승 거리가 생각보다 길었다. 지도와 현장은 한참 달랐다. 갈아 탈 버스를 오래 기다리기도 했다. 토요일임을 감안 못했다. 버스가 저 멀리서 느릿느릿 왔다. 꽉 막힌 길에서 그 큰 차는 탈진해 보였다. 예상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우리도 벌써 지쳤다.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보통 이런 곳은 사람이 많았다. 늦게 도착해서 줄 설 각오했다. 입장하니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우리는 눈썰매장으로 뛰어갔다. 알 수 없는 힘이 솟았다.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 기다림으로도 썰매를 탈 수 있었다.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했다. 꼭대기 올라갈 때 썰매 드는 게 안 무거웠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힘듦을 몰랐다. 내려갈 때는 환호가 절로 나왔다. 올해 들어 최고로 신났다. 에너지를 충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플라스틱 썰매만 있었다. 요즘은 튜브 모양 썰매였다. 체감상 더 빠르고 더 멀리 나갔다. 우린 둘 다 즐겼다. 바람이 시원했다. 마음껏 외쳤다. 이 희열을 잊지 않고 싶었다. 내려갈 때마다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썰매장 정비를 위한 휴식 시간이 됐다. 이미 10번은 넘게 탔다. 난 충분했다. 아이는 멀었다. 몸은 더 작았지만 기쁨을 담는 그릇은 더 컸다. 아직 덜 채워졌다. 아쉽지만 그래도 나와야 했다.


 눈썰매장을 나오니 빙어 낚시장이 보였다. 우리는 이끌리 듯 들어갔다. 각자 뜰채와 종이 그릇을 받았다. 큰 수조 속 빙어가 가득 있었다. 우리는 뜰채로 열심히 퍼올렸다. 잡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잡았다 놓치기를 여러 번이었다. 몇 마리는 몸부림치다 그릇을 탈출했다. 개의치 않았다. 계속 잡았다. 정신 차리니 두 그릇이 가득 찼다. 빙어 튀김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배고팠다. 아이는 영혼의 음식을 먹었다. 라면이었다. 평소에는 잘 못 먹었다. 이 날만은 예외였다. 아이는 빙어 튀김은 안중에도 없었다. 비린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라면에만 집중했다. 덕분에 빙어는 다 내 몫이었다. 둘 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 먹고 나오니 사람이 많아졌다. 눈썰매장 대기줄이 길어졌다. 끝이 안 보였다. 줄 서기 위해 한참 꼬리를 찾았다. 한번 타기 위해 30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힘들었다. 두 번 타니 흥미가 떨어졌다. 집에 가고 싶었다. 아이 놀이기구 하나만 타고 가기로 했다.


 한 놀이기구가 눈에 띄었다. 트램펄린 위에서 뛰는 기구였다. 몸에 줄을 채웠다. 직원분 제어로 아주 높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최고점에서는 한강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기구였다. 아이에게 제안했다. 다른 건 더 어린 친구들을 위한 놀이 기구였다. 시시해 보였다. 아이는 한 번에 오케이 했다. 아이 눈에 자신감이 가득 찼다.


 처음에는 조금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직원 분이 아이에게 더 올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높아지더니 곧 최고 높이까지 올라갔다. 아이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보였다. 생소한 경험에서 나온 호기심이 있었다. 아슬아슬함 뒤 희열도 보였다. 구부린 한쪽 다리에서 두려움도 느껴졌다. 다 끝나고 아이에게 물어봤다. 재밌었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눈썰매를 실컷 탔다. 빙어도 많이 잡았다. 놀이기구에 도전했다. 소울푸드를 먹었다. 집에 가는 길엔 솜사탕도 먹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아이도 그랬다. 다행이었다.


 과거 나를 하루동안 만났다. 그 시절 설렘을 현재에도 느꼈다. 집에서 쉬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여전히 잊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다시 끄집어 내줬다. 먼저 가자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고마운 친구였다.


 아이 좋으라고 한 일이 나도 좋았다. 이런 결말은 예상 못했다. 앞으로 아이가 어디 가자고 하면 잘 따라가야겠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수면 아래에 잠겼던 즐거움이 또 나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