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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Mar 05. 2024

방학

 어떻게 쉬는지와 오래 보기를 알려 준

 거실에 해가 든 지 오래였다. 집안이 환했다. 아직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완전히 잠에서 깼다. 얼굴이 상쾌했다. 지금부터 아침이었다. 하루가 시작됐다.


 방학이었다. 아이는 혜택을 누렸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8시 넘으면 스스로 일어났다. 굳이 일찍 깨우지 않았다. 이 정도면 부지런했다.


 난 안 그랬다. 어릴 적 깨우지 않으면 계속 잤다. 자다 지쳐 일어났다. 허리가 아팠다. 보통 그전에 어머니께서 깨우셨다. 대부분 내 의지로는 못 일어났다.


 아이는 아침을 먹었다. 핫도그를 데워줬다. 과일을 깎아줬다. 빵을 샀다. 어른 커피 살 때 아이 우유를 샀다. 딸기, 바나나, 흰 우유를 좋아했다. 아이가 아침에는 입맛이 없었다.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다. 적게라도 먹으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아침은 꼭 먹었다. 항상 어머니께서 차려 주셨다. 안 먹으면 평소와 달랐다. 힘이 없었다. 기분도 가라앉았다. 하루를 시작하려면 아침이 필요했다.


 아이는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앉아서 봤다. 뒤로 눕기 시작했다. 엎드리기도 했다. 옆으로도 누웠다. 불편해 보였다. 아이는 편안했다. 뒹굴 뒹굴 굴러 다니며 책을 봤다. 학습 만화를 주로 봤다. 글씨 책도 봤다. 그림보다 글을 더 봤으면 좋았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책과 관계가 좋았다. 지루해하지 않았다.


 안 그랬다.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았다. 전집으로 있었다. 국내외 유명 동화책이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책도 있었다. 백과사전도 있었다.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서 봤다. 숙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읽었다. 책과 친하지 않았다. 따분했다. 게임기와 사이가 좋았다.


 아이는 색종이를 접었다. 본인 취향 스퀴지 도안을 출력했다. 자르고 접고 붙였다. 자유롭게 그림도 그렸다. 색연필로도 하고 사인펜으로도 했다. 생활용품점에서 재료를 사서 만들었다. 같이 했다. 혼자서도 잘했다. 아이는 예쁘게 꾸몄다. 시작하면 엉덩이를 잘 떼지 않았다. 힘들면 잠시 누웠다. 다시 일어나 열중했다. 반드시 끝까지 했다.


 나도 그랬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습성이 맞닿았다. 난 손재주는 없었다. 아이가 곰손이라 했다. 잘 꾸미지는 못했지만 꼭 완료했다. 마무리가 중요할 때가 많았다.


 아이는 운동이 하고 싶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줄넘기를 했다. 곧 잘했다. 처음 줄넘기 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서툴렀다. 지금은 익숙했다. 아이 혼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내가 못하는 다양한 기술을 부렸다. 줄넘기가 이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안 그랬다. 운동 신경이 없었다. 스포츠는 늘 약했다. 줄넘기는 양발 넘기만 잘했다. 난 오래 버티기에 특화되었다. 노멀 한 줄넘기는 긴 시간 할 수 있었다. 달리기도 취미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는 나와 같았고 달랐다. 아이 안에서 나를 봤다. 다른 사람도 봤다. 방학은 아이에게 어떻게 쉬는지를 알려줬다. 내게는 아이를 오래 보게 했다. 방학이 준 기회였다. 한가로움 속 특별함이 있었다. 아이를 계속 새롭게 알았다. 10년 동안 봤는데 아직 많이 몰랐다. 내가 부족했다.


 휴직이 끝나갔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멀기만 한 종점이 이제 눈에 보였다. 폭풍 같은 회사로 들어가야 했다. 빨려 들어가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보다 아이를 더 못 보는 게 안타까웠다. 계속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성장이라는 연극에서 제일 앞줄 관객이 되고 싶었다. 관람만이 아니라 공동작업을 하고 싶었다. 아쉽지만 뒷줄로 가야 했다. 뒤로 빠지는 대신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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