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떠 보니 밖이 하얬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하얀 눈송이가 창 안을 빈틈없이 채웠다. 아름다웠다. 어질러진 집안에서 그 창문 안만은 순백했다.
집에 있어야 했다. 안에서 봤을 때만 훌륭했다. 밖은 위험했다. 토요일이지만 이런 날은 집이 최고였다.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들썩들썩했다. 침대 위를 방방 뛰었다. 나와 아내에게 나가자고 재촉했다.
내게 눈은 원래 불편한 존재였다. 흰색 길 위를 걷다 보면 신발이 젖었다. 길이 미끄러워 다니기 힘들었다. 우산이 소용없었다. 옷도 젖었다. 사람들을 버스와 지하철로 모이게 했다. 그곳을 갑갑하고 축축하게 했다. 여러 가지로 불쾌했다.
시작은 군대에서부터였다. 겨울이 되면 종종 폭설이 내렸다. 그칠 때까지 눈을 치웠다. 보통 하루종일 걸렸다. 새벽부터 눈이 오면 조기 기상했다. 어둠을 뚫고 제설 도구 창고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 계단은 매우 가팔랐다. 무릎 상태와 관계없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내 조급함과 다르게 눈 덮인 사방은 차분했다. 만지지 않았지만 차가웠다. 냉정했다. 그곳에서 눈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악했고 고통스러웠다.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났다.
아이 성화에 결국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눈보라가 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을 예정이었다. 아이는 그럼에도 이 순간을 즐겼다. 아무도 안 건드린 길을 찾아 발자국 도장을 남겼다. 눈 위에 누워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아이는 강아지처럼 좋아했다. 실제로 강아지들도 많이 나왔다. 강아지도 아이처럼 신나서 뛰어다녔다. 맨발로 다녀 발 시려 보였다.
우리는 걸었다. 온 세상이 하얬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 손에 이끌려 나왔다. 여러 가지로 만들어진 눈 사람이 눈에 띄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낭만을 즐기고 갔다. 나와 다르게 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은 끊임없이 내렸다. 누군가 남긴 흔적을 기다리지 않고 금방 덮어 버렸다. 하얗게 초기화된 길에 우리는 새로 자국을 남겼다. 신발은 질퍽질퍽했다. 패딩도 축축했다. 오늘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상한 날이었다.
젖은 신발과 옷은 일찍 포기했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니 괜찮았다. 거추장스러움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했다. 불쾌하고 짜증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즐겼다.
우리는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졌다. 눈 오리를 만들었다. 눈썰매를 안 가지고 나온 게 아쉬웠다. 아이를 썰매에 태우면 더 재밌었을 것이다. 눈사람은 안 만들었다. 이미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더 이상 새로운 결과물이 나올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가게는 멀었다. 눈보라를 뚫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 가게 앞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안온 게 분명했다.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 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눈치 보지 않고 쇼핑했다. 한 봉지 사고 나왔다. 많이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시 오기 힘들었다.
원래 나라면 집에만 있었을 것이다. 아이 덕분에 옛 모습을 버렸다. 밖으로 나왔다. 틀을 깨고 나오니 새로움이 보였다. 그 새것이 좋았다. 우리만 아는 눈 오는 날 추억이 남았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날 때마다 떠오를 것이다. 그동안 차갑고 불쾌했던 눈이었다. 이제 눈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강아지처럼 신나기도 했다.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젖은 모든 허물을 벗었다. 빳빳한 새 옷을 입었다. 따뜻한 장판 위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배부르고 등이 따뜻했다. 몸이 노곤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단잠을 잤다. 작지만 완벽한 주말이었다. 아이스크림이 아직 남았다. 냉동실에 가득 찬 아이스크림만큼 마음도 풍성했다. 남은 주말이 설레었다.
어렸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 나이였을 때 난 늘 설레었다. 막연하고 한도 없는 기대가 있었다. 잊힌 순수함이 떠올랐다.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없었으면 못했다. 다음에도 이런 시간이 또 올 것이다. 함께 있으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