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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Oct 21. 2019

알약 열일곱,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 개미와 베짱이의 잘못된 해석


"나는 정말 억울해 미치겠어! 난 평생을 정말 도덕적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양 이 꼬라지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지인의 목소리는 자조와 탄식으로 조금씩 떨렸다.


"걔는 백수였고, 일생을 그렇게 어슬렁 거리다 남자 하나 잘 물어서 팔자 폈지.."


요는 이랬다.

이혼을 하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며 살던 지인의 아는 동생이 제법 괜찮은 남자를 만나 갑자기 돈방석에 앉고 부유해졌더라는 것.. 그 사람은 지인의 기준에서 딱히 미모도, 학력도, 인성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사생활마저 그리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그렇게 결함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자신보다 우위에 놓인 상황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행복을 누리고 있단 사실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깨끗하며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해왔는데 사랑에 실패했고 마음을 많이 다친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정말 쓰레기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는 이상 남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대꾸를 잘 하지 않던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지인에게 이런 말들을 던져버렸다.


"언니, 삶은 도덕적 청렴도 순으로 행복이 돌아가지 않아요. 그리고 사람이 꽃피는 순간은 다 달라요. 그 동생이 언니보다 못하게 살아왔다고 해서 평생 동안 언니보다 행복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는 거예요."


지인은 분명 자신의 편이 되어 같이 추임새를 넣어달라 전화를 걸어왔을 텐데 오히려 팩트 폭행을 날려버리는 내 모진 한마디에 기운이 빠진 모양이었다. 나와 상관도 없는 저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던 이유는 오십이 넘도록 그런 논리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다쳤을 지인의 과거가 안타까웠고 앞으로도 크게 변함없이 그런 논리로 살아갈 지인의 미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남부럽지 않은 재산, 못나지 않은 외모와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런 삶의 논리로는 허용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인내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을 대비해 현실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노동하지 않은 베짱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한국판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곳간에 음식 채워두기를 열심히 몰입했던 개미에게 일방적인 찬사가 쏟아지는 것이 못마땅했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 옆에서 베짱이는 노동요를 부르며 현재의 즐거움을 함께 공유했다. 그런 베짱이가 왜 게으름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야 하는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 기성세대는 베짱이에게 손가락질하며 자본주의 속에 잘 기름칠 된 기계로 키워졌다. 그리고 기계가 조금씩 노화돼 삐거덕 댈 무렵 다시금 익숙도 않은 'YOLO'나 '워라벨'을 받아들이며 '현재의 소중함'을 뒤늦게 학습받는다. 그러나 이미 원죄처럼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져 버린 한 치의 여유 없는 근면 성실한 삶 대한 의무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내 지인처럼 근면 성실한 삶이 반드시 성공과 행복을 보상해주지 않는 인생의 논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 무너져버리고 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삶이란 것을..


혹독했던 나쁜 사랑의 결과로 지인은 더 이상 남자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누구의 이야기든 남녀가 갈등구도를 보이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조건 신랄하게 남성을 비판하는 그녀, 뭔가 조금 안쓰러웠다.


"언니,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렇게 맘을 꽁꽁 닫아두지는 말아요. 그렇게 있으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도 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지인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다.


"내 삶은 실패야. 만나는 놈마다 다 이모양이고..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잘 모르겠어"


인생은 계속해서 주인공에게 사인을 준다. 쉬어야 할 때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는 것처럼 그동안 잘못된 패턴으로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일지 모른다. 왜 나는 오랫동안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가, 왜 내 주위에는 '그런 놈들'만 꼬일 수밖에 없었던가.. 생각해보면 분명 어떤 원인이 기억의 수면 위로 스윽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부유물을 건져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내 인생과 혼합해 버릴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나 역시 오래도록 고민한 문제 위로 비교적 명확한 부유물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고민의 시간을 거듭했고 결국 그것을 거둬내 버리기로 한다. 각자의 인생에 부유물로 떠오를 그것은 꽤나 매혹적이고 달콤한 기억들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쉽게 내버릴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 그 매력을 껴안고 계속 같은 증상으로 아프거나 그렇지 않다면 도려내고 건강을 되찾은 후 새로운 즐거움을 찾거나.. 어쨌거나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렇게 마음을 닫아버리면 어떤 극적인 드라마도 펼쳐지지 않는다는 사실..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받았던 주입식 교육.. 두 부류의 삶을 좀 더 균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이 사회에서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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