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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주기가 있다면

흐르는 감정 앞에서 조용히 머물 줄 아는 용기

by 하나의 오후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습니다.

창밖 햇살이 좋아도 커피가 따뜻해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곁을 맴돌아도 문득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

세상의 온기가 가까이 있어도 마음 한구석은 왠지 공허하고 덧없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이요.

그럴 때면 저는 하늘의 달을 떠올립니다.

조금씩 찰랑이며 차오르다 이윽고 비워내는 그 고요한 주기의 곡선을요.

늘 환한 것도 늘 어두운 것도 아닌 달처럼 우리의 마음도 주기를 따라 흐르고 있음을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마음이 늘 일정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항상 밝고 단단한 모습으로 흔들림 없이 서 있기를 기대했지요.

하지만 삶은 그런 바람을 매번 어기곤 했습니다.

기쁨의 끝엔 슬픔이 있었고 안도감 아래엔 막연한 불안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한곳에 머물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라앉은 마음을 억지로 건지려 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하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 감정에도 자리를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기쁨이 올 때는 그 온기를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기분에도 계절이 있고 감정에도 파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어쩌면 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주기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흐름 또한 정해진 리듬은 없지만 조용히 차오르다 가라앉고 무거워졌다가 다시 가볍게 풀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슬픔은 참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도록 놓아주는 것'

예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감정을 움켜쥔다고 해서 머무르지 않고 밀어낸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요.

그저 흐르게 두는 겁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게 되겠지요.


가끔은 너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제 자신을 향해서도 이제는 조급하게 다그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괜찮지 않은 날도 분명히 제 일부이고 그 하루를 견디며 다시 괜찮아지는 저 또한 진짜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겁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하루는 아닙니다.

그날의 감정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쩌면 그 흐름 속에서 진짜 제 마음의 조각 하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은, 억지로 밝아지려 애쓰지 않겠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고요히 지나가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이 마음은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아직은 조금 휘청이지만 그 속에서도 저는 조용히,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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