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수영장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접영을 마이클 펠프스처럼 하는 사람도, 평영을 레베카 소니처럼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한시간 내내 쉬지도 않고 이른바 자유형 '뺑뺑이'를 도는 사람들이었다.
물 속 스타트와 오픈턴을 배웠을 때 한창 장거리 수영에 대한 의욕이 넘치고 넘쳐 수영장 밖으로 흐를 지경이었다. 자유형 10바퀴로 워밍업을 하는 상급반을 볼 때면 절로 존경의 마음이 솟구쳐올랐다. 그래, 진정한 수영인이란 워밍업 10바퀴 정도는 거뜬히 해야지! 오픈턴을 배운날 록쌤은 "이제 스타트랑 턴도 배웠으니 앞으로 자유수영할 때는 수영장 바닥에 발 안붙이고 하는거에요!"라고 강조했다. 의욕 넘치게 "네!!"라고 대답한 것도 그때 뿐, 나는 곧 절망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내가 상상한 내 수영 모습은 여느 수영선수 못지않은, 멋짐이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힘차게 벽을 차고나가 돌핀킥, 수면에서 브레이크 아웃, 그리고 반대편 벽을 멋지게 차고 나가 턴.........을 할 줄 알았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턴은 둘째치고 턴을 하고 언제나 25미터도 채 못가서 심장이 터질것 같은 괴로움에 중간에 멈춰서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안 쉬고 수영할 수 있어요?" 라고 묻는 내게 록쌤은 내 자유형을 한 바퀴 본 뒤 함께 해법을 찾아보자했다. ('하다보면 다 됩니다'같은 대답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헤엄쳤다. 기왕이면 킥도 정확하게, 늘 옆으로 빠지는 글라이딩도 정확히, 호흡할 때 틀어지는 머리는 더 정확히, 그동안 지적해 준 내용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교과서처럼 하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헤엄쳤다.
내 최선을 다한 자유형을 보더니 록쌤이 기가 찬 얼굴로 말했다.
"회원님, 회원님처럼 수영하면 저도 25미터밖에 못가요. 단거리 선수처럼 수영해서 어떻게 장거리를 갑니까?"
수영에는 '비트 킥(beat kick)'이라는게 있다. 풀어 설명하면 수영하는 거리에 맞는 발차기 방법이다. 발차기를 많이 하면 할 수록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장거리 선수들은 거리에 맞게 스트록 당 발차기 횟수를 6번, 4번, 적게는 2번으로 줄인다. 다리를 차는 에너지를 아껴 최대한 길게 멀리 수영하려는 전략이다.
이렇게 악바리같은 의욕을 못 쫒아가는 내가 진심으로 측은했는지 록쌤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회원님, 레인에서 가장 느리게 수영하는 사람보다 더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고 해보세요."
그 순간 정말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선생님 저는요. 저는 살면서 단 한번도 느리게 무언가를 해본적이 없어요. 아니,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단 한번도 누군가의 뒤를 따라 일.부.러 느리게 가본적이 없어요. 저는 늘 선두 그룹에 서려고 아둥바둥했고, 맨 앞에 선 사람보다 더 앞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장거리 수영'이라는 욕심을 부리는 중인데 그 해답은 '일부러 천천히', 아니 '가장 느린사람보다도 더 천천히'였다.
내 수영이란, 아니 내 인생이란 늘 100미터 전속력 달리기 같은 것이었다. 25미터, 아니 1미터를 가더라도 나는 늘 있는 힘껏 발을 찼다. 팔도 가능한 빠르게 던졌고, 아직 호흡이 부족해 무호흡 자유형은 불가능하지만 아마 저항을 줄이는 무호흡이 가능했다면 난 25미터도 기를 쓰고 숨을 참으며 한번에 갔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장거리를 한번도 달려본 적이 없는 스프린터였다.
일간지 기자의 삶이란 매일매일이 늘 100미터 전속력 달리기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다른 매체 기사를 리뷰하고, 그날 그날 쓸 기사거리를 보고하고, 취재하고, 마감하는 이 챗바퀴 같은 삶. 그 중에서도 째깍째깍 다가오는 마감 시간은 저 앞에 보이는, 숨을 죄어오는 결승점 같은 것이었다. 매일 그 결승점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밤 10시, 자정, 새벽까지 쉬지않고 뛰어도 결승점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운좋게도 오후 6,7시면 결승점에 도달하는 날도 있었다.
어제 성적표는 오늘 나왔고, 오늘 성적표는 내일 나온다. 매일의 전투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이 장거리 코스가 사실은 어떤 모습인지 단 한번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을 돌려 주변을 보면 모두가 심장이 터지게 뛰고있었다. 회계부서에서 일하는 친구는 마감과 결산 때마다, 마케터인 친구는 프로젝트가 하나 끝날 때마다 모두가 저 멀리 보이는 결승점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있는 힘껏 뛰고 있었다. 어디로 뛰고 있는지, 왜 뛰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못한채.
살기위해서 매일 100미터씩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오늘의 결승점을 통과하면 내일의 결승점은 마치 약을 올리듯 또 저만치 멀어져, 숨이 턱까지 차오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10년 째, 내 몸에 암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멈춰서 이 코스의 진짜 결승점이 어딘지 살피기 시작했다.
인생에 비트 킥이 있다면 한번의 스트록에 다리를 몇번이나 차야할까. 매일 이렇게 있는 힘껏 다리를 차대면 수영강사가 아니라 수영신이 와도 장거리 수영은 할 수 없으리라. 수영장의 수면이야 늘 고요하지만 우리네 인생이란 태평양을 헤엄치는 것과 같아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 운 좋게도 먼 바다에서 돌고래를 발견할 때도 있겠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자비롭고 낭만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같이 결승점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장거리 수영, 즉 오로지 생존을 위한 극단의 비트 킥이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다.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뒤 구명보트에서 영국 해군의 생존 지침서 한 권을 발견한다. 그 책에 있던 여러 수칙 중 가장에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수영하지 말라' 였다. 바꿔 말하면 더 오래 버티기 위해서라도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말고 최대한 힘을 비축하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마지막 수칙, '위축될지언정 패배하지는 말라'
나는 아직도 스프린터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간신히 턴을 하고 50미터 정도는 억지로 갈 수 있지만 '10바퀴 자유형 워밍업'이란 아직도 나에게 너무나 먼 얘기다. 매일매일 치타처럼 맹렬히 25미터 벽을 향해 돌진하고 그리고 금세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할머니들도 하는게 자유형 뺑뺑이'라지만 그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인생의 태평양을 건너본 할머니들 얘기. '천천히 가야 멀리 간다'는 말은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이제 겨우 서른해 넘게 산 나에겐 '일부러 느리게 사는 삶'이 너무나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