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린이 May 22. 2019

이 세상 모든 중급반들에게

어쩌다, 수영

'이러다 정말로 물에 빠지겠다' 싶을 때가 있다. 초급반은 언제든 수영장 옆 벽을 붙잡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만 중급반부터는 붙잡을 벽이 없다. 수영에는 접배평자만 있는 줄 알았건만 가끔 '누워서 평영킥'이나 '누워서 접영킥'처럼 이상한 걸 시킬 때 허우적대다 필사적으로 레인 줄을 붙잡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중급반이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형과 배영, 평영, 접영이 어떤 영법인지 어설프게나마 익혔으면 이제는 어떻게 다듬을지 고민하는 시점일 것이다.


               

 "아니 요즘 애들은 말이야, 일을 못해서 혼을 내도 자기가 혼나고 있는지 모르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 K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요즘 애들'이라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신입사원 시절 '꼰대는 되지 말자'고 도원의 결의를 맺은 지 벌써 10년이 지나 드디어 우리도 꼰대가 되었구나 싶다. 회사에서  '차장급', 그러니까 어느샌가 사회생활의 중급반이 되어버린 그는 '까라면 까라'는 상사, 즉 직장 생활의 A부터 Z까지 마스터한 부장님, 상무님, 본부장님 등 기라성 같은 마스터즈들의 지시와 재기발랄한 90년대생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마도 사회의 단만 쓴맛을 다 본 직장생활의 마스터즈들과 접배평자를 한달만에 마스터할 기세인 열정적인 초급인 신입사원들에 끼여 만성 권태기를 앓는 중이었으리라.



바야흐로 90년대생들이 회사로 몰려오는 지금 80년대, 그것도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우리는 이미 원하든, 원치 않든 초급레인에서 밀려나 중급반 레인으로 강제 승급되어버렸다. 허벅지에 쥐가 날듯 다리에 힘이 풀려도 붙잡고 매달릴 벽이 없고 '저 초급이라 못해요'라고 사정할 여지도 없다. 뒤에서 누군가 출발하면 떠밀려 나가야 하며 레인을 대여섯 바퀴 씩 돌 힘이 없다면 민폐 끼치지 않도록 레인 구석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숨죽여 있거나 그 시간만큼은 패배자의 마음으로 자유수영 레인으로 슬쩍 도망가야 하는 그런 처지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누군가는 정체와 매너리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고는 한다. 운동에서든, 직장에서든 말이다.           


브런치의 '통계' 기능에는 독자들이 검색창에 어떤 단어를 입력해서 보잘것 없는 나의 수영 일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고민의 여정이 기록돼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평영 수태기(수영권태기)', '플립턴 언제', '접영 팔 어떻게', '접영 짜증나' 등등을 입력해 인터넷의 변방에 있는 내 수영일기까지 흘러 왔을까. 역시 나만 못하는 게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들며 전국에 흩어져있는 몸치들의 든든한 연대감마저 느껴진다.          



평포자(평영포기자)들에게 한가지 위로의 말씀을 전하자면 나의 평영이란 그 비루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노래방에서도 박자를 못 맞추는 내가 풀과 킥의 박자를 맞춘다는 것은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평영이란 정강이와 복숭아뼈로 물을 우아하게 뒤로 밀어내 나가는 것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지 어언 반 년, 그래도 앞으로는 가나 싶었는데 어느 날 자유수영 때 내가 평영하는 모습을 목격한 록쌤이 '평영 금지령'을 내렸다. 일단 자유형의 교정이 시급하니 이상한 자세로 계속 연습할 바에야 지나치게 자유로운 평영은 당분간 중지하라는 사부님의 깊은 뜻이었다.            


"영법도 다 배웠잖아요. 이제는 물 속에서 '어떻게' 앞으로 갈지를 고민해야죠."               


중급반은 외롭다. 팔을 풍차처럼 마구 돌려도 앞으로만 나아가면 된다해서, 그러니까 사실은 '까라면 까라'는게 미덕이라 배워서 꾸역꾸역 앞으로 온지 10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앞으로 나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나갈지 고민하란다. 자유형은 우아하게, 평영은 세련되게, 접영도 '저 좀 살려줘요'하는 팔 모양은 이제 안되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가끔 절박한 검색어에 눈길이 간다. 한숨을 쉬며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진다. 이제 접배평자를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모든 영법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자각하고 지독한 수영 권태기를 겪는 중급반들, 이정도 살면 인생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리라 기대했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음을 깨달은 인생의 중급반들이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초급의 눈에는 수영을 제법 할 줄 아는, 그러나 상급반이 보기엔 아직 한참 어설픈, 무엇보다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채 성장의 한계를 느낀 중급반들 말이다. 인생에도 답이 있다면, 그래서 키보드를 두드리면 뚝딱하고 해법이 튀어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영이란, 인생이란 언제 돌이켜봐도 배우고 고쳐나가야 할 것 투성이다. 물에 뜨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언젠가는 우아한 전진을 고민할 시점이 온다는 건 초급 때 일러줬어도 어차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초급 시절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기 바빴으니까. 지독한 권태기를 겪고 있는 우리네 인생의 중급반들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사실 스스로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각자 지닌 신체, 아니 삶의 유연성과 근력, 지구력에 맞춰 매일 일상을 헤쳐 나가는 것 외에 아무런 답이 없음을, 잔혹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내 근력과 지구력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신호가 올 때 직장에서든, 수영에서든 다른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도망자나 패배자라 비난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포기하는 결단이란 언제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우리 역시 포기하느냐 버티느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떻게든 물에 뛰어드는 나로선 지독하게 지루한 일상과 매일 맞서는 쪽을 택한 이들을 더 격려해주고 싶다. 역시 답은 우리의 비루한 일상에 있다. 물에 뛰어들지 않으면 그 속에서 앞으로 나가는 법조차 영영 익히지 못할테니까. 우리 시작은 미약한 초급이었지만 그 끝은 창대한 마스터즈가 될 것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리발을 든 워킹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