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아저씨의 사원증에는 분명 000부장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몇 번이나 그의 얼굴과 사원증을 번갈아 바라봤다. 수영하는 모습은 분명 슈퍼맨과 다름없어 보였는데 그는 무릎이 튀어나온 면바지에 대충 말린 머리 위로 황급히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영락없는 이 동네 대기업 '부장님'의 모습이다.
악화일로를 걷는 허리를 지키고자 회사 길 건너 수영장을 새로 등록했다. 가장 놀란 점이 있다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도 어디에선가 시계추처럼 자기만의 루틴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화, 목 점심시간마다, 가끔은 금요일도, 마치 평생을 그렇게 산 듯 커다란 성인용 패들을 끼고 한 시간 내내 자유형을 하는 중년 아저씨가 있다. 그 부장님이다. 그는 그 패들을 벗 삼아 매일 정확히 자유형으로 1km가량 돌았다. 나는 겨우 초등학생 손바닥 만한 패들을 끼고 록쌤의 구령에 맞춰 한 시간 내내 수영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의 루틴을 지켜보기만 해도 어깨가 아프고 팔이 저려왔다. 처음 패들을 끼고 수영을 한 날 내 것 같지 않은 팔과 어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패들은 성인 어른의 얼굴 크기였다.
부장님은 도대체 언제부터, 몇 년 간 이 외로운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을까.
수술을 겪고, 디스크와 함께 살면서 나는 한겨울 거처를 찾지 못한 길고양이처럼 예민해졌다. 득도한 척하는 얼굴 뒤에는 모퉁이에서 급작스레 나를 공격할 불운을 주시하는 소심이가 숨어있다. 그 불운의 크기가 내 동생이 경험한 것 같은 2차 암수술이 될지, 아니면 급성 디스크 파열로 구급차를 타는 일이 될지, 그보다 조금 더 낫다면 그저 수영장을 일주일 내내 못 가는 일이 될지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나보다 한 해 앞서 수술을 받고 동위원소 치료까지 두 번이나 겪은 후배 K는 늘 부처님처럼 웃고 있지만, 그런 그의 웃음 뒤에도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이따금 보인다. K는 폐에 남아있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세 번째 동위원소 치료를 앞두고 있다.
그 슈퍼맨 부장님만큼 큰 패들을 끼지는 못하지만 나 역시 형편껏 나의 루틴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요즘은 다리 사이에 낀 킥판이 빠져나가 수영장 천장으로 솟구치지 않도록 코어에 힘을 주고 버티는 중. 발차기는 금지, 양 팔로 물을 잡으며 적절한 몸의 기울기 각도를 찾기 위해서다. '자유형 롤링'. 글로 옮기면 무언가 그럴듯한 훈련을 하는 것 같지만 한마디로 다리는 고정한 채 몸통을 회전하며 팔로만 전진하는 자유형, 즉 오늘도 몸개그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록 쌤은 그날따라 물에 빠진 생쥐를 노려보는 매의 눈을 하고 교정할 자세를 찾기 위해 주시하는 중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너무 많이 비튼 걸까. 순간 뒤집어질 뻔했다. 코로 들어온 물이 쏴~아 하고 정수리까지 찌른다. 그 순간 다리 사이에 끼운 킥판이 수영장 천장으로 튀어오를까 번개 같은 속도로 멈칫하는 찰나 록쌤이 소리쳤다.
"잘 가다가 지금 왜 멈칫했어요? "
"뒤집어지면 물에 빠질까 봐 저도 모르게..."
"몸통을 최대로 돌려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겨우 물에 빠지는 거라면, 그냥 한번 빠져보는 건 어때요?"
너무나 빠른 삶의 속도에 대책 없이 치였을 때, 갑작스러운 불운에 의연해지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 000라면'이라는 가정에 초연하려면 얼마나 더 대담해져야 하는 것일까. 동위원소 치료를 위해 또다시 번거로운 식이요법과 격리 입원을 앞두고 있는 K 조차도 은근슬쩍 속 마음을 털어놓는다. 병원 격리 치료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입원 전까지 마시지 못하는 라떼 한 잔이 그렇게 아쉽다고. 암이 전이됐다는 CT 결과를 들으며 담담한 척 할 수 있어도 내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는 라떼 한 잔에 무너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자유형을 할 때 몸통을 최대한 돌리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고작 뒤집어져 수심 1.4m 깊이 수영장에 빠지는 거라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는 날은 그마저도 원망스러운 것이 또 사람의 마음이다.
후배의 얼굴에서 슬쩍 보이는 그늘을 볼 때만큼이나 마음이 '쿵'하며 내려앉는 순간은 직장에선 늘 나에게 '슈퍼맨' 같아 보이던 그 많은 부장님들이 사실은 많이 외롭다는 속마음을 슬쩍 털어놓을 때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어느새 꼰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지만 반은 능구렁이 같고 반은 바위 같은 얼굴 뒤에 숨어있는 고단함을 발견할 때가 있다. 20여 년을 하루 같이 출근길에 오르며 물에 당장이라도 빠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순간을 얼마나 많이 겪어야 했을까.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도처에 매복해있는 불운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인간의 내구성은 정말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를 만난 지인이 "눈빛이 여전히 반짝여 놀랐다"라고 한 말이 놀라워 인생의 대단한 비밀을 찾듯 그의 칼럼들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노교수의 눈빛을 100년 가까이 살아있게 만드는 것, 시간의 속도에 무력하게 몸을 내맡긴 노인이 아니라, 생각하고, 눈을 반짝이고, 매일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는 비밀은 60세에 시작해 40년째 쉬지 않는 '수영'이었다.
수영장의 부장님은 오늘도 손에 패들을 낀다. 또 정확히 한 시간 동안 1km를 오간다. 수영이 끝난 뒤 또 허겁지겁 사원증을 목에 걸고 오피스가 즐비한 빌딩 속 전쟁터로 향한다. 수영 가방을 내려놓은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매일 이어지는 보고와 결재, 회식과 한숨, 연말 고과와 비정한 인사 시즌이 올해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저 정도 크기의 패들이라면 분명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그를 기다리는 최악의 일이 물에 빠지는 일이라도, 아니 그보다 더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그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일주일에 세 번, 이 스산한 빌딩 숲에서 패들을 끼고 언제나 시계추처럼 헤엄치는 사람이라면.
커버이미지: O. Terentyev (Ukraine.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