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되기 전 로스쿨에서 수업을 들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이 합리적 기준 (reasonable standard)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합리적인 사람(reasonable person)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특정 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이 유독 어려웠는데, 교수님은 난색을 표하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그래서 합리적인 인간은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며 농담을 던지시곤 했다.
합리적이란 것은 결국 '객관성'을 찾아가는 것이고, 객관성을 찾아가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의 입장을 찾아가는 것이며, 일반적인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은 막연하게 표현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가 120km인 8차선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이런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한다면 차에 치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이 위험성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10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동의할 만한 것이고, 여기서 우리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6년 차 변호사가 된 지금은 그토록 낯설던 '합리적인 기준'이 가장 이해하기 편한 지점이 되었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빌려가서 약속한 날짜에 갚지 않은 사람에게 다시 2,000만원을 빌려주고 못 돌려받은 사람을 보면, '아니 상식적으로 첫 번째 빌려준 것도 안 갚는 사람에게 왜 두 번째, 그것도 더 큰돈을 빌려주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중심에 '합리적인 인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판단이 언제나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은,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이나 결정에 의해서도 예상치 못한 행복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는 아내와의 결혼, 그리고 육아가 그랬다.
결혼, 그리고 육아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년도에 결혼을 했다. 둘 다 20대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에 모두 '굳이 지금?'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실제로 코로나가 심해 신혼여행도 국내로 가야 했다.
아내보다 아주 조금 더 합리적이었던 나는 '조금 더 고민해 보자'라고 말했지만, '어차피 할 거면 지금 하자'는 아내의 단순(?)한 주장에 마땅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럼 일단 식장부터 천천히 알아보자'며 방문한 예식장에서 '오늘 날짜 확정하시면 50만원 할인해 드려요'라는 뻔히 보이는 마케팅 멘트에 홀라당 넘어가 결혼기념일이 정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까지 7개월. 매달 상견례, 예복 등 준비하다 정신 차려 보니 유부남이 되어 있었다. 결혼을 하겠다는결정부터 결혼기념일 결정까지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과정은 더 합리적이지 않았다. 나는'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나'를 찾아봤는데, 아내는 독특한 제안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먼저 웨딩드레스를 전문 업체에서 빌리는것이 아니라, 본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결혼식에 입으신 30년도 더 된 드레스를 3대째 리폼해서 입고 싶다고 했다. 비싸고 화려한 드레스를 하루 대여하는 것보다 그 리폼 가격이 더 들었다. 웨딩 촬영도 스튜디오에서 하기보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아내 지인을 통해 '편하게 촬영'싶다고 했는데 전혀 편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포토그래퍼와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돌아다니며 야외 촬영을 했는데, 그때는 2월이라 엄청 추웠다. 그리고 그 포토그래퍼는 전문 모델만 촬영하던 사람이라 사람들이 많은 도로에서도 이른바 각(?)이 나오면 바로 우리에게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했는데,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사진을 촬영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정말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아버리고 싶은 민망함을 느끼며 억지웃음을 짓곤 했다.
자녀 계획은 어떤가. 어렸던 우리는 주변에 아직 애를 키우는 사람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자녀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고, 그 덕에 결혼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후 첫째 꿀떡이가 문을 똑똑 두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부랴부랴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이런 엄청난 결정을 우리는...(말잇못)'이라며 우리의 철없음에 감탄하던 찰나 둘째 찰떡이가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4인 가족이 되었고, 그 선택과 과정에 '합리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없었다. 정말 둘 다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합격했는지, 머리는 텅텅 계획도 텅텅 준비도 텅텅 통장도 텅텅 이었다.
결혼 결정과 과정, 자녀 계획의 결정과 과정도 모두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이 결혼과 자녀계획이다.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가득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 내 삶을 가장 찬란하게 비추며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두 기둥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또 아이들을 키우며 보니,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나 합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사랑은 합리적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결혼 과정에서 아내의 여러 요구에 내가 별말 없이 따랐던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덕에 추운 날 사진사 친구와 감자탕집에서 그간 살아온 인생 얘기도 하고 실제로 예쁜 사진이 많이 찍혔다. 무엇보다 창피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아내와 나만이 간직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웨딩드레스도 정말 리폼하기가 어려웠지만 결혼을 앞둔 시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아내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았기에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내의 마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결혼은 결혼식 전 준비 과정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첫째를 낳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여러 가지 재단하며 둘째 계획을 늦추거나 조정했다면 지금 우리의 웃음제조기인 애교쟁이 둘째 찰떡이는 없었을 수도 있다. 찰떡이가 없는 삶은 정말 상상할 수가 없다.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렸으면 우리 삶이 조금 수월하고 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수월함과 편함의 가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지금 찰떡이의 존재에는 비할 수 없다.
결혼과 육아, 합리성은 도구일 뿐
물론 합리적인 판단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결혼이나 육아의 과정에서도 물론이다. 결혼이나 육아에는 엄청난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 그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판단'은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합리적인 판단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결혼과 육아의 중요한 가치인 '사랑'이나 '존중'을 누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내와의 결혼과 관련해서 '합리적인 판단'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매일 말싸움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로 시작하는)으로 점철된 만남이 지속되었을 것이고, 애초에 결혼을 못 했을 것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첫째를 낳고 또 둘째를 가지는 일련의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때마다 '합리적인 판단' 이전에 아내의 감정이나 상태를 존중하는 데 더 집중했다. 내게 있어 결혼과 육아의 대상인 아내와 아이들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로스쿨에서 한 교수님이 농담으로 해 주신 얘기가 있다.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 꼭 명심할 것 중 하나가, 집에 들어가기 전 변호사 버튼을 끄는 것(off)을 잊지 말라고. 실제로 나도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합리적인 인간 (reasonable person)으로 살아가다, 집에 도착해 도어록을 누르는 순간부터 그 버튼을 끈다. 아니 어쩌면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로 뛰어나가는 그 순간부터 스위치가 이미 꺼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이나 육아에 있어서는 '합리'보다 '사랑'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합리적이진 않았어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행복한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