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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Apr 03. 2023

내가 다둥이 아빠라니

아빠가 되어 비로소 바라본 저출산 정책

2023. 4. 3. (월)


내가 다둥이 아빠라니


더 정확히는, 두 아이가 다(多) 자녀라니


나는 두 아이의 아빠다. 20년에 결혼해서 21년에 흰소띠 딸, 그리고 23년에 검은 토끼띠 아들까지 두 아이를 대략 2년 터울로 만나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둘째 출생신고를 하다 보니 이제 두 자녀 가정도 다자녀 혜택의 일부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전기요금, KTX, SRT 할인도 있고, 지자체 별로 다둥이 신용/체크카드를 연회비 없이 발급받아 주유 할인 등 혜택들을 누릴 수도 있다.


아이 두 명에 많을 다(多)를 쓰다니.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게 새삼스레 와닿았다. 그리고 내가 다둥이 아빠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글을 쓰다 궁금해서 OECD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대한민국의 출산율 추이. 2020년 이후 더 내려가는 처참한 상황.


계획하지도, 피하지도 않은 아이들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자녀 계획이 없었다. 


낳지 않으려고 했다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두 아이 모두 특별히 계획한 적도, 그렇다고 딱히 아이가 생기는 걸 피하려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첫째는 결혼 후 1개월 후에 찾아왔고, 둘째는 첫째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에 자연스레 찾아왔다. 요즘 아이가 둘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대단하다'라거나 '애국자다'라고 좋게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첫째를 키워 봤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낳을 결심을 했다는 걸 가지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첫째를 키우면서도 둘째가 생기는 것을 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물론, 첫째를 낳고 기르며 '와. 육아 이거 정말 힘들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 부부의 삶은 180도 바뀌었고, 굳이 말하자면 자유로웠던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의 삶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아이는 육아의 그 모든 힘듦을 상쇄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부부의 삶은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아이의 첫 배냇짓, 첫 뒤집기, 첫걸음, 첫 뜀박질 등.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의 모든 처음을 함께하는 아이와의 동행이 부모로서 너무 기쁘고 벅찼다.


우리 부부에게 첫째 꿀떡이 육아는 일방적인 고통의 시작이 아니라 '아이와의 동행(同行)'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여정 중에 여러 어려움들이 있지만 여전히 즐거운 동행길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절대 둘째는 없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계획은 하지 않았지만 딱히 피하지도 않은' 둘째가 자연스레 우리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놀이터에 갈 때마다 내 손을 꼭 잡는 첫째 꿀떡이


얼떨결에 다둥이를 키우다 보니


저출산 정책의 수혜를 입다.


이렇게 얼떨결에 다둥이를 키우다 보니 여러 저출산 정책의 수혜를 입게 되었다. 


먼저 휴가와 휴직 측면에서 보면, 첫째 출산 때는 아빠인 내가 '배우자 출산휴가'로 10일의 유급휴가를 받았고 둘째 출산 때인 지금은 아예 '아빠 육아휴직 제도'를 통해 육아휴직 중이다. 재정 지원도 다양하다. '육아휴직 급여'부터 시작해서 '첫 만남 바우처'나 '부모급여', '아동수당'도 있다. 여기에 더해 전기료 경감, SRT/KTX 할인, 어린이집 가산점, 산후도우미 지원, 지자체별 다둥이 카드발급을 통한 할인혜택 찾아보면 이것저것 혜택이 많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누릴 없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분명 출산가정에 도움이 되는 감사한 정책들이다.


저출산 정책이 정말 출산을 '장려'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저출산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출산 장려'라고 한다면 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현행 저출산 정책이 출산과 육아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출산을 '장려'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망설이거나 포기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단순히 돈을 더 주거나 이런저런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고 그 마음이 바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의 딩크족 지인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누군가는 부모님에 대한 상처 때문에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른 누군가는 아이 없이 여가나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는 현 상태가 좋다는 이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을 굳이 하나 찾는다면, 그들은 '아이를 낳으면 불행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분명 힘들지만 그 자체만으로 무조건 '불행'해지지는 않는데 말이다.



출산을 장려한다는 것,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야 '저출산 정책'을 찬찬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정책들을 보다 보니 개인적으로 '왜 이런 건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생각들이니 재미로만 읽어주시길.


(1) 청소년기부터 '육아'에 대해서 알아갈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내 주변 지인들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아마 요즘 예능, 다큐멘터리, 유튜브, 뉴스기사 등의 다양한 매체들로부터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느끼기에도 요즘 각종 매체들에서 표현하는 출산과 육아는 고행길에 가깝다. 잘 지내던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고, 원래 잘생기고 예뻤던 신혼부부를 머리 빠진 아저씨와 화가 많은 아줌마로 만든다. 어찌어찌 키워낸 아이들은 '금쪽이'가 되어 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문제 청소년이 되어 평생 속을 썩이는 괴물이 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중에 입시 스트레스에 아이들이 잘못될 가능성도 있다. 사회적으로도 '맘충', '퐁퐁남'과 같은 비하 표현이 난무하고, '노키즈존'도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 아이를 키우면서 눈치도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각종 매체 등에서 출산과 육아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상황 속에서, 젊은 부부들은 지레 겁먹고 '아직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않은 아이'를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육아는 생각처럼 힘들지'만'은 않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육아는 그렇다. 


물론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고, 어렵지만 즐겁고 행복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없던 한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기도 하고 아이로부터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재미있고 즐겁다. 나는 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벅차도록 행복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 두 아이의 존재가 너무 소중해서 이 아이들이 없었던 불과 몇 년 전이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부터 '육아'에 대해서 알아갈 기회를 많이 가지면 좋을 것 같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학교 봉사활동, 체험학습 등을 육아 관련 활동으로 연계하는 등의 방법이 있겠다. 물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청소년 때부터 '육아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물론 힘든 점들도 알게 되겠지만 동시에 육아의 재미있고 즐거운 점들도 함께 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청소년 이후,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예비 아빠/엄마 크레딧'과 같은 정책을 통해 미혼자들이 출산과 육아를 준비하는 활동(예. 아이 돌봄 봉사활동, 육아 초급/중급/고급 강의 수료 등)에 참여토록 장려하고, 참여율 및 실적에 따라 향후 결혼 또는 출산 시 여러 혜택을 차등해서 부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특히 나 같은 '예비 아빠'들은 보통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정말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다가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부랴부랴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하는 게 현실이다. 당장 내 친구들도 결혼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모르니 말이다. 미혼일 때부터 '예비 아빠 크레딧/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게 국가차원에서 기회를 주고 그에 따른 향후 혜택을 보장해 준다면,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았다. 상견례 자리에서 '크흠.. 자네 혹시 예비 아빠 몇 등급인가?라는 질문이 오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많이 해보았지만 결국 그 종착역은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아이를 아직 낳거나 키워보지도 않았는데 다 키운 것만 같은 피곤함을 덜어내는 것이다. 동시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지도 훔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2) 이미 아이가 있는 가정에도 저출산 정책의 혜택이 닿아야 한다.


사실 당연한 말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저출산 정책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을 쏟아붇는들 실제 아이가 있는 가정이 '결국엔 불행'하다면 누가 그 미래를 택하겠는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선 출산한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먼저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출산을 했다고 해서 여성의 사회 경력이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또 출산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성의 육아 참여가 유별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현재처럼 '휴직 정책'을 강화하고 의무화하는 것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육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겠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위 (1)에서 얘기한 대로 청소년 시기부터 육아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좋은 정책이 될 것 같다. 바라기는 '아빠 육아휴직'도 엄마의 육아휴직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가 둘 다 주 69시간씩 일해서도 안된다. 나도 나름 워커홀릭이었고, 회사가 주 52시간 예외 승인을 받은 기간에는 주 80시간도 찍어봤다. 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주 70시간 정도를 일하면 가정에 쏟을 에너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랬다. 주말에는 잠자기 바빴으니 말이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출산율이 높아지라면 사회 전반의 근무 강도 및 시간은 점차 줄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부모를 원할 때 부모가 같이 있어줄 수 있어야 한다. 


만 3세 이전은 아이가 애착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 시기에 아이가 아빠든 엄마든 적어도 부모 중 한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을 한다면 자동으로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위 (1)에서 얘기한 대로 청소년 시기부터 준비했다면 아빠들도 충분히 육아를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주중에 하루 정도는 가족과 나들이를 갈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 의무화'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이건 내가 막상 육아휴직을 하고 주중에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너무 좋았기 때문에 생각해 본 것인데, 주말에는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숙소도 비싸서 선뜻 어딜 가기가 어려운 반면 주중에는 사람도 적고 숙소도 저렴하다.



가장 중요한 것, 육아의 숭고함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위에서 적은 여러 상상들과 방법론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육아하는 이들의 자존감과 긍지'를 지켜주는 것이다. 육아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고, 그렇기에 어떤 사업이나 프로젝트보다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육아는 실제로 숭고하고 중요하다. 


'집에서 애나 보면서'라는 말은 집에서 번도 애를 적이 없는 사람이나 있는 말이다. 내가 이번에 3개월 넘게 '집에서 애나 봐보니', 집에서 애를 본다는 것은 한 인간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아이는 결코 저절로 크지 않는다. 누군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동시에 집안일을 하는 그 일상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집에서 애나 보는' 엄마 또는 아빠를 통해 아이는 세상을 보고 배우고, 그렇게 아이는 세상에 내가 소중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출산 정책과 그에 따른 혜택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어쩌면 '육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백 명 앞에서 멋진 정장을 입고 글로벌 사업 프로젝트에 대해서 영어로 발표를 하는 남편(혹은 아내)과, 이유식이 묻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며칠 째 씻지도 쉬지도 못한 채 오동통하게 살이 붙은 아기와 엉켜 잠시 낮잠을 자고 있는 아내(혹은 남편)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졌으면 좋겠다. 실제로도 결코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아니. 솔직히 난이도로 치면 육아보다 아랍어로 사업 발표를 하는 쉬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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