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첫째 꿀떡이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놀던 찰나였다. 침대에 누워 깔깔거리던 꿀떡이가 나를 등지고 스르르 일어나 앉더니 말했다.
꿀떡이: "나는 아빠의 소중한 딸이야."
나: "응?"
꿀떡이: "꿀떡이느은~아빠의 소중한 딸이야."
나: "..맞아. 우리 꿀떡이는 아빠의 소중한 딸이야."
요즘 꿀떡이가 내 말을 자주 따라 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아마 내가 무의식 중에 자주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말을 꿀떡이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맞아. 너는 아빠의 소중한 딸이야.'
꿀떡이는 예민한 아이였다. 젖병도, 쪽쪽이도 물지 않았고, 잠투정도 심해 새벽까지 울어대기 일쑤였다. 모든 욕구 중에 수면욕이 가장 강력했던 내가 그런 꿀떡이를 안아 재워야 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아내와 교대하고 쪽잠을 자다 출근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하필 꿀떡이가 태어나던 시기가 회사에서 일도 가장 많았던 시기라 정말 일에 치이고 육아에 치여 힘든 시절이었다.
왼쪽부터 새벽 2시 (아직 웃고 있음), 새벽 5시 (동트는 것 보고 좌절), 아침 7시 (출근해야지)로 기억한다
그런데도꿀떡이가밉지 않고 그렇게 예뻤다. 그렇게 밤새 칭얼대고 울어대는 꿀떡이를 빨리 보려고 퇴근만 하면 집으로 뛰어갔으니 말이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눈을 끔뻑끔뻑 뜨고 있는 꿀떡이를 보면 하루의 피곤이 싹 씻겨 내려갔다. 사람들이 '딸바보'라고 놀리는 것도 좋았다. 바보가 맞기도 했다. 그렇게 울고 칭얼대는 꿀떡이를 배 위에만 올려놓으면 그렇게 웃음이 났으니 말이다. 바보같을 정도로 소중했다.
생일날 회식하자는 사람들 다 제쳐두고 집으로 달려와 인간 리본(?)을 안던 순간. 표정 하나하나가 선물이었던 꿀떡이
'변하지 않는 소중함의 무게'
그렇게 소중한 꿀떡이를 키우며 다시금 되새기게 된 원칙이 있다.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으로 그 사람의 소중함을 재단하지 않는 것'. 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지금 당장의 모습이 다소 미흡하고, 실망스럽고, 심지어는 추악함이 배어있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의 현재 모습 저 너머에 배어있는 사랑의 순간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탄생은 어떤 날 누군가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고, 그의 존재는 누군가의 희망이었을 수 있으며, 그의 첫걸음마는 누군가의 탄성 어린 기쁨이었을 수 있다.
꿀떡이가 존재 자체로 내게 그토록 소중했듯, 그 사람 또한 언젠가는 이 세상을 찾아온 아이였으며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한 선물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네가 한 말, 앞으로 영원히 간직하길'
꿀떡이와 찰떡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아이들이 그 안에서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겪을 수도 있다. 어떤 날에는 본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무기력함을 느낄 수도, 또 다른 날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지쳐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햇살이 가득한 것만 같이 즐겁고 사랑스러운 시간들에나, 폭풍우가 쉼 없이 몰아치는 것 같이 힘들고 지치는 시간들에나, 우리 꿀떡이와 찰떡이가 평생 변함없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소중함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당장의 초라함과 아픔이 설령 너희의 '오늘'을 조금 깎아내릴 수 있을지언정, 너희가 아빠와 엄마를 찾아온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너희의 소중함에는 조금도 닿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