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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Jul 07. 2023

뒤처져도 괜찮아

그래도 예뻐

2023. 7. 7. (금)


문화센터


첫째 꿀떡이와 매주 문화센터에 간다. 처음에는 아이와 단 둘이 외출하는 게 긴장되었는데, 어느덧 7개월째 다니다 보니 이젠 완전히 익숙해졌다.


문화센터는 집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좋은 환경이다. 특히 우리 꿀떡이처럼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가정보육으로만 자란 아이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아이가 부모 외 다른 어른들(선생님,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과 또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뒤처지다


나도 문화센터에서 꿀떡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바로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 집에서는 말도 잘하고 표현도 잘하고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꿀떡이가, 문화센터에만 가면 항상 꼴찌가 되는 것이다. 


장난감을 보러 나오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아이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우리 꿀떡이는 내 무릎에서 요지 부동일 때가 많다. 수업이 끝나고 손등에 도장 찍는 것도 우물쭈물 대다 결국 선생님이 와서 찍어주시고, 동화책을 읽으러 앞으로 나갈 때도 아빠와 함께 나가느라 항상 맨 뒷자리다. 팝콘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우물쭈물 망설이다 결국 맨 뒤에 서는 바람에 팝콘을 조금만 받기도 하고, 다 같이 모여 놀이를 할 때 안쪽에 파고들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서성이는 것이다. 


이제는 선생님이 눈치껏 꿀떡이 장난감을 따로 챙겨주시거나 꿀떡이가 앉은 외곽까지 밀어주신다. 


말 그대로 '뒤에 처지는 것'이다.


항상 뒤에서 지켜만 보는 꿀떡이 (Feat. 오동통 볼살)
항상 맨 구석, 맨 뒷자리는 우리 자리



고개를 못 들던 아이


이런 꿀떡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교회에서 전국 중창대회에 나갔다.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이 서울의 큰 대형교회 본당에 모였는데, 나름 큰 행사였는지 우리 교회 어른들도 버스를 대절해서 응원을 오셨다. 


교회에서 우리끼리 연습할 때부터 대회장에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았는데, 본당 앞에 딱 서자마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무대 아래에 계셨던 교회 선생님들이 나에게 'OO아! 고개 들어!'라고 속삭이듯 외치셨는데,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라. 해봐야 스무 명인 아이들이 두 줄로 섰는데, 한 아이가 고개를 살짝도 아니고 아예 90도로 푹 숙이고 있다. 얼마나 눈에 띄었겠는가. 나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는데, 도저히 고개가 들어지질 않았다. 너무 부끄러워서 정말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수없이 스쳐가며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무대에서 내려왔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내려오는데, 저 끝에서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셨다. 너무 떨렸다는 말에 엄마가 깔깔 웃으시며 살포시 안아주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이제 맘 편하게 김밥이나 먹자."


결과는? 우리 교회가 꼴등이었다. 물론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교회 중창단들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다른 중창단들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달까. 


아무리 그래도, 어린 마음에 잘못하면 '나 때문이다'라며 자책하고 더 심하게는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저 '꼴등의 경험'은 내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사실 노래하던 것보다 노래 끝나고 친구들과 즐겁게 김밥 먹으며 떠들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도 다들 긴장해서 옆에서 내가 고개를 숙인 줄도 몰랐단다).


엄마가 '꼴등 하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날의 나는 꼴등 중창단에서도 꼴등 멤버였는데,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다른 위로나 격려의 말없이, '이제 맘 편하게 김밥이나 먹자'며 김밥과 젓가락을 건네주시던 엄마의 환한 미소가 내 기억에 가장 선명히 남았다. 


그날 배웠다. 


'아. 꼴등해도 괜찮구나.'



뒤처져도 괜찮아


저 기억이 있어서일까. 매주 문화센터 구석에 앉아 가만히 친구들을 바라보는 꿀떡이에게 '앞으로 나가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나는 꿀떡이가 앞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럴만한 용기가 생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고 싶다. 그렇게 조금 느려도 본인만의 속도를 찾고, 본인만의 취향을 찾고, 또 스스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주변보다 뒤처질지라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뒤처지고 또 뒤처져서 꼴등으로 들어가 꼴등으로 나올지라도, 꿀떡이는 여전히 나의 가장 소중하고 예쁜 딸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 꿀떡이가 알고 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꿀떡이가 문화센터에서 꼴찌로 줄을 서면 항상 그 뒤에 내가 선다. 꼴찌여도 뒤를 돌아보면 환하게 웃는 아빠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것 다 까먹어도 좋으니 이것만 꿀떡이가 기억하면 좋겠다.


꼴등해도 괜찮다는 것. 꼴등해도 너는 여전히 아빠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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