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안 가는데 집에만 있으면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아서, 휴직 직후엔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나름 좋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추억도 많이 쌓였다. 경기도 인근부터 강원도까지 신나게 돌아다녔다. 아이는 물론이고,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아이와 단 둘이 집에만 있었던 아내도 좋아했다. 돈이 꽤 들긴 했는데, 휴직 직후여서였는지 감이 없었다. 어쩌면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건 나 자신이었는지도.
그렇게, 육아휴직 초반엔 정말 '아프지 않으면 나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육아휴직 중반, 외출을 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몇 달간은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대신, 갑작스러운 동생의 등장으로 심기가 불편한 첫째 꿀떡이를 데리고 외출을 많이 다녔다.
문화센터, 키즈카페, 꿈놀이터, 과학관, 박물관, 동물원 등등 정말 셀 수도 없었다. 아침 먹자마자 도시락 싸서 나가서, 점심 먹고 신나게 놀다가 차에서 낮잠을 자며 돌아오는 그림이었다. 차로 30분이면 가는 거리라 부담도 없고 가격도 무료거나 서울시 다자녀 할인으로 저렴해서 부담 없이 다녔다.
육아휴직 후반, 집에 있게 되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한 지 8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이제는 선뜻 여행이나 외출을 가지 않게 된다.
질렸냐고? 아니다. 노는 건 결코 질리지 않는다. 그럼 돈이 떨어졌냐고? 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아직 마이너스 통장이 남아 있으니 그것도 아니다 (눈물 스윽). 그럼 대체 왜 이 아까운 시간에 집에 있냐고? 글쎄. 아이와 여행과 외출을 많이 다니며,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달까. 아니, 정확히는 '아이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이가 애초에 '여행 가자'고 한 적이 없으니.
첫째 꿀떡이만 해도, 멋진 호텔에 호캉스를 가면 반짝이는 조명보다 소화전에 더 관심이 많고, 강원도 리조트에 놀러 가면 멋진 풍경보다는 나무에 붙어 있는 벌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깝고 답답한 마음에 아이에게 "그런 건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를 100번쯤 외치다 문득 나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이런 건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
그러고 보면, 꼭 강원도나 경상도까지 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비가 오면 우비를 쓰고 같이 나가 비를 맞고, 매미가 울면 나무들을 살펴보며 매미를 찾고, 그것도 아니면 산책하는 강아지들과 통성명(?)하거나 비둘기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조금 억울하게도, 꿀떡이는 호텔, 리조트에 갔을 때나 집 앞에서 놀 때나 똑같이 행복해했다. 오히려 익숙한 집 앞에서 더 과감하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달까.
아이는 어른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키즈카페보다 물웅덩이
어제도그랬다.
딱히 일정이 없어서 아내와 '오랜만에 과학관이나 키즈카페 다녀올까'라고 얘기는 했는데, 둘 다 선뜻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비가 쏟아지길래 '마트나 다녀오자'며 우산을 들고나갔는데, 꿀떡이가 물웅덩이를 보고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결국 원래 가려던 마트는 엄마가 찰떡이와 다녀오고, 꿀떡이와 나는 집 앞을 뺑뺑 돌며 비를 맞고 물웅덩이를 밟고 돌아다녔다.
뭐가 그리 좋은지 (Feat. 신발 본인이 고른 거임)
그렇게 신나게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들어와 씻고 방에서 뒹굴대던 꿀떡이가, 갑자기 내 품에 쏙 들어와 안기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꿀떡이: "아빠. 여기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나: "응? 아. 이건 아빠 심장 소리야."
꿀떡이: "이거 아빠 심장 소리야?"
나: "응. 아빠 살아있을 수 있게 뛰는 친구야."
꿀떡이: "그럼 아까 먹은 음식들도 같이 있어?"
나: "(크흡) 어... 뭐. 같이 몸속에 있는 거니까.."
저렇게 비과학적이고 실없는 대화를 하며 깔깔대며 웃다가, 꿀떡이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잠에 들었다. 여행도 안 가고 원래 가려던 키즈카페나 과학관도 가지 않았는데, 꿀떡이는 하루가 가득 차게 웃으며 놀다 잠이 들었던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그래서 자꾸만 집에 있게 된다. 어쩌면 내가 복직 후에 그리워할 것은 화려한 여행지나 잘 꾸며놓은 키즈카페에서의 기억이 아니라, 평일 낮 오후에 집에서 아이와 함께 뒹굴고 근처를 산책하던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닐까 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