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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집창촌 쌈리에서
사람뼈가 발견되었다!

조영주 작가 <쌈리의 뼈> 책 리뷰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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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문학과 장르소설을 넘나드는 소설

조영주 작가의 신간 <쌈리의 뼈>는 참으로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순문학에서 주로 다룰 법한 소재와 문법을 따라가면서 플롯이나 스토리 구성은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로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순문학에 장르소설의 외피를 쓴 것인지, 장르소설에 순문학의 겉옷을 입은 것인지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조화가 좋습니다. 어디가 뼈인지 살인지 피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인간의 내면을 고찰하고 파고들며 섬세하게 묘사해 내는 능력은 순문학에서 높이 평가받을 능력입니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전개하며 파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가는 능력은 장르소설 작가의 최대 미덕입니다. 둘 다 해내면 좋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행히 <쌈리의 뼈>는 둘을 완벽하게 하나로 요리해 오묘한 맛을 잘 살렸습니다. 오모시로이네~~~



치매라는 소재는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록작인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에서 현실에 뿌리내린 모양새로 잘 다룬 바 있습니다. "반의반의 반"은 치매라는 소재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의 문제는 물론 주변 인물의 관계 문제 등을 서글프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면과 관계의 문제에 천착한 "반의반의 반"과 달리 <쌈리의 뼈>는 내면과 관계 문제에 살인 사건을 포함한 미스터리한 스토리를 더해 복잡한 심리 스릴러로 풀어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복합적이면서도 읽는 재미와 의미까지 잘 살린 작품이 완성되었기에 작가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조영주 작가의 전작들을 꾸준히 만나 온 독자라면 계속 성장, 진화해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는 작품들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좋습니다. 지난 작품에서도 거의 완성되었다고 평가했던 기억이 있는데 더 나아갈 구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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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몰입과 공감, 인간미 넘치는 반전이 매력적인 소설

<쌈리의 뼈> 스토리 속 완성해야 할 동명 소설인 "쌈리의 뼈"는 마지막 집창촌이라 불리는 평택 쌈리 인근을 배경으로 사실 같은 허구의 세계 속 이야기이자 해환의 정체성과 직접 연관이 있는 이야기이며 엄마 윤명자의 과거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쌈리의 뼈"의 실체를 찾아야 "쌈리의 뼈"가 완성되는 구조입니다. 주인공이 완성해 내고자 하는 소설 속 소설은 "쌈리의 뼈의 쌈리의 뼈"인 셈입니다. 요런 장난 같지만 진지해서 웃을 수 없는 설정에서 독자가 읽어나가야 할 재미 요소가 엿보입니다.



<쌈리의 뼈>는 엄마의 미완성 소설을 딸이 완성하는 과정이 중심인 소설입니다. 이 과정에 흥미 요소를 더 하기 위해 오토픽션이라는 장치를 활용합니다. 엄마인 윤명자 작가가 원래 오토픽션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설정은 이 소설을 이어받은 딸 입장에서 단순한 소설을 대신 완성하는 정도의 과제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듭니다. 이 과정 자체가 미스터리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장치입니다.



오토픽션이 글쓴이의 경험과 허구가 결합되는 방식입니다. 해환 입장에서는 엄마의 글이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 쌈리 지하에서 실제로 뼈가 발견됩니다. 이때부터 주인공 해환은 사실과 픽션 사이에서 더 동요하게 되고 자신의 출생에까지 상상력이 더해져 냉정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 상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 엄마의 상상 부분의 경계를 파악하는 데 집착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해환이 현실에서 조사와 인터뷰를 해 나가면서 어떤 단서를 얻을 때마다 소설 속 소설 "쌈리의 뼈"의 설정과 결말까지 대폭 수정을 거듭합니다. 독자는 이 과정에서 해환의 혼란을 함께 겪으며 소설의 세계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됩니다. 몰입 상태에서 긴장과 서스펜스를 느끼고 해환의 입장에 공감과 이입을 더 하게 됩니다.



독자 입장에서 몰입과 공감을 더 느낄수록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고 누가 범인인지 찾기 어려워지면서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 사건의 실체를 만날 때 충격이 더해집니다. 저처럼 아예 포기하고 그러려니 읽는 독자라면 충격보다는 궁금증의 해소에 기뻐하겠지만, 추리하며 읽는 독자라면 상당한 충격적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모든 설계와 빌드업에 거부감 없이 노출되기만 하면 독자들은 최고의 심리 소설이자,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의 참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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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결되지 않는 화두, 정체성을 찾아라.

원래 인간의 뇌는 생존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살기 위해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살인 같은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이유 중 많은 경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거나 또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무언가를 위해 상대를 해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그저 생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존재에 그쳤다면 인간은 조금 똑똑한 짐승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우리의 뇌는 과외로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그저 생존하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왜 살아가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나가려 합니다.



이 과정이 내가 "내가" 되는 정체성을 찾는 자아인식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체성 찾기의 중요한 요소는 내 삶의 궤적과 경로, 방향을 결정하고 지시하기까지 하는 기억입니다. 인간은 기억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기억이 훼손되고 망가지는 치매 같은 질병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는데 치명적입니다.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치매를 다루는 것은 작게는 서술 트릭에서 서사의 복잡성, 인물의 입체감 등 다양한 장점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기억의 오류인지 정상인지, 정상이지만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는지 등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해서 더 큰 재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조금만 어설프면 공감을 얻을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난잡한 이야기가 될 위험도 있습니다.



<쌈리의 뼈>는 치매라는 상황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치매를 심리 스릴러의 좋은 소재로 활용하고 인물에게 다양성을 부여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국 큰 틀에서 독자에게 인간의 인간 됨은 무엇이고, 기억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인물 간의 관계가 부적절해 보이거나 이들의 행동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설정 자체가 난해하게 흘러가는 것을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인 제가 헷갈리는 것인지, 저자가 무리한 수를 던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 이 또한 흥미로운 요소가 됩니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수없이 활용되었던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의 문제에 중요한 틀인 "기억" 문제를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은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가는 여정도 매력적이지만, 기억의 혼란에서 오는 인물들의 번뇌와 선택, 여기에서 파생되는 관계의 문제, 사회적 문제 등을 조망해 볼 수 있어 재미와 의미까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며 나를 상실하는 과정과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겪는 상실의 여파를 가감 없이 잘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조영주 작가의 시간 시리즈 세 번째이자 완결 편이라고 합니다. 시간 시리즈는 영원의 시간(크로노피아), 순간의 시간(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상실의 시간(쌈리의 뼈)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행복의 시간, 3분"도 시간과 무관한 소설은 아니고, 반복의 시간이라든가, 진실의 시간이라든가, 탄생의 시간이라든가 시간 시리즈는 얼마든지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고찰해서 더 좋은 소설을 써 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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