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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을 해체하는 질문의 힘

서동수 [언캐니한 것들의 목소리] 책 리뷰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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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능적으로 꺼리게 되는 언캐니한 것들

서동수 작가의 <언캐니한 것들의 목소리>는 익숙한 체계속에서 정착된 인식에 신선한 물음을 던지는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지만 제목과 표지에 끌려서 서문을 읽다가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처음 접하자마자 도대체 "언캐니한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고,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주장은 무엇인지 호기심을 생겼습니다. 제목과 표지가 감각적으로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언캐니(uncanny)라는 단어는 "이상한, 묘한"이라는 뜻과 "초자연적인" 또는 "으스스한"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책에서 이 단어는 일반화된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시작점으로 작용합니다. 저자의 말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이상하고 기괴한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질문을 던지자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 기괴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끌어가기 위해 히어로, 빌런, 괴물, 신, 재난 등을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은 히어로와 빌런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되짚어 봅니다. 히어로와 빌런을 손쉽게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둘 간의 대결로 바라보는 시선이 일반적입니다. 저자는 이런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고 즐겁게 읽은 부분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시리즈 중 특히 두 번째 작품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조커와의 대결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장은 괴물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평범한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로 활용되는 좀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월드워Z, 워킹 데드 등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 내용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3장에 가서는 기독교에 대한 대안적 비판을 모색합니다. 최근 개독교라는 심한 용어로 대변되는 극단화 되어가는 종교의 문제는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 4장은 재난을 대하는 우리와 권력의 반응을 돌아봅니다. 특히 재난에 민감한 일본의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난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을 들어 재난을 대하는 양가성과 재난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어린아이로 만들게 되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재난 때야 말로 기존 질서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이 모든 주장은 접하는 모든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언캐니한 것 자체가 우리를 섬뜩한 감정으로 밀어넣는 속성이 있고, 그렇기에 언캐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언캐니한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하고 이런 것들을 만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바라봐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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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편안함 뒤에 숨은 모순, 구원과 질서의 신화를 깨뜨리다.

<언캐니한 것들의 목소리>는 목표가 명확해 보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온 절대적 존재이자 질서라고 불리는 대타자의 구조에 선한 것만 있는지,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아름다운지 제대로 살펴보기를 촉구합니다. 이를 위해 그 견고한 질서를 해체해 보자고 권합니다. 그 속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분해해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냉정히 평가해보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특정 분야와 예시를 들어 꼼꼼히 해체하기를 시도합니다. 부분 부분을 뜯어발겨 보여줍니다. 새로운 시각까지 직접 제시해주고 독자에게 어떤지 질문합니다. 또 독자가 마주하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야하는지도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너무나 당연시하던 기존 질서에서 사실은 억압당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발합니다. 우리가 당연시하며 속아 넘어가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1장에서 영웅과 빌런의 서사에 숨은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배트맨은 왜 영웅인데 썩어있는 고담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서 모두가 행복한 도시로 만들지 않는지 지적합니다. 배트맨이 하는 짓은 그저 자경단처럼 야밤에 무지 비싼 장비와 가면을 쓰고 범죄자를 때려 잡는데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사는 도시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시민을 힘들게 만드는 핵심은 권력층입니다. 문제는 잘 못 운영되는 행정과 법 체계입니다. 영웅 배트맨은 이런 구조적 모순은 손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체계를 고수하는데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본인 자체가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업의 총수이며 이 기업은 무기제작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습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배트맨의 영웅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반면 조커는 재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겉모습이나 행동이 과격하지만 의외로 날카롭고 전복적인 방법으로 배트맨에게 정말 영웅이 맞는냐고 질문합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상황을 덫으로 만들어 두고 배트맨의 선택을 강제하면서 생각과 태도가 모순적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꼭두각시처럼 활용되는 배트맨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체계적이고 전복적이며 매우 논리적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전 챕터에 걸쳐 영화속 인물과 스토리를 따와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문제 제기를 매우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언듯 영화 평론서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쉬운 대중서로서 이런 선택은 무척 좋았고, 스마트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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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용기 있는 시도와 아쉬움이 남는 대답들...

<언캐니한 것들의 목소리>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염려되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시도는 항상 즐겁습니다. 도발적이고 신선한 영감을 줍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주장을 하는 저자가 기존 관념을 뒤집고 "전복해야만 한다."라는 강박에 갇혀 버리게 되면 이 주장 자체가 "언캐니"해져 버리는 모순적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기울어진 경기장을 바로 잡고자 하다가 반대쪽으로 너무 기울이면 다시 기울어진 경기장이 됩니다. 방향만 달라질 뿐이지요. 실제로 저자의 글이 2, 3, 4장 넘어갈수록점점 억지스러워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장의 배트맨에 대한 분석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에 나타나는 배트맨의 모습과 태도에는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도 알고 있고,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하는 배트맨의 모습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하는 배트맨은 이 책에서 말하는 반 영웅적 특성이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배트맨은 외계에서 침공하는 적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동료를 모으고 자신의 돈을 써가며 인류를 구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노력합니다. 영웅과 빌런의 전복이 일어나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저자의 주장에 전면적으로 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성급한 일반화 같은 인상이 강합니다.



2장에서 괴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모두가 익숙한 좀비를 분석합니다. 여러 좀비 영화를 들어 좀비들의 특징과 살펴봅니다. 통상 좀비는 살아있는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어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존재로 치부됩니다. 그렇기에 어차피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올수도 없으니 인간성이 말살된 존재입니다. 이들이 모이면 사실상 재난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는 어떤 윤리적 부담도 없이 처지하고 처리해야 할 존재로 다뤄집니다.



저자는 이런 좀비가 사실은 억압받는 인간에서 구원된 새로운 존재로 재해석합니다. 삶을 영위해 나가는 가운데 인간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책무와 욕망을 억제해야 하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난 존재입니다. 좀비가 되는 순간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각성하는 것과 같은 평온함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좀비가 어떤 새로운 대안이자 좀비 무리가 인간을 구원해주는 것이라는 해석 등은 선듯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나친 궤변으로 여겨졌습니다.



3장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신에 의한 구원의 이상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구원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주장하지만 괴롭히는 것도 같고, 무관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신을 핑계로 마음대로 살다가 용서를 이야기하고 신은 신의 사랑을 핑계로 목사들이 신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조합니다.



4장의 재난에 대한 설명 역시 타당했습니다만, 굳이 일본인에게 재난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니까 재난을 에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무기로 쓴다는 부분은 어디에나 통용되는 방식일텐데 일본에 한정해 설명하는 것에서 대중적인 적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4장은 뭔가 열심히 자료를 찾고 인용한 내용들을 나열하다가 그대로 끝나는 느낌이라 연구가 충분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 봤을 때 1장에 가장 힘이 많이 실렸고, 조사도 충분해보였으며 주장하는 바도 선명했습니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충실함에 있어서도 약간 용두사미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사고의 전복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가치관과 판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독서의 큰 효용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유용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이던 배척하던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기에 꼭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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