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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허스토리

글·임은주 그림·김순주 (독립매거진 <언니네 마당> Vol.09 中)

by 이십일프로

배꼽 밑 15센티미터 되는 부근에 역삼각형 음부가 있지. 그 밑으로는 검은 수풀이 가득 해. 숲을 제치면 핑크빛 버자이너가 있어. 커다란 잎사귀 같은 덮개를 열어보면 가운데 작은 돌기 같은 것이 나 있지. 그곳을 클리토리스라고 부른대. 우리말로 음핵. 영어로 클리토리스. 옛 여성들은 질에서만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대로 오면서 클리토리스가 오르가슴의 핵심임을 알게 되었지.


아까 덮개가 있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소음순이야. 음핵은 양쪽에서 안을 감싸고 있는 꽃잎이야. 소음순은 사람에 따라 크기가 아주 달라. 구글에 버자이너라고 치면 사진이 나와. 자신이랑 닮은꼴을 찾을 수 있어. 금욕적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사진을 싫어해. 자신들이 밤에 하는 행동을 낮에 듣고 싶지 않나 봐. 클리토리스와 소음순은 대음순이라는 두둑한 언덕배기에 있어. 둘이서 오손도손 살지. 그곳에 애무가 많으면 즐거운 사람. 뺨에는 홍조, 코에는 거친 숨, 마음에는 달아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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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순이 하루에 몇 밀리미터씩 자랐어. 자꾸만 커졌어. 날개처럼 보였어. 어깨에 날개가 달린다는 얘긴 들었어도 거기에 날개가 생긴단 얘기는 못 들었어. 친구들이랑 자전거를 타고 신탄진에서 대덕구까지 달리곤 했는데 나는 자꾸만 그곳이 신경 쓰였어. 자전거 안장에 날개가 뭉그러질까 봐….


엄마가 등 밀어주는 게 싫었어. 그러다가 날개를 보면 어떻게 해? 요즘에는 색깔까지 진해지고 있다고…. 내가 뭘 잘못했을까? 연애편지 받은 것? 나는 받은 잘못밖에 없는데…. 자전거를 너무 자주 타서 그럴까? 6학년 2학기 때는 소음순이 더 커졌어. 어쩌지? 밤잠도 못 자는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 어느새 음모도 생겨났지만 이것도 쉬! 엄마가 포장마차 장사 나가려면 맘이 편해야 돼. 나만의 비밀! 엄마는 여섯 식구가 한 방에 누우면 맨 나중 몸을 모로 세워 주무셔. 나라도 짐을 덜어줘야지. 나 같은 것, 이게 병이라면 평생 죄를 씻으며 살아가야지. 우리 엄마 입버릇처럼 이게 내 업보일 거야.


열네 살이 되었어. 친구들과 버스 안에서 수다를 떨었지. 소녀들의 수다는 롤리팝. 입안에 넣고 궁굴리는 맛. 생리 얘기도 했지. 그때였어. 허리둘레에 알싸한 느낌이 나는 거야. “이게 초경 신호인가?” 친구들과 킬킬거렸어. 학교에 도착해 화장실에 갔는데 글쎄 500원짜리 동전만 한 핏자국이 묻어있는 거야. 그때부터 생리와는 친구가 되었지. 따로 성인식이 필요 없었지. 비로소 여인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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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를 한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어. 나이트에서 만난 양복 입은 남자였지.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서른 즈음의 남자. 삼수하는 언니랑 그, 나,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한 방에 있었어. 우리는 토론이 지겨워져 하품을 했지. 한 방에서 셋이서. 언니 숨소리가 잦아들자 남자는 내 버자이너 속으로 자기 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어. 여자 친구도 자기가 길들여서 지금은 아주 좋아한다고 했어. 조금만 참으라고 했어. 숨을 참았어. 소리도 참았어. 언니한테 들킬라.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우스운 것 같기도 하고 흥분되는 것 같기도 하고. 배에는 나비들이 찌르륵 찌르륵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총이 발사되기 전 긴장감 같기도 하고.


아침이 되자 양복 입은 남자는 “다음에 만날 때는 내게 줘.”라고 말을 남긴 뒤 신촌에 있는 ‘장미여관’을 유유히 빠져나갔지. 방 안에는 아직 우리가 얘기하던 마르크시즘이랑 쇼펜하우어 어록이 넘실거리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다시 만났는데 묻더군. “줄 거지?”, “...” 여관에서 샤워를 한 뒤 속옷과 티셔츠를 도로 입었어. 남자가 내 옷을 다 벗겼어. 그니까 브라도 팬티도…. 아이일 때 빼고는 발가벗은 몸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어.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워한 것 같기도 했어. “처음이에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옷을 다시 입혀주었어. “내년에 대학 들어가고 남자 친구가 생기면 해. 첫 경험은 나이트에서 만난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좋아.” 그 남자가 모르는 한 가지. 인생은 순간뿐. 인생은 누군가 내 버자이너에 손가락을 넣는 순간 만이 존재하는 것.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그에게 말해줬어.


후회했지. 너무 아팠거든. 뼈가 으스러지는 이 느낌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원래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잖아. 야간 포장마차 하는 엄마도 아무 말 안 했어. 야간에 굶주린 트럭 운전사에게 라면 그릇을 건네며 큰 딸이 섹스를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였을 거야. 충정로 ‘성광 독서실’에서 얌전히 책 읽는 줄 알았겠지.


처녀막이 터졌어. 수아~ 이게 어른들이 그토록 쉬쉬하던 섹스라는 거구나. 아주 아픈 행위구나. 남자한테서는 연락이 없었어. 재수하는 동안 마음껏 사랑하자, 섹스하자 말해놓고. 거짓말 풍선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 어딘가에서 또 새로운 버자이너를 쏘아보고 있겠지. 딱딱한 페니스를 어디 한 번 넣어보려고 추근추근 대겠지.


인생은 버자이너를 사랑하는 일. 스무 살 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버자이너에 대한 사랑과 인생에 대한 사랑은 비례한다는 사실. 스무 살 때 누군가가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열네 살 때 우리 엄마가 포장마차만 안 했어도 좋았을 걸…. 대신 뜨끈한 구들방에서 큰 딸의 어깨를 감싸고 자신의 첫 경험과 성에 대 한 생각을 속삭여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독립잡지언니네마당

https://sistersmag.blog.me/


언니네 마당 9호 "하자보수"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960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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