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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란 Jul 30. 2018

'제인 오스틴'을 만나러 갑니다

바스(Bath)에서



여기 1800년경 증오나 쓰라림, 두려움도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지 않으면서 글을 쓴 한 여성이 있었지요. 나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글을 썼던 방식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_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Stephen Woolf, 『자기만의 방』







 오전 7시 30분 어김없이 숙소를 나섰다. 어젯밤 옥스퍼드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밤에 한바탕 내린 비가 새벽 내내 이어졌는지 길이 젖어 있었다. 공기에 수증기가 감도는 걸 보니, 내가 나오기 직전까지 비가 내린 듯싶었다. 바스 Bath로 떠나는 기차 시간을 생각하면, 이른 시간이다 싶었다. 하지만 천천히 눅눅한 런던의 공기를 헤치며, 워털루 Waterloo역으로 걸어가기로 한 계획에 따라 소호에서 사우스 뱅크 쪽으로 내려갔다.


  1801년 5월 21일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은 산책을 좋아했다.



  “우리는 어제 웨스턴까지 또다시 걸어갔다 왔어. 그것도 아주 놀랄만한 방식으로 말이지. 그곳 사람들은 우리 말고는 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양했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 우리가 걷는 걸 봤다면 아마 언니는 웃었을 거야. 우리는 자이온 힐까지 올라갔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되돌아왔지. 챔벌 레인은 정말 언덕을 잘 오르더라고. 도대체 그 아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고 정말 열심히 걸었지.”



  삶의 대부분을 햄프셔 지역과 바스에서 살았지만, 런던에서도 그녀가 산책했던 곳을 찾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쓴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런던에 올 때면 오빠인 헨리 오스틴 집에 머물곤 했다. 해롯백화점 뒤쪽에 슬론 스트리트 64번지가 헨리 오스틴의 집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켄싱턴 팰리스 가든까지가 그녀가 런던에 와서 즐기던 산책코스였다. 그녀를 닮은 건지, 작품 속 주인공들도 산책을 좋아하는데, 심지어 산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인물은 나쁜 캐릭터 혹은 얄미운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산을 즐긴다.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언니 제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비에 젖은 초지를 3마일이나 걸었다. 오늘 내가 걷는 건, 이유는 다르지만, 『이성과 감성』의 마리안느가 기운을 내기 위해 걸었던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다. 오늘 하루 제인 오스틴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다만 안갯속을 걷는 듯한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 내부에 볼거리도 많지만 바스는 도시 외관을 관찰하기에 즐거운 곳이라 비가 내리면 곤란했다. 그녀의 사실 첫 작품이었지만, 대중에게는 마지막 작품이 된 『노생거 수도원』의 "아침 일찍부터 햇살이 빛나면 대개 비가 쏟아지지만, 구름이 끼면 점차 날씨가 좋아질 전조"를 믿어보기로 했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Waterloo, London


  

  오전 워털루 역은 지하철 환승 노선이 4개인 데다, 기차역까지 함께 있는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역 같았다. 워털루 역에서 빠져나오는 인파와 들어가려는 인파가 뒤엉킨 길에 서있으니 잠깐 동안 여기가 서울인가 싶었다. 회색빛 하늘빛을 그대로 담은 워털루 천장 아래서 전광판으로 걸어갔다. 재빠르게 시간과 목표지를 스캔해서 바스로 향하는 기차의 플랫폼을 확인했다. 역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직 플랫폼이 나오지 않았다. 한숨 돌릴 겸 눈여겨본 코스타로 향했다.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사서 역내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사실 런던에 비하면 바스는 단조로워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해마다 '바스에서 즐겁게 지내는 건 6주면 충분해. 그보다 오래되면 세상에 이렇게 지겨운 곳이 또 없어'라고 말한답니다. 아마 당신도 들었을 겁니다. 해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6주의 체류기간을 10주나 한두 주로 연장하고 나면 결국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떠난다고 말하는 걸 말이죠."



  『노생거 수도원』에서 온 헨리가 무도회장에서 만난 캐서린에게 한 말이다. 런던에 비해 단조롭다고 말하던 헨리 틸니에게 캐서린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바스보다 더 단조로운 삶이 반복되는 곳에서만 살던 캐서린에게 바스는 새롭고 흥미로운 곳 그 자체다. 특히 헨리 틸니를 만난 곳이었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캐서린은 바스에 오는 마차 안에서 자신이 읽고 있는 고딕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일들이 자신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기대를 한다. 캐서린처럼 나 역시 처음 바스를 가서 어떤 일들이 있을까 설레었다. 똑같이 앞으로의 일을 상상했지만, 지금 가고 있는 바스에 그녀가 만났던 헨리 틸니 같은 사람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하는 현실주의자였다. 난.


Bath로 출발하기 직전 기차 안



  대신 기차가 출발하자, 스마트폰과 수첩을 나란히 놓았다. 영국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에서 밑줄 친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바스는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두 다리로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는 수고만 감내하면 아무것도 걸리적거릴 것 없다. 혼자 바스를 걷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휴식’이라고 쓸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런던을 생각하며 쓴 말이었지만, 캐서린이 바스를 런던만큼이나 새롭고 흥미로운 곳으로 생각했던 걸 떠올리면 그리 틀린 말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난생처음 간 바스에서 하루는 내가 기차에서 적은 글처럼 되었다.







Bath Abbey, Bath

   바스 스파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관광안내소에서 자료를 받았는데, 제인 오스틴 200주년 기념행사 관련 자료가 많았다. 아쉽게 가을에 행사가 많아, 내가 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2017년 9월부터 찰스 다윈을 대신해 10파운드 지폐의 새 얼굴이 되니 그것과 시기적으로도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볼 수 없다는 점은 무척 아쉬웠다.      

  바스는 한마디로 귀족의 도시다. 바스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광천수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스는 기원전 로마 인들이 개척한 온천 휴양지였다. 로마 제국이 망하고, 한동안 바스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8세기에 다시 잉글랜드 상류층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바스는 그 당시 지어진 조지 왕조 양식의 건물들이 도시의 중심을 채우고 있다. 다른 두 시대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조지 양식이 고대 로마 건축물을 모델로 삼아 비례, 대칭이 돋보이는 영국에서 볼 수 있는 신고전주의 건축의 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광안내소 바로 앞에 있는 바스 대성당이 바스란 도시 전체를 두고 보면 볼록 튀어나온 참외 배꼽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바스 대성당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영국 드라마 『설득』에서 웬트워스 대령이 자신의 진심을 꾹꾹 적은 편지를 읽은 앤 엘리엇이 그를 찾아 정신없이 달리는 무대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가팔라서 놀랐다.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러 달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꽤나 고생을 했겠단 생각이 스쳤다. 반듯한 돌이 박힌 길을 따라 아름다운 건물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굳이 빠르게 걸어 올라갈 필요가 없다. 천천히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그중에 시선을 가장 끄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다.



Royal Crescen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 상아색 로열 크레센트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처럼 둥근 열주 기둥이 광장의 절반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과 차이가 있다면, 열주 기둥 사이에 벽돌과 창이 나있다는 점이다. 로열 크레센트에서 르네상스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이 겹쳐 보이는 건 로열 크레센트가 팔라디오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지어진 건물인 로열 크레센트는 제인 오스틴이 작품 활동을 하던 때에 바스에서 알아주던 귀족들이 주로 살던 테라스하우스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설득>에서 로열 크레센트 건물 직전에 앤 엘리엇 집이 있고, 로열 크레센트의 집 중 하나가 바로 웬트워스 대령의 집이었다. 아마, 가세가 기운 엘리엇가의 형편과 트라팔가 해전에서 공을 세운 웬트워스 대령의 부를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지금 로열 크레센트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바스의 보호위원회 본부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중앙의 2개는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과 관련된 다른 장소를 가보지 않았지만, 200년 전 그녀가 보았던 풍경과 가장 닮아있는 도시는 바스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도시도 바스일 것 같았다. 로열 크레센트에서 제인 오스틴 센터로 걸어갔다. 1801년부터 1804년까지 제인 오스틴과 자매들이 살았던 집을 개조한 작은 문학관이다. 제인 오스틴 센터에는 리젠시 시대의 옷을 입고 당시 헤어스타일로 단장한 직원들이 방문한 사람들을 환영한다. 마치 영화 <오스틴 랜드>에 들어선 여행객을 맞이하듯이 말이다. 제인 오스틴 문학관은 그녀의 작품보다, 제인 오스틴이란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The Jane Austen Centre


  제인 오스틴 문학관은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을 모아 가이드가 직접 설명 및 박물관을 안내해준다. 내가 관람을 했을 때는 나를 제외하고 6명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 그들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하자 조용히 경청한 뒤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셨는데, 질문을 듣고서 알았다. “Janeite제인 오스틴 열성팬”라는 걸. 왜냐하면 그녀의 질문에서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이나 오스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제인 오스틴은 제인이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이름만 부르는 건,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부르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드물다. 보통 작가의 이름을 말할 때 찰스 디킨스는 디킨스, 올더스 헉슬리는 헉스리, 에밀리 브론테는 브론테라고 부르지, 찰스, 올더스, 에밀리라고 부르는 일은 거의 없다. 작가 제인 오스틴을 말할 때, 보통 오스틴이라고 부른다. 영화 <비커밍, 제인>이 작가로서 제인 오스틴의 삶이 아닌, 톰 르프로이와 사랑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다루었기 때문에 ‘비커밍 오스틴’이 아니라 ‘비커밍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직접, Janeite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관람하는 내내 그녀와 함께 문학관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의 입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불린 애칭인 '제니'라는 호칭도 들리는 것도 같았는데. 제인 오스틴에 대한 열정적인 팬 같았다.


  제인 오스틴 팬이라면 그녀가 바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화려한 사교계 문화를 즐기지 못했고 바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바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문학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빼고 제인 오스틴에 대해 알려준다. 이 문학관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제인 오스틴은 바스에 오기 전, 해리스 빅위더에게 청혼을 받고 바로 다음 날에 정중히 거절하고 1802년 12월 3일에 바스로 떠난다. 그리고 구체적인 편지나 자료가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바스에서 제인 오스틴은 청혼을 받은 적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도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두 번의 청혼을 모두 거절한 이유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스틴이 소중하게 여겼던 편지의 대부분을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카산드라가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오스틴이 비밀로 두었던 연애사를 모두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솔직한 생각을 더는 알 수 없지만『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고 이틀 뒤에 그녀의 친구 샬롯에게 청혼한 콜린스의 이야기와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샬롯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엘리자베스의 생각을 통해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샬럿의 견해가 자기와 꼭 같지만은 않다는 건 그녀도 언젠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녀가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중략)… 친구가 창피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샬럿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웬만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제인 오스틴이 “Anything is to be preferred or endured rather than marrying without affection. 사랑 없이 결혼을 하는 것만큼 참지 못할 일은 없다."라고 쓴 친구의 편지에서 확실해졌다.  그녀가 청혼을 거절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이 그녀에게만 없어서인지, 두 사람 모두에게 없어서였는지는 정말, 그녀만이 아는 비밀이다. 지금의 내시각에서 볼 때 그녀가 청혼을 거절한 경우만 많고, 그녀가 사랑에 적극적이었단 이야기가 없어 아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노생거 수도원』에서 그녀가 헨리의 말을 빌려 "남자에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여자는 단지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그녀에게 거절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선택이었다. 200년 전, 청혼을 거절하고 온 바스에서 또 청혼을 받았을 때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가 바스를 소설 속에서 부정적으로 그린 또 다른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인 오스틴 가계도



  제인 오스틴 박물관에서 그녀의 가족관계와 간략하게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듣고 나면, 그녀가 썼던 편지와 당대 분위기를 설명한 전시물과 관련 영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이 문학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리젠시 시대 체험 코너다. 잉크 펜으로 편지도 쓸 수 있고, 리젠시 시대 옷을 입고 밀랍인형으로 만든 다아시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때 다아시는 1995년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와 닮아 있다. 애타는 눈빛만으로 당시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그의 흔적이 2017년까지 남아 있단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나도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바스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지만 초튼Chawton에 있는 제인 오스틴 박물관까지 가기 힘든 사람들에게 타협점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 문학관이 그 역할을 다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한적한 런던의 셜록홈스 박물관에 다녀온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Pulteney Bridge, Bath



  오후 5시 반, 바스의 모든 박물관들이 문 닫을 준비를 하고, 거리의 카페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바스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자신이 믿던 세상이 무너져 혼란스러웠던 자베르 경감이 더는 나아갈 수 없다(“There is no way to go on.”)고 외친 뒤 목숨을 끊은 펄트니 다리 Pulteney Bridge를 지나 천천히 바스 스파 역 쪽으로 내려갔다. 층층이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귀에서 옅어지면 퍼레이드 가든 Parade Gardens Bath이 나온다. 제인 오스틴을 기념해 단장해놓은 정원을 먼발치에서 보았다.


  장편 소설 6권과 미완의 소설 한 권을 남긴 채 4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인 오스틴. 그녀를 영국이 사랑하는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치에 두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남겼다.     


“제인 오스틴은 표면상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감정의 대가이다. 우리를 자극하여 거기에 없는 것을 내놓게 한다. 그녀는 분명 사소한 것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확장되며, 겉으로 보기에 사소한 인생의 여러 장면을 가장 지속적인 형태로 부여하는 그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에 대해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는 “오스틴 양은 지나치게 ‘감정’에 흐르지도 않고, ‘시적 표현’도 없어서 분별력이 있고, 현실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아마 지금도 제인 오스틴을 두고 누군가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훌륭한 소설가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혹은 샬롯 브론테처럼 로맨스 소설을 쓴 작가일 뿐이라며 선을 그을 수도 있다. 난 상반된 두 사람의 평가에서 제인 오스틴이 영문학 상에서 거의 최초로 거명되는 여성 작가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소설가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글과 입에서 회자되고 논쟁의 중심에 놓인 소설가만이 역사 속에 자신의 존재를 남겼다. 제인 오스틴이 남긴 6권의 소설을 읽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고, 다른 평가를 했다. 바로 여기에, 200년 동안 그녀가 영국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비결이 숨어 있다.




<참고 문헌>

0부터 100까지 런던 101, 최은숙·지니최, 소소북스 (2017)

노생거 수도원, 제인 오스틴, 시공사 (2014)

설득, 제인오스틴, 문학동네 (2010)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민음사 (2003)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2016)

보통의 독자, 버지니아 울프, 같이읽는책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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