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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Feb 19. 2024

네가 옆에 있어 다행이야

아이와 단둘이, 보라카이 여행 3일 차.

뜨거운 태양과 청량한 에메랄드 빛 바다, 하얀 모래가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

암튜브를 끼고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아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에게 눈길이 머물렀다가, 다시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네가 옆에 있어 다행이야.”

마음속에 불쑥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혼자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행복했다. 문득, 지금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일 년 전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1년 전 그날, 울분을 삭이기 위해 샤워를 했다. 내내 목구멍에 걸려있었지만 입 박으로 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았던 그 말.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자리 잡아 아이와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몸집을 키워갔다.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권태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아이는, 새해가 되자 갑자기 돌변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서,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나에게 달려들었다. 물기도 하고,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때론 발길질을 했다. 처음엔 아이의 그런 행동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부정적인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 울며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 혼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건 분명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단호하게 아이를 붙잡고 제지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더는 어찌할 수 없으면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방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차게 닫으면서.


아이가 두 살 무렵, 그때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적이 있었다. 아이는 화가 나면 나에게 달려들어 팔이나 다리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혼을 냈지만, 몇 달 동안 계속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행동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아이의 문제행동에 다시 나타났다. 특별한 사건도, 전조 증상이랄 것도 없이, 해가 바뀌고 아이의 마음에는 폭풍이 일었다.


남편은 잦은 출장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아이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출했고, 몇 주가 지속되자 나는 지쳐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틈 타, 불안이 싹텄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보던 폭력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 아이가 자신의 화를 절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자랄까 봐 두려웠다. 불안이 커질수록, 아이를 더 매섭게 혼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훈육을 한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분노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가는 막막함과 절망을 매일 마주했다.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외면했고, 밤이 되어 잠든 아이를 보면, 죄책감이 무겁게 짓눌렀다. 


언제, 무엇 때문에 그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났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와 나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시궁창에서 구해낸 건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첫 번째는, 끝없는 대화.

문제 행동을 보이기 전만 해도 아이는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거나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울면서 자기만의 동굴(방)로 들어갔다.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해서 혼이 나 서러울 때도 그랬고 종이접기를 하다가 잘 되지 않아 속상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아이가 진정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괜히 더 야단을 친다거나, 위로해 주려고 섣불리 감정을 읽어주려 했다가는 더 격하게 울고 소리칠 뿐이었다. 잠시 기다려주면 어느새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말했다.


“이제 진정됐어. 이제 얘기할 준비 됐어.”


그때부터 꼬옥 껴안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가 왜 화가 났는지 혹은 속상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게 어울려 살기 위해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는 무슨 말을 하든 거부하던 아이가 혼자 마음을 추스른 다음에는 어떤 말이든 귀담아 들었다. 그게 우리의 루틴이었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나타난 후에도 이 루틴은 계속되었다. 서로 격렬하게 날을 세우다가도, 아이가 진정하고 나오면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는 늘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도 말을 꺼냈다.

“화나거나 속상한 마음은 자연스러운 거야. 네가 속상해서 울거나 방에 들어가서 진정할 때, 그걸로 혼낸 적은 한 번도 없잖아. 하지만, 화가 난다고 해서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다 해도 되는 건 아니야. 물건을 던지고, 다른 사람을 때리는 행동은 안 돼.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런 말도 안돼. 그런 말을 들으면 엄마도 너무 상처받고 슬프니까.”


이런 대화가 하루에 두세 번씩, 세 달 가까이 지속되었다. 어떤 날은 너무 화가 나고 지쳐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오히려 아이가 불안해했다. 엄마는 아직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거부하면 아이는 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난 진정하고 엄마랑 얘기하러 나왔는데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대사인가!

자기 마음이 준비되었으니 상대방은 당연히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니. 아이가 불안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때는 아이를 좀 더 기다리게 할 때도 있었다. 정말 화가 풀리지 않아서 그랬을 때도 있고, 자기 마음이 풀렸다고 상대방의 마음도 풀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아직 다섯 살인 아이에겐 가혹한 일이었을지라도.


아이와 똑같은 문제로, 반복해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만큼 신물이 날 때마다, 오은영박사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인내했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수천번이라도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고. 다행히도 겨우 수백 번을 반복한 끝에 멈출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행동의 강화.

아이의 문제 행동이 나타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잠들기 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는 매일 엄마와 싸우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그 말을 듣고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앞으로 싸우지 않는 날이 100번이 되면 파티를 하자고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골라서 말이다. 다음 날부터 밤마다 하루 동안 사이좋게 잘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도 싸우지 않은 날에는, 아이를 듬뿍 칭찬해 주었다.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며, 화가 났음에도 나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칭찬했고, 하고 싶었음에도 고집부리지 않고 엄마를 위해 양보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런 날들이 하루하루 쌓이자, 아이가 달라졌다.


“아, 오늘도 안 싸웠으면 30 밤이 되는 건데 너무 아쉽다. 내일은 우리 꼭 사이좋게 지내자.”


이렇게 말하며, 엄마와 약속한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진정하고 나온 아이를 꼭 껴안고 칭찬해 주었다. 아이에게 엄마를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하면, 아이도 엄마가 자기가 원하는 걸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그 해 8월에 우린 100일 기념 파티를 했다. 아이와 다시 100일을 세서 파티를 하자고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싸우지 않은 날을 더 이상 세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의 문제 행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순히, 아이가 성장통을 겪었고, 그 시간이 지나 마음이 한 뼘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방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알았어.”라고 순순히 수긍하기도 하고, “왜 엄마 맘대로 해?”라며 협상을 시도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속상할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꾹 참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고 토라지지만 언제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슬쩍 다가와 엄마 손을 꼬옥 잡는다. 어쩔 땐 내가 은근슬쩍 아이 손을 잡는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둘이 보라카이에 올 용기가 생겼고, 발리에서도 우리 둘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행복한 여정을 만들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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