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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대처하는 지극히 사적인 자세

어떤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고 있나요?

by Jade

아이를 키우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쓴 지 일 년 정도 된 것 같다. 나는 유아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애를 둘셋 키워본 베테랑 엄마도 아닐뿐더러 고작 아들하나 키우는 일도 버거운 초짜 엄마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쓴 육아글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고 망설여지는 날들이 꽤 많았다. 내 이야기가 과연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시행착오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 과연 도움이 될까? 누군가의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십 년도 더 지난 후에 아들이 명문대에 들어가거나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면 그때는 사람들에게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려나. 이런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건 글을 쓰는 행위가 선언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게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중심을 꽉 잡을 필요가 생겼다. 인간관계가 매우 좁은 사람임에도 여기저기서 유혹의 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사교육 문제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줏대 없이 흔들리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서 이렇게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사교육에 대처하는 나만의 원칙을 세우는 중이다. 물론 이건 나의 원칙일 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육아 동료들을 배척할 의도는 전혀 없다. 어떻게든 소중한 내 새끼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은 같을 테니까.


첫 번째 원칙, 현재 아이의 수준과 적절한 학습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건 학원 레벨테스트와 학원 강사가 아니라 엄마다. 물론 배우는 내용이나 기술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오겠지만!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원가에 있는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를 신청해 놨는데 우리 아들도 같이 보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꼭 보내려는 건 아니지만 학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하고 아이 실력도 알아볼 겸 신청했다고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아들 실력은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게 없는데 어쩌지?'였다. 무려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조차 없는 시험지만 노려보며 꼼짝없이 앉아있을 아들 모습이 그려지며 짠한 마음이 일었다. 다행히(?) 그 시간에 수영 수업이 있어서 친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친구 딸은 영민한 아이다. 어떤 걸 알려주었을 때 이해도 빠르고 기억도 잘한다. 그래서 친구는 행여 자기가 적절한 자극을 주지 못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곤 한다. 아이의 현재 실력이 궁금해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리 집 사정은 좀 다르다. 아들은 이야기를 좋아해서 하루 종일 오디오북을 틀어 놓을 때도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구경도 좋아해서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선다.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진 않는다. 종이 접기나 줄넘기하는 걸 지켜본 결과 꽤 끈기도 있다. 하지만 영어를 배울 때 보면 이해력이 빠르다거나 암기를 잘하지는 못한다. 매일 교재 한 장씩 풀며 sight word를 익히고 있는데 몇 번을 반복한 단어가 나와도 '이게 뭐더라?'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기 일쑤다. 속 터지는 순간이다. 파닉스를 알려주어도 금세 까먹고 적용을 못하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 sight word 위주로 하고 있지만 꼭 느릿느릿 움직이는 달팽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조바심 나고 답답한 순간이 왜 없겠나. 하지만 아이를 학원에 밀어 넣는다고 해서 순식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아이가 버벅거리는 게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안심이 될 수는 있지만 실력을 쌓기는커녕 영어에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지금도 영어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다행히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발리에서 학교를 다니며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적절한 속도가 무엇인지는 수년간 지켜본 내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주변에 아는 엄마들이 별로 없어서 디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를 매개로 가까워진 엄마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남의 집 아이 얘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집 아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그 순간 내 아이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고 그걸 메꿔줘야 할 것만 같아 조급해진다. 거기다 무슨 학원에 보냈더니 좋다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혹하기 마련이다. 학원 원장이나 강사가 하는 얘기는 원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이라 치부하기 쉬워도, 같은 입장에 놓인 다른 엄마들이 하는 말은 신빙성이 있어 보여 꽤나 달콤한 유혹이 된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내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옆 집 아이에게 도움이 됐다고 해서 우리 집 아이에게도 효과가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한 달 전쯤 이런 일도 있었다. 아파트 정문 상가에 겨울 방학 특강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저게 뭐냐고 아들이 물었다. 미리 학교에서 공부할 내용을 배우는 거라고 했더니 아들이 대뜸 말했다.


"그럼 학교에서는 수업 안 들어도 되겠네? 이미 배웠는데 뭐 하러 수업을 들어?"


너무 이치에 맞는 소리라 쓴웃음이 났다. 그게 요즘 학교 현실이라는 사실에 더욱 착잡했다. 새롭고 낯설어야 호기심이 자극되고 해보고 싶은 미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 집 아이는 그랬다. 매일 연산 문제집 한 장, 영어 교재 한 장 푸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선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학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일뿐더러 학교 수업의 재미를 크게 헤치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해나가는 게 목표이다. 현행 위주로 탄탄히 바닥을 다지며 나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두 번째 원칙, 학원비는 한 달에 50만 원 수준을 유지한다.

이미 일주일에 수영 2회, 축구 1회 수업으로 절반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 학교 방과 후 수업도 3개나 신청해서 조만간 50만 원을 다 채울 듯싶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영을 열심히 배워서 1년 뒤에 훨씬 저렴한 단지 내 수영장으로 옮기면 그때 등록해 주겠다고. 현재는 6명 정원으로 운영되고 씻고 옷 입는 케어까지 다 해주는 수영학원으로 보내고 있는데, 단지 내에 있는 수영강습은 20명 정원이고 스스로 씻고 챙겨야 하는 대신 수강료가 절반도 안된다. 이렇게 한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어떤 학원을 보낼지 신중하게 고르게 되고 주변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적다. 이렇게 학원비 상한가를 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휴직을 하게 되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매달 남편 월급만으로 생활하면서 학원에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이 딱 그 정도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주담대로 나가는 비용도 있고 100만 원을 여행경비로 떼어 놓고 있어서 빠듯하다. 물론 연말에 목돈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주식 투자나 부족한 여행 경비를 충당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아들의 학원 수강은 우리 가족의 지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다. 여행을 위해 쓰는 돈만 줄여도 학원 몇 개는 더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자질을 키우기에는 학원보다 여행이 더 효과적이다. 독립심, 경제관념,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융통성, 인종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타인을 수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등... 이런 걸 가르쳐주는 학원은 없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밖에는 없다. 여행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 모든 걸 시험해 보고 기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 물론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내 논리와 상관없이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그냥 네가 여행 가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역시 너무 맞는 말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교육적인 고민도 들어가 있음을 덧붙이고 싶다.




세 번째 원칙, 아이가 특정한 직업을 꿈꾸지 않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꿈꿀 수 있도록 격려한다. 직업을 꿈으로 삼으면 무한 경쟁은 필수가 된다. '7세 고시'에 관한 다큐를 보며 생각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그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삶은 과연 행복할까?

더 큰 문제는 하나의 정답만을 설정해 놓고 앞만 보며 달리다 보면 아이의 가능성도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크면서 발달시킬 수 있는 재능과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다양한 영역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너무 일찍 한정시키는 건 아닐까? 삶에 대한 태도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자질을 길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직업은 아이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토대로 찾아가도록 격려해주고 싶다. 그런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특정 직업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으면, 사교육에 대한 고민이 한층 단순해진다. 물론 휴직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수 있을 테지만. 나 역시 복직을 해야 하는 때가 되면 아이를 어느 학원에 맡길지 발 동동 구르며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사교육을 과잉으로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누군가는 학원 그까짓 거 안보내면 되지 너무 비장한 거 아니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주변에서 뻗어오는 유혹의 힘은 세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홀라당 넘어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긴 글을 적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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