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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희윤 Oct 30. 2022

어차피 68%는 망한다

성공을 글로 배워서였을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창업 4년 차, 망했다. 성공을 글로 배워서였을까.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배워서 잘 안 된 건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 부모님을 기쁘게 했던 학교 타이틀. 취업준비를 잘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꿈꿔왔던 업계의 대기업. 신입 생활도 배움의 연속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스킬, 직장 에티켓, 건배사 읊는 법. 이렇게 배우다 보면 남은 인생도 잘 될 수 있을까? 다음 스텝은 뭘까.


입사 2년 차, 1월 2일. 새해 첫 출근부터 지각할 뻔했다. 허겁지겁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막 닫히려던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20명과 눈이 마주쳤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뭔가 이상했다. 놀랍도록 생기가 없는, 작년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권태로운 눈빛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객들 뒤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내 눈빛도 다를 게 없었다. 위기감 비슷한 것이 안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회사 안에서 다음 스텝은 없다. 앞으로 20년 간 이런 눈빛으로 출근해야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회사 중 하나가 아닌가. 반짝이는 눈으로 새해부터 시장의 변화를 탐색하고, 창의적인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광고인은 그저 신입사원의 환상이었을까. 그날부터 마음이 맞는 동기 둘과 퇴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두 명과는 1년 차 때부터 일찌감치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을 주제로 시작한 스터디는 '성공한 스타트업 이야기'로 바뀌었다. 페이스북, 구글, 에어비앤비. 패기와 호기심 하나로 기숙사에서, 차고에서, 하숙집에서 사업을 시작한 모험가들. 털끝만큼이라도 좋으니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아니,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반 년 간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함께 퇴사하고 모험을 시작했다.


이후 3년 6개월 동안 한 건의 투자를 받을 뻔했고, 하나의 서비스를 오픈했으며, 하나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수만 명의 고객을 모으고, 매월 수천 만원의 매출도 올렸지만, 그 무엇도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결과는 폐업.


사업의 실패보다 아픈 건 자기통찰의 실패였다. 온갖 자기계발서와 경영전략서, 화려한 창업스토리를 흡수하고 웅장해진 가슴이 실업급여 신청서를 안고 있었다(폐업한 자영업자도 신청할 수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수많은 성공담에 나오는, 준비된 그 사람이 아니었다.


어차피 68%는 망한다


통계청에서 공개한 <2020년 기업생멸행정통계 결과>에 따르면, 매일 2,900개의 사업자가 탄생하고 2,000개의 사업자가 사라진다. 어림잡아도 매일 결혼하는 커플의 5배, 이혼하는 부부의 7배이다. 사업자가 아닌 개인 차원의 투자나 프로젝트를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누군가가 야심차게 시작한, '내 일'의 흥망성쇠가 이토록 흔하다.


도전하는 사람들의 68%는 5년 안에 망한다. 나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는 그 비율이 70~80%까지 올라간다. 아무리 끝내주는 자기계발서가 나오고, 혁신적인 경영 전략이 화제가 되어도 이 수치는 변하지 않는다. 뼈아픈 현실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도 그 68% 중 흔한 한 명이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봤지만, 망한 건 처음이었다. 고통스러웠다. 성공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었다.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재능과 경험, 운과 실력 모두 역부족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노력의 영역이 남아있었다. 잘 망하는 것. 이번에 성공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잘 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걱정하면서 인내해준 가족들,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친구들, 많이 의지했던 동업자까지.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 망해야 했다.


문제는 실패에 대해 아는게 1도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껏 겪어온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은 전혀 치명적이지 않았다. 잃을 것도, 잃은 것도 없었다. 술 한 잔 하면서 '다 경험이지' 따위의 이야기로 무마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3년 반의 시간과 노력, 전재산을 갈아넣은 실패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위로 따위가 아니라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성공은 글로 배웠지만, 실패는 몸으로 배워야 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은 모두 잘 되는 방법만 얘기했지, 잘 망하는 법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망했을 때의 키워드들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이를 극복하고 재기했다는 성공담이나, 동업자와 거래처 원망글, 파산∙회생 광고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인생 중대사인 결혼∙이혼 관련 조언은 넘쳐나는데, 잘 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유익한 정보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잘 망해야 할텐데. 68%의 동지들은 어떻게 망하고 있나.


잘 망한다는 것


어지간히 냉철한 사람이 아니라면, 애지중지 가꿔온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망해가는 순간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무리하게 발버둥치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어떻게 망할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목표를 세울 여유는 없었다. 다만 그동안 두었던 악수들을 만회하려는 듯, 좋은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다.


망해갈 때의 좋은 점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부질없게 느껴지겠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천천히 살펴보면 분명 의미있는 선택을 할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좋은 선택을 하고자 노력하면서 '잘 망한' 결과, 아래의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1. 자기통찰 : 수많은 ‘왜?’에 대한 답을 얻는 기회


우리는 종종 아래의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최선의 답을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 있다.


- 나는 왜 이 일/사업/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 나는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어떤 것들이 나를 망하게 했는가?

-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인 만큼, 언제나 완벽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오답들을 제거할 수 있고, 무엇보다 커리어와 삶의 방향성을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다. 스스로 쌓은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해서 말이다.


2. 회복탄력성 : 마음의 근력(멘탈)을 늘리는 시기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이를 흡수하고 삶을 이어나갈 때, 하던 일이 갑자기 훨씬 쉬워보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사업 실패 후 직장생활로 복귀했을 때 그랬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강해진 근력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좌절, 스트레스를 처리해낼 수 있다. 


마음의 근력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혼자서 잘 버텨내는 능력을 생각하지만, <회복탄력성>에 의하면 '자기조절능력'과 함께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대인관계능력'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실패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더 나은 영향력을 주고받게 된다. 


3. 스토리텔링 : 나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재료


폐업 후, 나는 재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전문성을 가진 조직에서 더 성장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고, 규칙적인 생활과 체계적인 업무를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막상 다시 취업을 준비하려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자금은 바닥났고, 신입에서 멈춘 경력은 3년 넘게 단절돼있었다. 어떻게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타인에게도 의미있게 만들어야 했다. 한 달 동안 사업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글로 정리했고, 이를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에 녹여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로 완성했다. 그러자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면접의 기회를 주었고, 두 달 간 10번이 넘는 면접을 보면서 서로 가장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사업을 정리하고 3개월 뒤 원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첫 회사보다 25% 높은 연봉과 수천 만원에 달하는 스톡옵션을 받는 행운까지 따랐다. 스토리텔링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재취업이나 재창업 방법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화려하게 재기한 무용담은 더욱 아니다. 그저 실패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과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력, 이에 보탬이 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어차피 68%는 망하고, 우리는 잘 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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