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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희윤 Oct 30. 2022

왜 나는 너를 두려워하는가

망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미지의 공포


"뭐 어때! 서른이 되기 전에 대차게 망해보는 것도 좋지!"


퇴사하던 날, 동기들이 마련해준 술자리에서 외친 말이다. 창업이 잘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플랜B는 있는지 물어보는 동기에게 호기롭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한 구절을 읊은 것이다. 사표는 수리됐고, 출사표는 던져졌다. 망할 이유도 없고,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 뒤, 나는 망해가고 있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죽을 만큼 괴로웠다. 수면량은 매출과 비례해서 줄어들었다. 체중이 빠지고 신경은 곤두섰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원망과 무기력이 교차했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이 내게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3년 전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왜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 것일까? (큰소리쳤던 것과 다르게, 서른을 넘겨서 망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빚도 없었고, 잃은 것은 투자금 수천만 원 정도였다. 물론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더 크겠지만, 그마저도 지난 3년 간의 수익을 감안하면 생활비로 볼 수도 있었다. 32살의 끝, 어쩌면 경력단절에 중고신입은 물건너갔지만 먹고 살 걱정을 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왜 망하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사업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실패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진화해왔다.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처음 보는 버섯은 안 먹는 게 상책이었고, 낯선 이방인은 무리에 들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깊은 물 속이나 천 길 낭떠러지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이를 두고 SF호러의 거장 H.P.러브크래프트는 말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커버 이미지가 그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실패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른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이른 나이에 망해보는 것도 다 경험이라고 하지만 잘 망하는 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할 것인지, 실패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실패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실패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막상 실패가 다가오자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만약 어느 문제도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직감적으로 두려워하는 결과가 있다. 독버섯을 먹으면 최소 배탈이 나고, 벼랑에서 떨어지면 어딘가 부러진다는 것처럼. 대차게 망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뉴스나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학습된 것인지, 어딘가 큰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흔히들 알고 있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이론에 대입하자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욕구를 깡그리 박탈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사업에 실패한 연예인들 근황'이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망한 집안의 클리셰적인 모습들을 떠올리면 그렇게 학습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결국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두려움 1. 당장 먹고사는 데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생리적/안전의 욕구 충족 X)

→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업을 정리하자 수중에 80만원이 남았다는 사실이 황당했는데, 폐업한 자영업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등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더불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여유 시간이 생기자, 오히려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던 창업 시절보다 삶의 질이 올라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두려움 2. 주변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 것이다 (소속감/존중 욕구 충족 X)

→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아무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대부분의 지인들이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고,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지옥에서 돌아왔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3년 반 사이에 세상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이 달라져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 이전보다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N잡을 준비하거나 퇴사하고 자기 일을 시작하려는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선발대'인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두려움 3.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자아실현의 욕구 충족 X)

→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실제로 사업이 망해가면서 한 동안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아직까지 잃은 것이 없으며, 지금부터 무너지면 비로소 잃기 시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좌절감이 다시 욕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잘 망해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해지자 다시 움직일 수 있었고, 사업을 정리하는 몇 개월 동안 정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지난 몇 년을 압축한 만큼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패가 초래할 끔찍한 결과들 때문이 아니다. 실패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대처하면 우리는 실패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분신 같은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망해가는 걸 보고 있으면서 제정신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거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망해보는 게 좋다' 따위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잘 망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앞으로 몇 편의 글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왜 우리 사전에 실패란 없을까


건강한 성인이라면 개인적으로 자기 관리를 할 줄도 알고, 업무나 투자를 하면서 리스크 관리도 하지만 유독 실패를 관리하는 방법은 모른다. 대단한 성공을 해본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토록 실패를 모를까.


1. 당신과 주변 사람들 모두 실패를 안 해봤다.


당신이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아마도 실패를 안 해봤을 확률이 높다. 안정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이고, 그걸 손에 넣는 댓가로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입시 또는 취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면, 그건 차질이 있었던 것이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은 약간의 시간과 정신건강이 전부이기에, 망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 주변의 지인들이 대부분 비슷한 배경을 가졌다면, 당신이 간접적으로나마 실패를 경험해볼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2. 누구도 제대로 실패를 공유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실패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기억을 떠올려보자. 나 같은 경우, 한창 취업을 준비하던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면서 겪어본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서술하시오. (1,000자)’


누구나 자신의 자랑스러운 면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자기소개서의 이 단골 질문을 마주하면 착잡해진다. 실패의 기본 속성이다. 어린 아이들도 재롱잔치에서 실수를 하면 즉각 만회하려 애를 쓰고, 어른들은 타인의 실패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실례로 여긴다. 공공연하게 실패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면접에서만 허용된다. 그마저도 적당한 선에서 질문을 멈추거나, 모범적인 답변으로 포장되는게 대다수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내 부모님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하셨지만, 한 번도 나에게 자세한 내용을 공유해주신 적이 없다. 그저 부모님의 표정으로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도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셨으리라. 덕분에 나는 '사업하는 집'치고 비교적 평온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전정신은 그대로 물려받은 것에 비해, 두 분이 실패를 통해 얻어낸 경험까지 물려받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가끔은 부모님께서 수십 년 전에 이미 겪으셨을 시행착오를, 지난 몇 년간 내가 불필요하게 반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의 생각과 행동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니까.


3. 실패한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 성공하기 전까지.


실패는 너무나도 중요해서, 스티브 잡스부터 백종원 선생님까지 거의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실패에 대해 명언을 남겨왔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를 통해 배운 값진 경험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두려움 2. 주변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 실패는 철저한 조연이자, 성공한 이야기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소로만 유통되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 만사가 결과로 통하는 것도, 오직 성공한 스토리에서만 실패가 빛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성공한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패는 나의 실패를 초라하게 만들 뿐, 당장 이를 극복해야하는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주기는 어렵다.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담대하게 도전을 하고,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졌고, 사회는 실패하기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실패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기억하자. 우리는 실패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리고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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