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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듀 Nov 24. 2021

원망과 애틋함 사이에서

늦둥이 외동딸로 산다는 것

늦둥이 외동딸이라 하면 '사랑 많이 받았겠네요~'라는 말이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부모에게 자라지 않은 이상 사랑받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다. 방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나 역시 부모님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자랐지만 '늦둥이 외동딸'이라서 더 특별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진 않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만 했던 부모님은 항상 바빴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오히려 '오냐오냐 자랐을 거란' 편견을 걱정한 나의 부모님은 날 더 엄하게 키우기도 했다.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우리 부모님의 나이가 많다는 게 눈으로 보였단 것을 제외하면 어렸을 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어린 마음엔 그게 제일 큰 차이이자 중요한 문제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부모님은 너무나도 한창때였다. 오히려 '늦둥이 외동딸'로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또래와의 차이를 실감한 건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이조차도 늦둥이와 외동딸 중 하나에만 속했더라면 크게 느끼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죄책감과 애틋함

엄만 오랫동안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뒤늦게 낳은 나를 키우기 위해 아직 청춘 같기만 한 딸 친구들의 부모들을 따라가려고 부단히 애썼으리라.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아빠에 비해 엄만 맞벌이로 바쁜 와중에도 내 손을 붙잡고 각종 전시회나 박물관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계치에 인터넷 사용도 잘 못하는 엄마가 그 당시 그런 정보를 찾으려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늦둥이 딸 때문에 남들 손주 볼 나이까지 일해야만 했던 부모님을 봐오며 마음엔 항상 죄책감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또래들에 비해 유난히 부모님과의 시간을 많이 가지는 편이다. 미루다간 나중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게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어린 가장의 책임감

늦둥이 외동딸로 산다는 것은 남들보다 일찍 가장이 된다는 것과 같았다.

내 또래가 미래, 취업, 이직 걱정을 할 때 나는 부모님 노후까지 걱정해야 했던 게 일상이었다. 아직 한창 일하고 계신 친구들의 부모님과는 달리 이미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 한 몸 챙기기에도 버거운 세상살이다 보니 문득 늦둥이 외동인 게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의지할 형제라도 한 명 낳아주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스물여섯의 고희연 준비

 나이 스물여섯에 엄마의 고희연을 치렀었다.  결혼 준비라 해도 이르다  판에 엄마의 고희연 준비라니. 새삼 내가 얼마나 늦둥이인지 실감이 났었다. 더군다나 외동이었기에 고희연 뷔페 예약과 지인분들 초대, 케이크와 답례품 준비를 오롯이 혼자 해야만 했다.


늘어나는 병원 살이

나이가 들수록 몸이 고장 나기 일쑤다. 100세 시대라 60대까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이 70세를 넘기니 병원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1년에 한 번씩은 입원을 하게 되었고, 입원기간도 점점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작년 이맘때 무릎 관절수술을 했고, 올해엔 급성 패혈증 쇼크로 입원을 했다. 본인 몸이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는 다는걸 몸소 느끼는 부모님은 심적으로도 많이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현실적인 부담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부모님의 예전 강했던 모습들이 겹쳐지며 안쓰러워진다.


부모님의 숙제는 내 숙제

엄마, 아빠 세대가 IT 기기에 익숙지 않은 세대이다 보니 내가 대신해줘야 할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참 많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숙제가 내 숙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자연스레 스스로 모든 일을 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받는 게 익숙지 않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게 느껴진다. 세상이 편리하게 변하는 것은 좋지만 어르신 분들에게도 좀 더 친절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UI 디자이너가 됐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장점이 있다면?

물론 있다. 노화와 노후에 남들보다 빨리 인식하고 준비한다는 것. 그리고 단순히 열심히만 준비해선 안된다는 것도 잘 안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인정하는 우리 부모님도 노후가 제대도 준비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요령 없이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의 삶을 존경은 하지만 삶엔 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노화로 인한 몸의 변화 또한 아주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겪으면서 몸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실천하고 있다. 건강관리는 문제가 생기고 나서가 아니라 '아무 문제없을 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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