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도 투표 앞에선 진지했다
사전 투표일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와중에 놓쳐버리고 본 투표일이 왔다. 날씨도 좋고 휴일이라 더 신났던 본 투표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즈막히 아점을 먹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오후 늦게 투표장으로 향했다.
한때는 투표 한 번에 세상이 180도 바뀔 수 있을 것처럼 비장했고 정치 얘기로 친한 친구와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년차 유권자가 된 지금은 그저 공보물이나 성실하게 들여다보고 내 한 표가 그래도 더 좋은 세상을 가져 올 나비효과가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가 끝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개표 방송을 보았다. 선거 용어들도 후보들의 모습도 낯설 텐데 초딩 아이들도 제법 진지하게 방송에 집중한다. 아하. 이 아이들은 이미 무려 피선거인으로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있다. 지난 3월 반장선거에서다.
남편의 권유로 반장 선거에 나간 두 아이는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큰아이네 반장은 교실에 보드게임을 비치하겠다는 공약으로 유권어린이들의 마음을 사서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마니또 하기, 생일 챙겨주기, 준비물 빌려주기 등 다른 후보들의 공약들도 솔깃한 것들이 많았다.
라떼 반장선거에서 항상 듣던 공약은 선생님을 도와 우리반을 더 좋은 반으로 만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었던 반면 아이들이 전해주는 요즘 공약들이란 실용적이고 구체적이기 그지없다. 세상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해도 내 주위의 작은 것이나마 하나씩 바뀌어 나가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을 지금의 아이들은 더 빨리 깨달은 것일까. 이 아이들이 자라서 투표를 할 때쯤이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