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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Oct 21. 2019

03. 세 번째 편지

건축심문#3

L. 03


from house



세 번째 편지

#3


형, 안녕하세요? 

일전에 답변 주신 내용을 ‘이집저집우리집’ 식구들과 함께 잘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기억들도 생각나고, 지금 앉아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다시 둘러보게 됩니다.

그중 몇 가지는 ‘이집저집우리집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의 의견으로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개별 혹은 공통의 의견입니다.

칭찬 일색이라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네요......  



1. 이집과 우리 집은 상당히 독립적인 주거 환경을 잘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다만 우리 집 부분이 현재는 공방의 역할에 충실한데. 만약 이 장소가 공방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집의 공간이 마당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고, 또 두 집을 자연스럽게 회랑처럼 이어주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그래도 공방으로 계속 기능하고 있어서, 초기에 마당의 활용과 가능성들이 조금은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또 다양하게 변해 가겠지만, 두 집 사이의 마당의 역할과 의미가 조금은 어색해 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유 마당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지금처럼 중성적 공간으로 비워져 있어도 충분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더 밀도가 있는 공간과 장소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집의 프로그램과 공간의 목적이 구체적이고 합목적성을 뛰어야 하겠지요? 살아가시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필요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의 가능성을 많이 품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약에 공동의 거실이나 카페 또는 마을과 공유하는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건 오히려 저의 질문이 되어 벼렸네요...  


---> 집씨(공통 + 개인 의견)


a. 공통 의견

말씀처럼, 저희들 역시도 공용공간이 이집저집우리집만을 위한 공동의 거실로 기능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재밌는 생활의 공유나 활동(실내 캠핑/차 마시고, 밥 먹고, 숲 구경하고, 비 구경하고, 눈 구경하고, 고양이 구경하고, 그림 그리고, 김장도하고......) 등 ‘이집’과 ‘저집’ 작은 거실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국패/참치/발레/집씨는 현재의 구성과 활용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전원 혹은 주택 생활에 필요한 많은 가구와 도구의 문제를 작업실을 통해 해결했고, 지금도 계속 해결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니, ‘이집저집우리집’을 처음 설계할 당시에도, 공용공간의 최우선 역할은 ‘각종 마감 작업에 필요한 작업실’로서의 기능이었고, 그 기능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을 경우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거실 기능의) 공용공간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b. 개인 의견

저 개인적으로는 ‘저집’이 독립주거에 더 최적화되어 있는 듯 느껴집니다. 구조도 그렇고, ‘저집’ 구성원들의 실제 생활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집저집우리집’ 짓고 지금의 마을에서 2년 6개월째 살아가고 있는데, ‘이집저집우리집’ 공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을 제외한 많은 부분들이 ‘이상 혹은 환상의 영역’에 머물던 것들도 꽤 많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의견이겠지만, 저희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씀드립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면 상시 거주하고 있는 집이나 집의 일부를 마을 주민이나 이웃을 대상으로 공유한다는 것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설계 및 활용 의도와 달리 해석되고 남용될 우려도 크며, 무엇보다 사유 공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집 울타리와 경계를 넘나들고, 불법적인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해 집과 연계된 자연공간(하천부지나 산, 계곡 등)을 점유하는 지름길로 활용하려는 행태로 인해 저희는 적잖이 당황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일본 소설가 미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다>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의 무례함과 간사함, 이기주의 등이 이곳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엔, 사람 사는 문제가 늘 뒤따르는 것처럼.  


2. 완성된 설계 작업 이후 완공된 결과물을 볼 때면 늘 아쉬운 부분과 미련이 남는 부분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긍정적인 측면에 무게 중심을 두기에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저집의 경우는 거실 공간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지금 1층 손님방 부분과 동측 소파 자리의 공간이 조금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마당의 모습이 좀 더 달라졌을까? 동측에 손님방이 마당과도 관계를 맺고, 거실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연계되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답니다.(아니면 지금의 이층 거실이 작업실이 되고, 1층 작업실이 거실이나 식당이 된다면,,, ) 필요하면 중앙 마당과도 선택적 연계가 가능했을까? 또 2층의 보이드 공간이 수직적인 공간감과 함께 내부 면적을 줄여야 해서 생긴 이유도 있지만, 보이드가 좀 더 컸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1,2층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시각적 소통을 강화하는 문제점이 대치되고, 선택의 문제이기 하지만 말이에요... 만약 아이가 있다면 좀 더 소통이 되면 좋겠지요? 글을 쓰다 보니 개선점이나 업그레이드보다는 그냥 가정과 상상이 되어버렸네요 ㅠㅠ 아니면 하지 않는 미련을 끄집어내는 꼴이 되네요.. 


--> 참치 (개인 의견) 

참치가 소장님께,

성의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정말 숙고하셨다는 생각이 드는 답변이었어요.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처음에 읽어보고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설계할 때 아주 잠깐이라도 상상은 했던 부분이 있더라고요. (손님방 부분과 동측 소파 자리 공간 배치 빼고) 그럼에도 지금 그 답변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실제 생활하면서 익숙해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 1층 손님방과 동측 소파 자리 공간을 바꿨다면 아마 후원 쪽에 손님방에서 보이는 풍경을 위해 조경이나 텃밭 관리에 좀 더 신경을 많이 썼을 거 같아요. 일반 직장 생활을 하며 잡초 하나 없는 텃밭이나 계절별로 예쁘게 관리하는 조경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좀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라는 게으른(?) 상상도 해봅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스트레스는 받습니다. ^^;;

그리고 2층 보이드 공간이 만일 더 커졌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한다면, 솔직히 – 남편 의견 배제하고 개인적으로 – 전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현재 보이드 공간이 있음으로써 장단점이 있는데요, 공간이 트여 있으니 소음도 더 잘 들리고 음식 냄새도 확실히 위로 잘 올라와서 환기를 1,2층 모두 다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음식 냄새가 강한 요리를 할 땐 아예 2층의(안방, 드레스룸, 화장실) 각 문을 다 닫아 버립니다.

하지만 보이드 공간이 있음으로 빛도 더 잘 들어오고 반대로 환기가 잘 되는 좋은 점도 있어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동안 제가 살아온 집들에선 그런 보이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정말 건축가를 통해 지은 집이구나’를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전 보이드 공간이 좋지만 사실 음식 냄새의 영향이 커서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집을 지을 때 그 부분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유치하지만, 보이드 공간이 컸더라면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제 성격상, 그 부분에 그물망을 걸어두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을 겁니다. 100% 장담. 

그러나 상상하는 부분을 현실적으로 적용해서 보기 좋을 정도로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1층 평수가 더 넓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규모에서 가장 최적의 공간 사용을 고려한 집이 지어졌던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많은 고민의 부분을 짚어주셨던 삼간일목에게 새삼 감사합니다. ^^  


3. 이집의 경우는 딱하나 있는데. 2층 책상 공간에서 거실 쪽으로 쪽창/봉창을 하나 뚫었으면 어땠을까요? 독립적이어서 좋기는 한데, 제가 혼자 2층에 있었을 때는 약간 갇혀있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답니다. 책상 공간에서 선택적 소통을 하고, 뒤쪽 침실 공간을 좀 더 분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 이집(국패 & 집씨)

- 처음 공간을 고민할 때, 2층은 ‘셰어하우스/1인 거주/독립성’ 등이 기준이었습니다. 때문에 1층과 2층을 지금처럼 분리하길 요구했었습니다. 저희 역시 가끔 ‘쪽창이 하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집’의 공간 크기/구성 방식에서는 지금의 형태가 저희 생활 방식에 더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삼간일목애서 보낸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남깁니다.


“ 집은 공간(내부)과 장소(외부)가 얼마나 밀도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삶과 생활을 얼마만큼 잘 담아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공간의 크기나 쓰임새에 따라서 부족한 부분도 있고, 오히려 필요 없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집, 저집, 우리 집에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억이나 추억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주거의 삶에서, 또는 저 같은 건축가가 제안하고, 만들어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 / 공간 / 장소에 대한 기억과 느낌  


--> 이집 & 저집 


a.저집_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저집 답변 & 제안 

저(희)는 지금 집이 좋아요. 살면서 더 좋아져서 사실 새로운 집을 또 건축한다는 게 부질없는 짓(?)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럼에도 몇 가지 좋았던 기억을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나름 베스트 5! 


5위. 후원 쪽 데크에서 캠핑 기분 낼 때.

후원 공간은 자연스럽게 요새(?)처럼 되어 있어서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고 있어요. 남편이 만들어둔 화덕에서 모닥불 필 때도 좋았고, 요즘 새로 개장한 저만의 풀장에 물 받아두고 물놀이할 때도 좋았어요. 프라이빗한 공간이 아니었다면 외부 사람들 소음도 신경 쓰였을 테고, 수영복 입고 혼자 노는 일도 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ㅎㅎ 


4위. 욕조에서 반신욕 할 때.

욕조에 대한 제 로망이 컸던 건 아시죠? 모르실 리가 없겠죠.. ㅎㅎ 저의 로망이었던 욕조. 퇴근하고 피곤한 날, 혹은 주말 아침에 찌뿌둥 한 몸으로 일어났을 때 했던 반신욕에 대한 기억은 정말 강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밖에서 조금만 피곤해도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3위. 1층 보이드 공간 아래 소파에 누워서 2층 고정창 햇빛 바라보고 있을 때.

보이드 공간에 대한 상징성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아요. 소파에 누워서 보면 바로 옆에는 고정창을 통해 제가 심은 단풍나무와 관음사의 돌벽(옹벽)이, 그리고 위로는 높이 고정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모습이 다시 한번 내가 전원주택에 살고 있구나 라는 걸 알려줘서 항상 행복합니다. 


2위. 2층 거실에 누워서 창문 바라볼 때 보이는 계절의 변화.

이 곳은 가을과 겨울이 가장 좋은, 정말 손에 꼽는 곳 중 하나인데요. 2층 거실에 누워서 창문을 바라보면 나무가 3분의 1, 하늘이 3분의 2가 보입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보이고, 겨울에는 눈이 쌓인 모습을 집안에서 느낄 수 있어요. 편하게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매번 새롭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편안한 느낌이에요. 가끔 날아가는 새도 보는 재미가 있어요. ㅎㅎ 


1위. 안방 침대에 누워서 개천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달빛에 눈이 부셔 커튼 가릴 때.

대망의 1위입니다. 안방 침대에 누우면 개천의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요. 잠이 아주 잘 오는 소리예요. 그리고 침대 맡에 있는 창을 통해 종종 달빛이 강하게 들어올 때가 있어요. 보름달이 다 돼갈 때 특히 더 그렇거든요. 달빛 때문에 눈이 부신 기억. 책에서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남편과 처음에 달빛에 눈이 부셔서 커튼을 가리고 달빛을 피해 베개 위치를 잡을 때 우리끼리 신기해하면서도 이 집에 살게 돼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걸 떠나서 그때의 기억이 저한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억들을 뒤로하고 건축가로서 앞으로 더 고려해주시면 좋을 점이 있어서 감히 제안드리자면, 전원생활에서 내부와 외부의 중간 지점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점이에요. 물론 이건 실제 살아봐야 더 와 닿을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자연이 좋아서 전원생활을 하러 온 건축주들에게 굳이 또 중간 지점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지만, 외부에서 뭔가를 하기에 제약 사항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캠핑 기분을 내며 바비큐를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벌레, 나방, 모기들. 밖에 조금만 놔두면 거미가 와서 거미줄 치고, 벌이 날아들고. 비가 오면 운치 있게 밖에서 커피 한잔 하고 빗소리 듣고 싶지만 나갈 수 없고, 전원생활이라면 무조건 고기 구워 먹는 걸 생각하는 손님들을 대접하기엔 집안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싫고… 아주 사소하지만 생활인으로서 조금은 고민되는 부분들입니다. 이런 걸 모두 건축으로 해결할 순 없지만 조금은 고려가 된다면 삼간일목의 새로운 건축주들에게 굉장히 ‘디테일하시다’라는 말 정도는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b. 국패

저는 이집에서 거의, 대부분, 대체로 늘 행복한 이집 ‘국패’입니다. 권소장님의 첫 번째 심문으로 행복한 시간을 떠올려 보게 되어 즐겁습니다.

저는 퇴근하는 시간(특히 ‘칼퇴’하는 날은 더욱)이 늘 좋습니다. 주말을 맞이하게 되는 금요일 저녁이면 더욱 좋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까지 아직 볕이 남아있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더욱 좋습니다. 퇴근할 때 집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데크에서 고양이들을 불러보거나 텃밭으로 가서 오늘은 어떤 채소가 얼마나 자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습니다. 물론 잡초는 외면하고 싶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늘 행복합니다.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을 떠올려 볼까요? ‘가장’이지만, 한 가지만 떠올리기는 어려우니 제가 느낀 행복한 시간을 몇 가지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주말 아침에 느긋하게 숲을 바라보며 먹는 아침식사 시간을 좋아합니다. 시간으로 보지면 주말 아침이지만, 공간으로 보자면 거실이기도 하고 이집 앞 데크이기도 합니다. 아침을 최대한 잘 차립니다. 거한 주말 아침상은 이집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커피, 과일, 수제 요구르트, 빵, 베이컨, 바질 페스토, 잼, 샐러드, 써니사이드업 달걀 프라이(집씨, 우리 남편의 또 하나의 장기) 등등. 메뉴는 냉장고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천천히 숲을 보며, 새소리를 들으며, 고양이를 놀리며, 벌레를 쫓으며(야외 활동에는 약간의 수고가 추가됩니다), 그렇게 느릿느릿 주말 아침을 누립니다. 우리 거실에서 보는 숲은 늘 좋습니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아무것도 안 와도 좋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달리 숲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눈이 하얗게 덮기도 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간혹 고라니도 볼 수 있고, 우리 마당 고양이가 노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칡넝쿨이 내를 건너 우리 창까지 진격해오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좋습니다. 콸콸 흐르기도 하고, 물이 있나 싶게 소리 내지 않고 흐르는 소리도 좋습니다.


여름에는 부러 대청에 이불을 펴고 잤습니다. 이곳은 열대야가 없습니다. 마루 창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검은 나뭇가지들을 보며(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나무 종족 같기도 합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웬 호사인가요. 어느 밤에는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어느 밤에는 어릴 적 외갓집 대청 모기장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집에는 손님이 많이 옵니다. 친구도 오고, 선배와 선배 남편이 오기도 하고, 같이 작업을 하는 선생님들도 오고, 미용실 원장님 부부도, 치과원장님 가족도 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내어 줍니다. 음식도 내어 줍니다. 그들과 마주 보며 편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우리 부엌이 좋습니다. 우리가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어 좋습니다. 손님들도 우리가 내어 준 음식을 받기도 하고 망설임 없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경계가 없는 ‘우리의’ 부엌으로 쑥 들어옵니다. 서로에게 부담이 없습니다.


아, 요새 새로이 ‘이저우’의 애정 공간으로 떠오른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더워서 자동 임시휴업 중이지만요. ‘우리집’ 앞 데크입니다. 캠핑 의자를 마당을 향해 쭉 늘어놓고 티테이블(참치 요청, 집씨 제작)을 가운데 놓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한 줄로 할 일없이 앉아 있습니다. 보리차를 마시기도 하고 수박을 먹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정말 그냥 앉아 있다가 졸다가 합니다.


저는 이집을 좋아합니다. 집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간에 그저 좋은 시간이 쌓여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집 구석구석을 좋아하지만, 첫눈에 반한 구석도 있고, 새로이 발견되는 구석도 있어 재미나고 좋습니다. 


c. 집씨

‘이집저집우리집’에서 일과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저에게는 거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아주 평범한 ‘일상’입니다. 저는 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현재 ‘집’에서의 모든 시간들이 좋습니다. 혼자일 때는 혼자라서 좋고, 함께 일 때는 또 함께라서 좋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이집저집우리집’이라서 좋습니다. 


2019년도 입추가 지나갔습니다.

가을 문턱입니다.

여기선 바람과 하늘과 구름이 변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삼간일목 사무실에선 어떠신가요? 


“건축사무소의 설계 일상과 과정의 구체적인 행위/활동/과정 등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개념적인 설명으로서의 과정이 아닌, 실제 설계가 이루어지는 시간(약 3개월 이상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음) 동안 설계자 혹은 팀으로서의 삼간일목이 내부적으로 어떤 준비 단계를 거쳐 건축주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한 설계안을 내어놓는 건가요? 그리고 ‘이집저집우리집’ 설계 과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외비 기록이나 사건이 있었다면 이제는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설계 출발 당시의 고민/자료수집/내부 논의 과정/갈등/역할 등, 건축주들이 구체적으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 집씨 


“삼간일목이 짓는 집들의 컬러는 대부분 화이트와 우드 톤입니다. 컬러에 대한 삼간일목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무채색에 대한 일반적 선호가 있으신 건가요?”

- 참치 


‘삼간일목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진술은 추후 관계에서 건축사사무소나 건축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가 있으며, 굳이 필요하다면, 비용을 감당하시겠다!!! 하시면,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도 있습니다” 


다시, 질문을 띄웁니다. 




- 양평 이집저집우리집, 2019. 8. 14

대한독립 만세! 



이집저집우리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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