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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Oct 23. 2019

04. 네 번째 편지

건축심문#4

L. 04


to house



네 번째 편지

#4


8월의 마지막 날 삼간일목에서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내일이면 9월입니다.


매해 9월이면, 강산에의 "그래도 구월이다"가 생각납니다.


뜨거운 여름은 올해도 막을 내리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겠지요? 올가을은 좀 더 따뜻한 마음이 만나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답장이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그래도 8월에 보냅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했답니다. 너무 어려웠어요ㅠㅠ)



“건축사무소의 설계 일상과 과정의 구체적인 행위/활동/과정 등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개념적인 설명으로서의 과정이 아닌, 실제 설계가 이루어지는 시간(약 3개월 이상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음) 동안 설계자 혹은 팀으로서의 삼간일목이 내부적으로 어떤 준비 단계를 거쳐 건축주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한 설계안을 내어놓는 건가요? 그리고 ‘이집저집우리집’ 설계 과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외비 기록이나 사건이 있었다면 이제는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설계 출발 당시의 고민/자료수집/내부 논의 과정/갈등/역할 등, 건축주들이 구체적으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 집씨


우선,,, 송구하지만... 질문은 가능한 한 가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광범위해서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어떻게 글로 다 적어야 할지 고민만 했습니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답장을 미룬 제 게으름 탓이라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위 질문을 다 답변하려면,, 아마도 글보다는 하룻밤 맥주파티가 필요할 듯합니다. 설계의 과정을 생각해보는 일.... 대략 오픈하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해 왔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의 화두처럼 다가옵니다.

여전히 지금의 나의 태도, 나의 과정, 나의 진심이 맞는 것인지 많은 의구심을 낳기도 하네요.

결국 설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서 사람에 따라 매번 힘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설계의 과정은 축척된 경험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이며, 통찰과 지식을 통해 정리되는 생각과 아이디어 그리고 건축주의 요구조건과 땅이 가진 조건(법규 포함)이 각자 춤을 추듯 따로 놀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합주가 되는 과정입니다. 건축가의 마음과 머리와 손에서 정리되어 하나의 안으로 탄생하는 일입니다. 그 가운데 스텝들과의 논의, 업무의 분담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완성되어 나갑니다. 혼자 하기는 좀 힘든 팀 작업입니다. 처음엔 작곡자처럼 그리고 나중엔 지휘자처럼 일하게 된다고 할까요?


질문과 조금 다른 대답일 수도,, 아니면 제가 질문을 조금 바꾸어 대답한다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 이집 저집 우리 집을 설계할 때 행복했나요? ”

그때를 회고하며 그때의 과정들을 추억해봅니다. 처음엔 학연에 의해서 동질감을 느꼈고, 또 좀 특이한 상황 전개 그리고 네 분 모두의 개성과 인성이 참 좋았습니다. 설계하는 과정에서 집씨가 좀 더 주도적이었지만 예전 옥인동 사무실의 좁은 제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디자인과 건물 성능에 대해서 논의하던 때가 참 좋았습니다. 특히나 젊은 두 가족 네 사람과 저랑 프로젝트 담당자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주거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의욕이 매우 컸던 거 같습니다. 또 왠지 계속 관계를 이어가며 동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아직도 젊지만 그 당시는 더욱 젊은 건축가의 열정을 쏟기에는 충분했었습니다. 나름 욕심을 내며 고민하고, 작업했었지요..


건축가가 모든 걸 책임지고 끌고 나가는 타입보다는 늘 같이 의논하고 상의해서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주택 설계다 는 저의 생각이 지나고 보면 조금씩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직접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입장을 함께 고려하며 평범한 가운데서도 개성과 격을 갖추는 작업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건축가와 시공자를 통해서 그사이서 하나의 집이 탄생하는 일은 어쩌면 벅찬 일입니다. 


요즘은 좀 힘든 시간이 많이 찾아옵니다. 조금 지친 부분도 있고 앞으로의 두려움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설계하는 곳에 살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시 정신 차려야 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이저우집을 설계하던 때가 아련하고, 또 참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쓰다 보니 또 횡설수설이네요.. 글 쓰는 재주가 미천함을 절감합니다.)

아무래도 생각 정리가 잘 안되네요.. 이 부분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변호사 선임할 돈도 없어서 다음번에 이저우집에 가서 다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삼간일목이 짓는 집들의 컬러는 대부분 화이트와 우드 톤입니다. 컬러에 대한 삼간일목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무채색에 대한 일반적 선호가 있으신 건가요?”

- 참치


건물의 컬러나 재료를 결정하는 일은 참 힘든 과정입니다. 젊은 건축가는 대부분 외관 디자인에 많은 고심과 욕심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튀거나 특색을 강조하거나 하는 부분에 가장 큰 중요도를 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땅과의 관계와 공간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외관과 컬러 일거 같습니다. 다만 평범하고, 단출하고, 단순하더라도 가능한 정리되고, 약간의 감각이 드러나길 바라며, 특히 격을 잃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컬러나 재료의 경우는 제일 먼저 두 가지 조건이 확보되어하는데. 첫 번째는 예산 그리고 두 번째는 합리성입니다. 삼간일목의 작업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작업들이 많습니다. 건축가에게 작품으로서 많은 부분이 할애된다면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건축가 본연의 철학과 개성이 드러나는 외관을 만들 가능성이 조금은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축주의 생각과 동의, 그리고 신뢰와 지지가 같이 따라다닙니다. 선택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만족과 건축주로서의 만족이, 건축가로서의 책임과 건축주로서의 책임이 늘 공존합니다.

합리성의 경우만 놓고 따져보면, 예산에 적합한 재료 선정, 하자요인과 성능 저하가 없는 재료 및 디테일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그다음이 컬러의 선정 문제있은데. 외단열 시스템에서는 결국 합리성이 우선입니다.

삼간일목의 외단열 스터코 건물은 대부분이 화이트 톤입니다. 이유는 우선 열적 성능으로서 화이트 색상이 열을 반사하는 효과가 있어서 여름철을 생각하면 좀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형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색상이기도 합니다. 또한 창호 색상이 어쩔 수 없이 화이트라면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서는 외벽도 화이트로 하는 게 좀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섣불리 다른 색상을 선택하면 전체적인 벨런스가 무너집니다. 외벽 색상을 다르게 하려면 창호와 다른 부위의 색상들도 다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정리되고 나서 저층 부분이나 포인트 부분에 부분적으로 목재(처마가 반드시 있는 경우)와 벽돌 타일 등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포인트나 개성 혹은 재료적 느낌을 주는 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색체에 대해서는 고정된 철학이나 선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좀 더 자유롭고 과감하며, 공간의 특성이나 건축주의 삶의 방향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재료와 색상을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늘 무난함과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동시에 내재되어있습니다. 또한 이 부분은 건축가의 생각과 건축주의 취향 그리고 가용 예산과의 합의가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외관이나 색상 그리고 재료가 주는 느낌이 매우 중요하지만, 좀 더 중요한 부분에 대한 선택과 집중에서는 늘 조금씩 밀리는 느낌이기는 합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어쩌면 조금의 변명이 첨가되어있지만 아무튼 이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답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답장을 끝으로, 건축가의 두 번째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건축가에게는 기술적인 부분 예술적(디자인적)인 부분 그리고 카운슬러나 의사와 같은 부분 등 많은 모습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살면서 쉽게 만나는 대상은 아닐 겁니다. 물론 저도 변호사나, 검사, 정치인 등 직접적으로 만나서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나마 전문직 중에는 의사가 많네요... 설계도 일종의 서비스업입니다.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무튼 의사와는 많이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번 설계를 하고 집을 완성해서 살고 있고, 또 두 번째 집을 같이 설계하고 있어서 더욱 궁금하기는 합니다.


“ 이저우집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켜보시기에 건축가는 어떤 사람 같아 보이나요?”


(여러 타입의 건축가가 있고, 또 많은 건축가들을 만나보진 않으셔서 일반적인 모습을 말씀하시기는 어려우실 테니, 단지 같이 작업해왔고, 하고 있는 저와 삼간일목을 통해서 보이는 건축가의 모습을 한정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건축가라는 사람의 느낌이나 또 전문가로서 아쉬웠거나, 앞으로 바라는 점들을 써주셔서도 됩니다.)




ps) 변호사 집을 설계해본 적은 있는데. 아직 선임해보진 못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는 게 좋은 거겠지요?

다양한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면서 다양한 만남을 갖지만, 결국 사람인 거 같아요!!!


9월에 뵐게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2019.8.31 삼간일목에서 권현효 올림.



삼간일목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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