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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Nov 18. 2019

09. 아홉 번째 편지

건축심문#9

L. 09


to house



아홉 번째 편지

#9



아홉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아홉 번째 편지가 되었네요.. 그리고 여름에 시작한 편지가 이제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하고 있네요~ 글은 지난주에 대략 써놓았는데,, 

지난주 금요일 이저우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함께 나눈 이야기로 서로의 마음이 좀 더 깊어진 것 같네요~ (저만? 다들?)













"시장에 청어 장수 a,b,c가 있었습니다. a와 b 상인의 항아리 속 청어는 매번 금방 죽었지만 c 상인의 청어는 가장 늦게까지 항아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두 장수는 c장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 있냐고 물어봤더니 c장수는 항아리에 가물치를 넣어놔서 청어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어의 천적인 가물치의 공격에 죽지 않으려 애쓰다가 그 생명력이 길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인생에도 가물치 역할을 하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있었기에 보석 같은 시가 나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청어인가요, 가물치인가요? 만일 청어라면, 당신의 가물치는 무엇인가요? "     


일곱 번째 편지에서 2편을 기다리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어 봅니다. 중간중간에 화두처럼 내가 청어? 가물치? 머릿속에서 되뇌긴 했었는데. 이제 글로 적으려니 또 약간 헷갈리네요... 그래도 저는 청어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니 청어입니다.

이번 질문은 건축적인 것은 아니지만 삶에 관한 물음이라서 신선합니다. 


건축에서의 삶과 삶에서의 건축은 닮은 듯 다른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생은 아마도 그가 먹어왔던 모든 음식들, 그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가 함께 했던 모든 자연들의 총 합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질문은 그 가운데, 아마도 사람에 관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저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의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이 일(건축설계)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 인(人) 자가 그렇듯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와 함께 기대어서 존재하겠지요? 그 가운데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나의 가물치였을까 한참을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사람도 가물치만큼은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합니다. 저의 인생에서 저를 통해서 지어진 건물들과 집들이 사무소를 독립한 이래로 약 50채가 되는데. 시인의 시처럼 이 또한 하나의 작품이겠죠? 보석 같은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어쩌면 지난 10여 년에 걸친 결과물 일 것입니다. 많은 부분 나를 포함한 결과물이지만, 어쩌면 전체 인생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면이자 조각일 것 같습니다. 부산물이기도 하고요. 힘든 나날, 후회의 나날, 즐거운 나날, 고마운 나날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로서 또 나의 오늘과 내일을 살고 있는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가물치는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 노래처럼 내 안에는 내가 너무나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의 그 ‘나’ 중에서 아마도 가물치 역할을 하는 ‘나’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고, 삶을 살면서 저는 늘 갈등을 겪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가물치는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한계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진실(?)되고 올바른 모습 그리고 누군가에게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어쩌면 강박에 가까운 생각들, 더 나은 성장과 성숙이 삶에 깃들어야 한다는 압박의 무게감,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분명 좋은 모습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긍정과 희망으로 겨우 여기까지의 결과물들을 만들면서 오늘을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아파하거나, 슬퍼하거나, 화가 난다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라 그 반작용으로 내가 조금 더 양보하고 힘을 들이려는 경향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한계를 넘어서 내 안의 혁명을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준비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로 적어 내려가다 보니, 과연 나의 가물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청어들이 오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됩니다. 과연 나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주고,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가장 큰 존재는 무엇일까요?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그 가물치..... 아마도 가물치는 청어가 많아서 게을러지지는 않을까? 왠지 그 가물치에게 믿음과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어떠한 힘든 일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가물치 같지만, 사실은 그 상황이나 내가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이 가물치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 되는 것도 같아요. 


막연한 글이 지만 나의 가물치에게 말해 주고 싶네어요~~ “ 내가 어리석고, 지쳐할 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서운 속도로 눈을 부릅뜨고 달려와 주렴~~”     

이번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과 졸필은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라도 신선한 글을 기대하셨다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오늘은 수능시험 날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보니 참 신기하기도 하네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이저우집에서 어쩌면,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계실 것 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2019.11.14)    



아홉 번째 편지를 마치며, 질문을 보내드립니다.

11월 15일의 이저우집에서의 만남과 이야기는 정말 진정한 불금이었습니다. 너무도 고맙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시절이 되겠지요? 그때도 잠시 여쭤봤던 질문을 다시금 공식적으로 보내드립니다.     


“ 같이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듀플렉스 주택은 다양한 경제적 이유와 함께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 집니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또는 목적에 맞는 사람끼리... 공간이나 장소의 공유의 방식도 다양하게 이루 집니다. 이저우집사람들에 국한해서 여쭤보면 듀플렉스에서 살아가는 장점이나 불편한 점,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터전으로 옮기게 될 일이 있으면 또 듀플렉스의 주거형태를 선택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그리고 듀플렉스를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조언할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말씀 주셔도 됩니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2019.11.18 권현효 올림.


삼간일목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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