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심문 #10
L. 10
from house
오늘은 ‘세계 인권 선언일’라고 달력이 알려주네요.
달력을 보니, 12월엔 잘 알지 못했던 특별한 날들이 많이 있네요.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 치과 치료에 혼이 털린 듯했던 12월 5일은 ‘세계 자원봉사의 날’,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 12월 20일은 ‘국제 인간 연대의 날’.
날짜나 절기 등만 확인하던 달력에서, 이상하게 오늘은 한참을 눈 못 떼고 있네요.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자의 반 타의 반 일부러 꽤 묵혀 두었던 질문에 또 답을 띄웁니다.
황혼부터 새벽까지, 함께 술잔에 부어 나누던 많은 이야기들의 울림과 즐거움, 고민이 이저우 식구들에게 ‘올해의 일상’ 후보 중 하나가 되었네요.
주신 메일을 다시 꺼내 풀어봅니다.
이저우 집을 짓고 이사 들어온 지 올해로 3년째네요. 이번 질문은 사실 이저우 사람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받는 질문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활자로 정리를 하려고 보니 마치 은사님께 편지 쓰듯(?) 생각이 깊어지네요. 처음에는 구성원 각자의 생각들을 많이 담고자 개별 의견으로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견 교환 과정 중 의외로 합치되는 부분이 많아 하나의 글로 정리해 보냅니다. 이번 편도 죽으나 사나 ‘막냉이’인 ‘참치’가 맡았습니다.
일단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인 부분입니다. 토지구입은 물론 많은 건축 공정을 진행함에 있어, 단독세대로 집을 짓는 것보다는 좀 더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토지구입 비용 절감의 장점이 컸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토지구입 비용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낄 텐데, 이저우 개념과 구조는 작은 땅에서도 효율적이고 적합한 건축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토지구입 비용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생각에는 적어도 토지구입 비용으로 최소 3,000만원 ~ 5,000만원 정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건축 공정별로 지출했던 자재구입비, 운송비, 인건비, 진행비 등에서도 소소하게나마 비용을 줄여 듀플렉스 하우스의 경제성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듀플렉스 형식에 적당한 토지 선택이나 진행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요.ㅎㅎㅎ.
아, 주택 관리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비용 절감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저우는 설계와 실제 시공이 하나의 집(다세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기세, 수도세, 연료비 계상은 개별이지만, 인터넷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공할 때 집과 집을 연결하는 유선을 설치했기 때문에, 두 집이 인트라넷(내부망)처럼 서로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터넷 요금을 50%씩 나눠 부담합니다. 그리고 각종 소소한 생활비(장보기, 식당 외식, 방문객 접대비 등)는 일정액 공동으로 지출/관리합니다. 같이 살다 보면 의외로,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들의 경우 겨울 제설용 장비 혹은 여름 제초용 장비와 소모품 등을 공동 생활비로 구입해서 사용 중이고, 커피 등의 공통 기호품이나 이저우 식구 회식(?) 등의 경비도 생활비로 지출합니다. 모두와 친한 친구가 ‘이집’ 혹은 ‘저집’에 방문했을 때 대접할 각종 식료품 구입 비용도 많은 경우 공동 생활비로 나눠 부담합니다. 최근엔, 혼자서는 도저히 사 먹을 수 없었던 신상 사치품 ‘샤인 머스캣’(개량 포도/1송이 약 10,000~12,000원!!)을 공동 생활비로 구매할 수 있어 행복했고,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오늘 밤에는 구충제도 함께 구입해서 복용했습니다. 내일 아침엔 언제나처럼 국패 언니와 함께 출근(카풀) 하겠죠?
두 번째로 좋은 점은 주택 관리, 생활 안전에서 안심되는 부분이 크다는 겁니다. 사실 이 점은 ‘저집’이 ‘이집’을 통해서 받는 혜택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저집은 주택 경험이 거의 없고, 집에 대해서 요구사항(?)만 많았지 집이나 건축에 대해 잘 몰랐던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러다 같이 살면서 집을 어떻게 관리하고 청소해야 하는지,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뭘 신경 써야 하는지, 잔디를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텃밭엔 뭘 심어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몸으로 부딪혀 겪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고 따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시공을 ‘이집’에서 직접 한지라 정말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언제든 믿고 물어보고 의지할 곳이 바로 옆에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정말 편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2층 바닥은 너무 뜨거운데 1층은 그렇지 않을 때 보일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혹은 집 안에 미닫이 문이 뭔가 부드럽게 닫히지 않는다든가 할 때, 항상 SOS를 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전원주택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축복이라고 느낄 일 일 겁니다. (땡큐 이집 식구들!)
생활 안전에 대해 느끼는 점은 모두 입을 모아 동의한 부분입니다. 꽤 많은 집들이 이웃해 있는 동네지만, 주말 주택이 많습니다. 또 거주민 외에는 인적이 드물고 숲 속에 위치해 있다 보니 집에 혼자 있는 게 가끔 무서울 때가 있는데, 같이 있진 않더라도 옆집에 켜진 외등이나 실내 등 불빛 하나만으로도 안심이 됩니다. 알람 경고가 울리며 보안 요원이 달려오는 보안 시스템은 없어도 - 있다 한들, 이 외진 곳까지 얼마나 빨리 와줄지 의문이지만 -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긴박한 상황에 소리를 지르면 몇 초 만에 달려와 줄 이웃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안심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시골이 더 안전하지 않냐고 하지만, 이저우가 사는 동네는 워낙 조용하고 서울처럼 불빛이 많은 곳이 아니기에 산짐승(고라니나 멧돼지, 혹은 고양이)이 움직이는 소리에도 민감해지기 마련이거든요. 범죄의 위협보다는 그런 예상치 못한 소리, 바깥의 움직임이 사람을 무섭게 하는 법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집이나 저집 모두 서로에게 큰 위로와 안전막이가 돼주는 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마음 맞는 든든한 이웃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집을 짓고 같이 산다는 건 단순히 ‘이웃해 사는(Live together)’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개별적인 집들이 늘어져 있는 형태로 사는 것도 함께 사는 것이겠지만,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같이 살자(Life sharing community)’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저우는 처음부터 ‘같이 살자’는 것에 서로 마음이 끌렸으며, 그 이후로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친구나 지인, 가족도 공유하고 각자가 가진 삶 속의 중요한 가치관들도 나누고 있죠. 음식도 한 부분이다 보니 보통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는 같이 식사를 합니다. 주말 아침의 식사도, 축하할 일이 있거나 좋은 식재료가 생겼을 때의 소소한 파티도 하고, 그냥 심심해서 같이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전보다 삶이 더 재미있고 풍성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자, 이제 대망의 단점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같이 하는 사람들로서 같이 사는 것의 단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몇 초간 생각에 잠겼지만, 이내 내놓은 대답들은 매 한 가지였습니다. 앞서 말했듯, ‘같이 산다’는 건 그냥 같이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기에 서로 가치관이 다른 부분이 충돌하게 되면 불편한 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저우도 지금까지 좋았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첩’이라 불릴 만큼 크게 싸우기도 했었고, 서로 말도 안 하고 지냈던 시간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서로 더 이해하게 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을 맞춰갔던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단점까지는 아니지만, - 조심해야 할 점이라고 해두죠. - 서로의 가치관이 교집합이 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 그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각종 매체나 기사 등을 통해 듀플렉스 하우스를 고민하시거나 혹은 이미 지어 사시는 분들 중에는 가족을 포함한 친인척 관계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일반적이었던 것 같지만, 저희는 이 구성이 듀플렉스 하우스의 필수 조건이라고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가족이고 친인척일지라도, 가치관이 관계만큼 가깝거나 비슷할까요? 만일 그렇지 않은데 듀플렉스 하우스를 선택했다면, 삶이 능동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수동적으로 공유를 ‘강요’당하는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때문에 관계의 특성이 아닌, ‘주택에서 사는 삶’, ‘같이 사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방향성이 비슷한 분들이라면 듀플렉스 하우스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요.
저희는 서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집을 짓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비슷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서 비슷하게 보폭을 맞춰갈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같이 집을 짓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어쩌면 그게 ‘이해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시간은 아닐까, 하고.
마지막으로 먼저 지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듀플렉스 하우스를 꿈꾸는 분들과 공유해볼 만한 내용들을 짧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또 글이 길어진 것 같아서 짧게 마무리할게요. : )
1. 훗날의 이별이 고민된다면, 반드시 필지를 분할하여 개별 소유하세요.
이저우는 그 시작부터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함께 했기에, 건축 효율성과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지를 독립적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단독이 아니, 다가구주택으로 설계하고 시공했습니다. 자연스레 개별 소유가 아닌, 각 집 50%씩 지분 형태로 등기/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혹시나 나중에 집을 팔거나 한 집이 부득이하게 이사를 고민하게 될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필지는 분할하고 공간은 같이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을 듀플렉스 파트너로 선택하세요.
처음부터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살게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찾기가 힘듭니다. 부부처럼, 혹은 동업자처럼, 지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부분에서 가치관이 달라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부분이 생길 겁니다. 집을 같이 짓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같이 지을 파트너 선정을 신중하게 하고, 기회가 된다면 한 공간에서 같이 살아 보는 경험도 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저우 식구들은 집을 짓는 기간 동안 약 1년 정도를 한 집에서 같이 산 적이 있습니다. 그 기간이 없었다면 아마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저희는 물론 집을 짓기로 결정한 이후에 같이 살아 봤지만, 이상적으로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번 같이 살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집이라는 것이 한번 지으면 되돌리기 힘드니까요.
3.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세요.
듀플렉스 하우스에 산다는 건 건축적으로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거기에 마음 맞는 두 집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받아들인다면 좀 더 풍성한 삶의 경험을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재밌게 살려고 생각하면 한없이 재밌게 살 수 있는 것이 또 듀플렉스 하우스고, 전원주택인 만큼 충분히 누리면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시길 권해요. 저희는 건축 준비하는 과정 중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가며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 시도들이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에 큰 동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2019년의 마지막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말인 만큼 시상식 콘셉트를 빌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삼간일목에 던져 봅니다.. : ) - '막냉이' 참치
참치를 대신해 전합니다.
사진 몇 장과 함께.
12월의 일상들도 많이 즐겁고 따뜻할 수 있길 기대할게요.
2019.12.10
집씨
이저우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