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심문 #14
L. 14
from house
효 형에게
정월 보름달과 눈빛 교환은 하셨나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영화계 초미의 관심사인 듯 하지만,
이집저집우리집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집저집우리집’은 이미 <기생충> 부럽지 않을 상복들이 터졌네요.
2019 삼간일목 건축평가상 3관왕
우수상!
우정상!!
공로상!!!
* 대상 없음. 실질적 대상
* 별 만족도 4개 반!(5개 만점)
2020 삼간일목이 듀플렉스 하우스 지어서 같이 살아보고 사람
집씨네-이집저집우리집 중 '이집' (*단, 대표 권현효 씨만의 개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질문 및 응모-이집저집우리집 ‘단독’
*대답 및 평가-삼간일목 ‘단독’
로또 1등 된 기분이 이럴까요?
지금 이집저집우리집 삶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된 편지였어요. 각종 교류와 대화로 한층 서로를 이해하게 된 만큼 이로 인해 다소 팔이 안으로 굽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도 되지만, 기분은 참 좋았죠.
그런 말 듣자고 한 질문이 아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여하튼 이런 뜻밖의 성과들도 얻었으니, 저희는 계속 가던 길 더 열심히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사실, 이번 질문도 역시 논란을 일으켰죠. ‘도시, 건축물, 공간, 장소’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혹은 그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는지가 논란이었죠. 그래서 그냥 저희가 하고 싶은 데로 하기로 했어요.
이번 질문은 각자 고민하고 정리 후, 집씨가 취합해서 보내게 되었네요. 취합해보니, 집씨와 국패는 질문 내용 전부를 세분화하여 답했고 참치는 그중 하나를 선택했더라고요. 의미 중복이나 범주에 따른 교집합도 있겠지만, 각 개별 질문으로 이해하고 고민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사전적 의미들도 다시 찾아보게 되고. 집씨와 국패를 하나의 단락으로 묶고, 참치를 다른 하나의 단락으로 묶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정리해서 보내요.
1. 집씨&국패
도시 (都市)
1. 일정한 지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예) 도시 생활
집씨 - 삼간일목의 질문이 사전적 의미로서의 ‘도시’만을 지칭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딱히 없습니다. 다만 서울 같은 큰 도시는 싫습니다. 큰 도시 들일수록 나라를 막론하고 도시 구성이나 특징, 건축물들의 개성 차이도 적어 재미도 없습니다.
아파트가 밀집한 한국의 큰 도시들을 대부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건물이든 사람이든, 너무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사람 간 경계나 적대감이 덜한 곳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양평도 그런 만족감이 있는 괜찮은 도시(혹은 시골)라고 생각합니다.
국패 - 도시라고 하니, 왠지 여행지에서 만났던 도시들이 생각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도시 중 가장 좋았던 곳은 프라하. 이상하게 아니면 자연스럽게 가장 더울 때 가장 더운 도시에, 가장 추울 때 가장 추운 도시에 가게 됩니다. 프라하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며 본, 그야말로 이국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었죠. 짐을 풀자마자 트램을 타고 나가며 마주하게 된 프라하성은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서도 볼 수 있는 오래된 성이 신기했나 봅니다. 이국적이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멋진 것도 좋지만, 프라하에서 좋았던 것은 한 곳에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머물면서 동네 골목을, 마트를, 재즈카페를, 여행객이 잘 찾지 않는 동네 식당을, 대학생들이 가는 카페를, 주말에 가족들이 찾는 테끄니께 뮤지엄(과학관)을 다니며 프라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저는 동네 구경이 제일 재미있나 봅니다.
국내에서 가본 도시 중 마음에 들었던 도시는 부여. 부여를 떠올리면, ‘고즈넉하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제가 본 부여는 높은 건물이 없고, 번잡하지 않고, 조용하고, 따뜻한 기운이 있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부여박물관 때문에도 부여가 좋습니다. 거창하지 않고 좀 오래되기도 한 부여박물관이 좋더라고요. 아주 오래전, 부여 시장 골목에서 먹었던 후라이드 치킨이 참 맛있었어요. 맛있는 치킨 때문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축물 建築物
1. 땅 위에 지은 구조물 중에서 지붕, 기둥, 벽이 있는 건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조물.
예) 목조 건축물
집씨 - 건축물은 운현궁과 전북 무주에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안성면사무소와 거기에 있는 목욕탕을 좋아합니다. 생각하거나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도 편안해지고, 뭔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있어 좋아합니다.
국패 - 한동안 궁 옆에 살아서 창덕궁, 그리고 후원을 좋아했었습니다. 숲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후원이 참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소박함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했고, 지금도 종종 그리워지는 건축물은 내가 살았던 ‘미니 한옥’입니다. 마당까지 해서 12평인 한옥, 그래도 한옥에 있을 것은 다 있었던 집. 대문에 들어서면 작은 베란다만 한 마당이 있고 미닫이문을 열면 대청(도면에 대청이라고 쓰여 있어서 엄청 웃었던 작고도 작은 마루)과 부엌, 양 옆으로 방이 하나씩, 안방 안쪽에는 화장실 겸 세탁실이 있었던 그런 작은 집이었습니다. 직접 한지로 도배를 하고, 광목에 염색을 하여 손바느질로 커튼을 만들어 달고, 큰 가구는 다 버리고 남편(당시엔 친한 동생)이 손수 만들어준 맞춤식 가구를 들여놓았던 그 집. 마당에서 작은 테이블을 펴고 밥을 먹기도 하고, 마루에 앉아서 눈이 오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채소를 파는 트럭이 오면 뛰어 나가던 그런 날들을 살았습니다. 아마도, 우리를 양평으로 오게 한 것은 그 집이었을 것입니다.
공간空間
1. 아무것도 없는 빈 곳.
예) 좁은 공간
2.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예) 도시 공간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예) 삶의 빈 공간을 채우다
4. 물리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고전 역학에서는 삼차원 유클리드 공간을 사용하였는데,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을 포함한 사차원의 리만 공간을 사용한다. ≒현간(玄間).
5. 수학 어떤 집합에서 그 요소 사이 또는 그 부분 집합 사이에 일정한 수학적 구조를 생각할 때, 그 집합을 이르는 말. 이에는 n차원 공간, 위상(位相) 공간 따위가 있다.
6. 철학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 유물론에서는 공간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만 칸트 철학에서는 이를 선험적인 직관 형식으로 파악한다.
7. [북한어] 사업이나 말 또는 글 같은 데서 앞뒤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아 생긴 빈 곳.
예) 작업과 작업 사이에 공간이 나지 않도록 로력을 합리적으로 짰다.
출처 <<조선말 대사전(1992)>>
집씨 - 저는 공연장의 빈 무대 ‘공간’을 좋아합니다. 특히 아무도 없이 혼자 그 빈 무대 공간을 거닐거나 바라보고 있을 때가 좋습니다. 무대 바닥 마감 색이 검정이면 금상첨화입니다.
국패 - 저는 요새 이집의 모든 공간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특히 거실(아시는 것처럼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이집의 핵심!)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꼽자면 안방입니다. 잠을 자려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죠!!! 내 자리 옆에 놓인 스탠드(이것도 남편이 만들어 줬어요! 자랑)의 따뜻한 불빛이 있는 우리 방의 내 잠자리! 그 속에 쏙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 안방은 숲이 보이는 창이 있고, 그리고 그 아래 침대가 있습니다. 낮에 들어오는 볕은 참 예쁘고, 밤에 들어오는 달빛은 환상적입니다.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공간으로 우리 안방을 꼽겠습니다.
장소 場所
1.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예) 약속 장소
집씨 - 이집 주방/거실/대청.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소다. 여기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가장 많이 나누고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걸어온 길에 대한 복기도 여기서 하고 있다. 혼자서도, 둘 혹은 여럿이서.
국패 - 마트, 시장을 좋아합니다. 저는 장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해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좋아합니다. 즐거운 일상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골목길도 좋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장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골목길을 걸을 일이 없어 조금 아쉽습니다. 골목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집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고(좀 불법적인가요…….), 골목의 변화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나지요.
2. 참치
참치 - 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로 일본 삿포로와 프랑스 아비뇽을 꼽고 싶네요. 계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여행지기도 해서 언젠가 또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인데요, 겨울이면 삿포로, 여름이면 아비뇽이 제 ‘최애’ 도시입니다.
삿포로는 2016년에 이저우 식구들과 같이 겨울 단체 여행(?)을 갔었던 도시입니다. 워낙 눈으로 유명한 곳이라 어느 정도 눈이 있겠지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본 눈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죠. 제 키보다 많이 쌓인 눈에, 경차를 렌트해서 눈이 내려 얼고 녹기를 반복한 도로를 달리던 기억, 그리고 새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들판 한가운데 있던 ‘메리와 켄의 나무’였나……. 그걸 보겠다고 모두를 끌고 갔던 기억. 제게 삿포로는 눈으로 뒤덮인 동화 같은 곳에서 좌충우돌 여행하던 기억이 지배적입니다.
그만큼 재밌었기도 했고, ‘눈’이 주는 환상적인 자연환경은 마치 제가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주었으니까요.
이저우가 있는 양평 문호리도 재작년쯤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와서 창밖을 볼 때마다 삿포로가 기억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No Japan 캠페인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지만, 매년 겨울만 되면 동화같이 눈 쌓인 그곳이 참 그립네요. 그리고 눈 치우기가 조금 무섭긴 하지만, 한겨울에는 정말 한겨울답게 눈도 펑펑 와서 이저우 집이 ‘겨울 왕국’ 속의 ‘궁전’이 되길 엄청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별로 춥지도 않고 눈도 오지 않은 이번 겨울은 정말 시시하네요. ㅎㅎ
프랑스 남부의 도시 아비뇽은 남편과 같이 두 번이나 갔던 곳입니다. 프랑스의 여름 바캉스 시즌인 7월 말 ~ 8월에는 아비뇽에서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이라는 아주 유명한 공연 축제가 열립니다. 아주 오래전에 처음 갔던 거라 몇 년도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남편의 공연팀을 이것저것 도와주기 위해 따라갔다가 한 달을 지냈거든요.
뜨거운 프랑스 남부의 태양 아래, 전 세계에서 온 공연팀이 하루에도 몇십 편의 무용, 거리극, 연극, 서커스, 음악 연주 등의 공연을 올리는데, 공연장이 모자라 카페나 거리, 학교 등 도시 전체를 활용합니다. 독특하죠? 안 그래도 열정적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도시 전체를 활용한 다양한 장소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이게 또 한여름이다 보니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그 열정이 쉬이 꺼지지 않습니다.
첫 방문에서 제가 느꼈던 프랑스 남부에 대한 강렬함은 그래서인지 항상 그 시기, 그 장소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그 활발함, 다양하고 화려한 문화의 향연, 각 국의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반가워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분위기. 제가 방문했던 어떤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느낌이라 잊을 수가 없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매일 한낮의 열기가 가신 뒤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던 ‘하이네켄’ 맥주 한 잔의 추억도요.
나중에 제가 다시 한 여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한번 다시 가서 200% 즐기고 오고 싶네요. 그 시기,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된다면 누구에게라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 )
저희는 이번 설, 숲 속 조용한 ‘이저우’에서 그냥 ‘가만히’ 있었네요. 정말 휴가 같은 명절 연휴를 보낸 듯합니다. 가끔 보내 주신 질문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번에는 형이 또 고민할 차례인가요? ㅎㅎ
어떨 땐 꼭 폭탄 돌리기 게임하는 기분도 든다니까요.
Let's start! - 이저우 모두를 대신하여, 집씨가
2020.02.09
집씨
이저우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