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원의 점심

그 날, 제 7장

by MingDu


"김 과장, 오늘 점심은 뭐 먹을 거야? 저기 회사 뒤편에 새로 생긴 파스타 집 갈까? 트러플 크림 파스타가 기가 막힌대. 런치 세트 시키면 커피도 준다더라."

점심시간, 박 대리가 해맑은 표정으로 물어왔다.

트러플 크림 파스타. 런치 세트 18,000원. 커피까지 마시면 25,000원. 머릿속 계산기가 본능적으로 돌아갔다. 지금 내게 그 돈은 단순한 한 끼 식사비가 아니었다. 5일 치 저녁거리이자, 일주일치 교통비였다.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내 위장은 비참한 현실을 자각하고 스스로 쪼그라들었다.

"아... 나 속이 좀 안 좋아서. 어제 먹은 게 체했나 봐. 그냥 편의점에서 죽이나 하나 사 먹으려고. 먼저들 다녀와."

나는 배를 문지르며 어색한 연기를 했다. 사실 속이 안 좋은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빚 독촉과 배고픔으로 인한 만성적인 위경련이 늘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어라, 안색이 진짜 안 좋네. 식은땀도 나고. 그래 푹 쉬어. 올 때 약이라도 사다 줄까?" "아냐, 괜찮아. 좀 자면 나을 거야."

박 대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동료들과 우르르 나갔다. 그들의 등 뒤로 "야, 그 집 알리오 올리오가 진짜라던데..." 하는 들뜬 웃음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주도해서, 내가 쏘겠다며 데려갔던 곳들이었다. 지금은 그들 틈에 낄 자격조차 없는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10분을 더 기다렸다.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까 봐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15층부터 1층까지.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단 나았다.

회사 근처 식당가는 위험했다. 나는 점퍼 깃을 세우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두 블록 떨어진 허름한 편의점까지 걸어갔다. 식당 창문 너머로 김치찌개 냄새, 돈가스 튀기는 냄새가 유혹하듯 풍겨왔다. 8,000원, 10,000원. 메뉴판의 숫자들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아 걸음을 재촉했다.

편의점 진열대 앞. 나는 마치 주식 차트를 분석하던 신중한 눈빛으로 도시락 코너를 스캔했다.

'혜자 도시락 4,500원.' 제육볶음에 계란말이까지 들어있는 호화로운 구성. 예전 같았으면 "이게 밥이냐, 사료지"라며 쳐다보지도 않았을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미슐랭 코스 요리보다 맛있어 보였다. 손이 저절로 도시락으로 향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너무나 간절했다.

하지만 손끝이 닿기 직전, 멈췄다. '이거면... 삼각김밥이 4개다. 이틀 치 저녁이야.'

비참한 가성비 계산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결국 도시락을 내려놓고, 그 옆의 차가운 삼각김밥 코너로 손을 옮겼다.

'참치마요 삼각김밥 1,200원. 육개장 사발면 1,000원. 합계 2,200원.'

4,500원짜리 도시락은 사치였다. 나는 삼각김밥 하나와 작은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계산대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는 삑- 소리가, 내 가난을 확정 짓는 판사봉 소리처럼 들렸다.

편의점 구석, 좁아터진 취식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통유리 너머로 말끔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컵라면 용기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이 익는 3분. 그 3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덜 익어 꼬들거리는 면을 휘저었다. 한 입 크게 넣어 허기를 채우려는 찰나였다.

"후루룩- 툭."

탱글거리는 면발이 젓가락 끝에서 춤을 추더니, 붉고 기름진 라면 국물 한 방울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내 흰 셔츠 가슴팍 정중앙에 정확히 떨어졌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휴지를 뽑아 들었다.

이 셔츠는 내가 가진 마지막 명품 셔츠였다. 드라이클리닝만 해야 하는 고급 원단. 동네 세탁소에 맡겨도 5,000원은 줘야 하는 옷이었다. 내 점심값의 두 배가 넘는 돈이, 저 국물 한 방울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지에 물을 묻혀 얼룩을 닦아냈다. '지워져라. 제발 지워져라. 부탁이다.'

하지만 벅벅 문지를수록 붉은 고추기름 얼룩은 지워지기는커녕, 섬유 결을 타고 더 넓고 흐릿하게 번져나갔다. 고급 원단의 표면이 거칠게 일어나며 보풀이 생겼다.

"젠장... 젠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식으로 3억을 날렸을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고작 국물 자국 하나 때문에 터져 나오려 했다.

셔츠 하나 마음 편히 세탁소에 맡기지 못하는 내가, 5,000원이 아까워 벌벌 떠는 내가, 너무나 비참하고 찌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건 단순한 얼룩이 아니었다. 내 남은 자존심에 찍힌 낙인이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풀어헤쳐진 넥타이, 가슴에 묻은 붉은 김칫국물, 그리고 한 손엔 먹다 만 1,000원짜리 컵라면을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있는 30대 남자.

그곳엔 '성공한 투자자' 김선우는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가성비를 따지는,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개미'보다 못한 패배자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식어빠진 라면 면발이 모래알처럼 까끌거렸다. 국물은 짰다. 너무 짜서 혀가 아릴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살아야 빚을 갚으니까.

다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나는 양복 재킷 깃을 한껏 여며 가슴의 얼룩을 가렸다. 내 몸에서 나는 싸구려 라면 냄새가 행여나 남들에게 들킬까 봐,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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